불교자료

7. 분별행처품(分別行處品)

bunnehaital 2022. 9. 24. 21:07

7. 분별행처품(分別行處品)

 

爾時依止師觀其所行授三十八行當復敎示令二行相應

그때 의지사(衣止師)는 그의 소행을 관찰해 38행을 주고, 마땅히 또 가르쳐 2행이 상응하도록 하여야 한다.

 

云何三十八行處

謂十一切入空處識處一切入又十不淨想胮脹想靑淤想爛想棄擲想鳥獸食噉想身肉分張想斬斫離散想赤血塗染想虫臭想骨想又十念念佛念法念僧念戒念施念天念死念身念數息念寂寂又四無量心觀四大食不淨想無所有處非非想處斯謂三十八行處

무엇이 38행처(行處)인가?

열 가지의 일체입(一切入) 즉 지()ㆍ수()ㆍ화()ㆍ풍()ㆍ청()ㆍ황()ㆍ적()ㆍ백()ㆍ공처(空處)ㆍ식처(識處)의 일체입, 또 열 가지의 부정상(不淨想) 즉 방창상(膖脹想)ㆍ청어상(靑瘀想)ㆍ난상(爛想)ㆍ기척상(棄擲想)ㆍ조수식감상(烏獸食噉想)ㆍ신육분장상(身肉分張想)ㆍ참작이산상(斯斫離散想)ㆍ적혈도염상(赤血塗染想)ㆍ충취상(蟲臭想)ㆍ골상(骨想), 10() 즉 염불(念佛)ㆍ염법(念法)ㆍ염승(念僧)ㆍ염계(念戒)ㆍ염시(念施)ㆍ염천(念天)ㆍ염사(念死)ㆍ염신(念身)ㆍ염수식(念數息)ㆍ염적적(念寂寂), 4무량심 즉 자()ㆍ비()ㆍ희()ㆍ사()와 관사대(觀四大)ㆍ식부정상(食不淨想)ㆍ무소유처(無所有處)ㆍ비비상처(非非想處), 이것이 소위 38행처이다.

 

此三十八行處以九行當知最勝一以禪二以正越三以增長四以緣五以事六以勝七以地八以取九以人

38행처는 9행으로써 가장 수승해짐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선()으로써, 둘째는 올바른 초월[正越]로써, 셋째는 증장(增長)으로써, 넷째는 연()으로써, 다섯째는 사()로써, 여섯째는 승()으로써, 일곱째는 지()로써, 여덟째는 취()로써, 아홉째는 인()으로써이다.

 

云何爲禪

謂十行處成禪外行又十一行處成就初禪又三行處成就三禪又一行處成就四禪又九行處成就四禪五禪又四行處成就無色四禪

무엇이 선인가?

10행처는 선()의 외행(外行)을 이루고, 11행처는 초선을 성취하며, 3행처는 3선을 성취한다. 1행처는 4선을 성취하고, 9행처는 4선ㆍ5선을 성취하며, 4행처는 무색(無色)4선을 성취한다.

 

云何十行處成禪外行

除數息及觀身餘八念及觀四大食不淨想是謂十外行

선의 외행을 이루는 10행처란 무엇인가?

수식(數息) 및 관신(觀身)을 제외한 나머지 8념과 4대를 관하는 것[觀四大]과 음식이 부정하다는 생각[食不淨想], 이것을 10외행이라 한다.

 

云何十一行處初禪所攝

十不淨想及觀身是謂初禪所攝

무엇이 11행처가 초선에 포섭된다는 것인가?

10부정상 및 관신(觀身), 이것이 초선에 포섭되는 것이다.

 

云何三行處三禪所攝

謂慈

무엇이 3행처로 3선에 포섭되는 것인가?

자ㆍ비ㆍ희를 말한다.

 

云何一行處四禪所攝

謂捨

무엇이 1행처로 4선에 포섭되는 것인가?

()를 말한다.

 

云何九行處四禪五禪所攝

除空一切入識一切入餘殘八一切入及數息念

무엇이 9행처로 4선ㆍ5선에 포섭되는 것인가?

공일체입ㆍ식일체입을 제외한 나머지 8일체입 및 수식념(數息念)이다.

 

云何四行處四無色所攝

虛空一切入識一切入無所有處非非想處是名四行如是以禪可知

무엇이 4행처로 4무색에 포섭되는 것인가?

허공일체입ㆍ식일체입ㆍ무소유처ㆍ비비상처 이것을 4행처라 한다. 이와 같이 선으로써 알 수 있다.

 

云何以正越

入行處成爲越色除無色一切入餘八一切入餘三十行處不成爲越色又三行處成爲越事二無色一切入及無所有處餘三十五行處不成爲越事又一行處成爲越想受所謂非非想處餘三十七行不成爲越想受如是以越可知

올바른 초월로써 알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라는 행처는 색()을 초월하게 하니, 색이 없는 일체입을 제외한 나머지 8일체입을 말한다. 나머지 30행처는 색을 초월하지 못한다. 3행처는 사()를 초월하게 하니, 색이 없는 일체입 두 가지와 무소유처이다. 나머지 35행처는 사를 초월하지 못한다. 1행처는 상()ㆍ수()를 초월하게 하니, 소위 비비상처이다. 나머지 37행처는 상ㆍ수를 초월하지 못한다. 이와 같이 초월로써 알 수 있다.

 

云何以增長

十四行處可令增長所謂十一切入及四無量心餘二十四行處不應令增長如是以增長可知

증장으로써 알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14행처는 가히 증장시켜야 하니, 소위 10일체입과 4무량심이다. 나머지 24행처는 증장시켜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이 증장으로써 알 수 있다.

 

云何爲緣

九行處爲神通緣除無色一切入八一切入及分別虛空一切入餘三十行不成神通緣三十七行處成爲毘婆舍那緣除非非想處又一行處不成毘婆舍那緣所謂非非想處如是以緣可知

()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9행처가 신통의 연이 되니, 색이 없는 일체입을 제외한 8일체입과 분별허공일체입(分別虛空一切入)이다. 나머지 30행처는 신통의 연이 되지 못한다. 37행처가 비바사나(毘婆舍那, Vipassanā)의 연이 되니, 비비상처를 제외한 것이다. 1행처는 비바사나의 연을 이루지 못하니, 소위 비비상처이다. 이와 같이 연으로써 알 수 있다.

 

云何爲事

二十一行處是分別事十二行處是爲實事五行處不應說分別事實事

()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21행처는 분별사(分別事)이고, 12행처는 실사(實事)가 된다. 5행처는 분별사나 실사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云何二十一行處是分別事

除識一切入餘九一切入十不淨想及念數息念身

무엇이 분별사인 21행처인가?

식일체입을 제외한 나머지 9일체입과 10부정상 및 염수식(念數息)ㆍ염신(念身)이다.

 

云何十二實事

識一切入非非想處及十禪外行

무엇이 열두 가지의 실사인가?

식일체입ㆍ비비상처 및 10선외행이다.

 

云何五不應說分別事及實事

謂四無量心及無所有處

무엇이 분별사나 실사라고 말해서는 안 되는 5행처인가?

4무량심 및 무소유처이다.

 

復次二行處內營事內事又二行處內營事外事又一行處外營事內事又二十一行處外營事外事又四行處內營事內事設外事又四行處設內營事設外營事外事又二行處設內營事設外營事設內事設外事又一行處內外營事內事又一行處內營事不應說及內事外事

2행처는 내영사내사(內營事內事)이고, 2행처는 내영사외사(內營事外事)이고, 1행처는 외영사내사(外營事內事)이고, 21행처는 외영사외사(外營事外事)이고, 4행처는 내영사내사설외사(內營事內事設外事)이고, 4행처는 설내영사설외영사외사(設內營事設外營事外事)이고, 2행처는 설내영사설외영사설내사설외사(設內營事設外營事設內事設外事)이고, 1행처는 내외영사내사(內外營事內事)이고, 1행처는 내영사불응설급내사외사(內營事不應說及內事外事)이다.

 

於是二行處內營事內事者謂識一切入及非非想處又二行處內營事外事者所謂念數息念身又一行處外營事內事者所謂念死又二十一行處外營事外事者謂十不淨想四無量心四色一切入虛空一切入及念佛念僧又四行處內營事內事設外事者謂念戒念施觀於四大及不淨食想又四行處設內營事設外營事設外事謂四色一切入又二行處設內營事設外營事設內事設外事謂念法念寂寂又一行處內外營事內事謂爲念天又一行處內營事內事外事不應說謂無所有處

여기에서 내영사내사인 2행처란 식일체입 및 비비상처를 말한다. 또 내영사외사인 2행처란 소위 염수식ㆍ염신을 말한다. 외영사내사인 1행처란 소위 염사이다. 또 외영사외사인 21행처란 10부정행ㆍ4무량심ㆍ4색일체입ㆍ허공일체입ㆍ염불ㆍ염승을 말한다. 또 내영사내사설외사인 4행처란 염계ㆍ염시ㆍ관사대ㆍ부정식상을 말한다. 또 설내영사설외영사외사인 4행처란 4색일체입을 말한다. 또 설내영사설외영사설내사설외사인 2행처란 염법(念法)과 염적적(念寂寂)을 말한다. 또 내외영사내사인 1행처란 소위 염천(念天)이다. 또 내영사내사외사불응설인 1행처란 소위 무소유처이다.

 

又二行處過去事謂識一切入及非非想處又一行處於未來事所謂念死又一行處於現在事所謂念天又六行處設過去事設未來事設現在事謂念佛念僧念戒念施及觀四大不淨食想又二行處設過去事設現在事設不應說過去未來者所謂念法念寂寂又二十六行處不應設三世事謂九一切入十不淨想四無量心及念數息念身無所有處

2행처는 과거사이니, 식일체입과 비비상처를 말한다. 1행처는 미래사이니, 소위 염사(念死)이다. 1행처는 현재사이니, 소위 염천이다. 6행처는 과거사이기도 하고 미래사이기도 하고 현재사이기도 하니, 소위 염불ㆍ염승ㆍ염계ㆍ염시ㆍ관사대ㆍ부정식상이다. 2행처는 과거사이기도 하고 현재사이기도 하지만 과거ㆍ미래라고 말해서는 안 되니, 곧 염법ㆍ염적적이다. 26행처는 3세사라고 말해서는 안 되니, 9일체입ㆍ10부정상ㆍ4무량심ㆍ염수식ㆍ염신(念身)ㆍ무소유처이다.

 

又四行處動事謂火一切入風一切入及虫爛想及念數息其處則動其相不動餘三十四不動事如是以事可知

4행처는 동사(動事)이니, 곧 화일체입ㆍ풍일체입ㆍ충란상(蟲爛想)ㆍ염수식이다. 그 처()는 곧 움직이지만 그 상()은 움직이지 않는다. 나머지 34행처는 부동사(不動事)이다. 이와 같이 사로써 알 수 있다.

 

云何爲勝

八一切入四無色定是名勝眞實事故以八一切入是名定勝故彼第四禪得勝地故四無色定成勝十不淨想及食不淨想是名想勝以色以形以空以方以分別以和合以執著故以不淨想事故以十念處是名勝念微細故隨念故四無量心以無過爲勝受饒益故觀四大是名慧勝以執著空故如是以勝可知

()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8일체입ㆍ4무색정 이것을 승이라 한다. 진실사이기 때문에, 8일체입을 정승(定勝)이라 하기 때문에, 저 제4선이 승지(勝地)를 얻기 때문에 4무색정은 승이 된다. 10부정상 및 식부정상(食不淨想) 이것을 상승(想勝)이라 한다. ()으로써, ()으로써, ()으로써, ()으로써, 분별로써, 화합으로써, 집착으로써 하기 때문이며, 부정상사(不淨想事)로써 하기 때문이다. 10념처를 승념(勝念)이라 한다. 미세하기 때문이며, 생각을 따르기 때문이다. 4무량심은 무과(無過)로써 승()이 되니, 요익을 받기 때문이다. 관사대를 혜승(慧勝)이라 하니, 공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승으로써 알 수 있다.

 

云何以地

十二行處不生於天上謂十不淨及念身食不淨想又十三行處不生於色有初十二及數息念不生色有除四無色處餘行處不生於無色有如是以地可知

()로써 알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12행처는 천상에 태어나지 않으니, 10부정 및 염신ㆍ식부정상을 말한다. 13행처는 색유(色有)에 태어나지 않는다. 처음의 12행처 및 수식념은 색유에 태어나지 않는다. 4무색처를 제외한 나머지 행처는 무색유에 태어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지로써 알 수 있다.

 

云何以取

謂十七行處以見應取相除風一切入及無色一切入餘七一切入十不淨想又一行處以觸應取相謂念數息又一行處或以見或以觸應取謂風一切入餘十九行處以聞分別應取又五行處初坐禪人不應修行四無色及捨餘二十三初學禪人應取如是以取可知

()로써 알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17행처는 견()으로써 상()을 취해야 하니, 풍일체입 및 색이 없는 일체입을 제외한 나머지 7일체입과 10부정상을 말한다. 1행처는 촉()으로써 상을 취해야 하니, 곧 염수식이다. 1행처는 혹은 견으로써, 혹은 촉으로써 상을 취해야 하니, 곧 풍일체입이다. 나머지 19행처는 듣고 분별해서 취해야 한다. 5행처를 처음 좌선하는 사람은 마땅히 수행해서는 안 되나니, 4무색정과 사()이다. 나머지 서른세 가지는 처음 좌선하는 사람이 마땅히 취해야 한다. 이와 같이 취로써 알 수 있다.

 

云何以人

欲行人四無量不應脩行以淨相故何以故

()으로써 알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욕행인은 4무량을 수행해서는 안 되니, 그것은 정상(淨相)인 까닭이다. 무엇 때문인가?

 

欲行人作意淨想非其所行如痰病人多食肥腴非其所宜

욕행인이 청정하다는 생각을 의도적으로 하는 것은 그가 행할 바가 아니다. 담병(痰病)을 앓는 사람이 많이 먹어 살을 찌우는 것은 그에게 마땅치 않은 것과 같다.

 

瞋行人十不淨想不應脩行瞋恚想故瞋恚作意非其所行如瞻病人飮食沸熱非其所宜

진행인은 10부정상을 수행해서는 안 되니, 그것은 진에상인 까닭이다. 진에를 의도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가 행할 바가 아니니, 첨병(瞻病)을 앓는 사람이 뜨거운 것을 먹고 마시는 것은 그에게 마땅치 않은 것과 같다.

 

癡行人未增長智不應令起修行處離方便故若離方便其精進無果如人騎象無鉤

치행인은 아직 지혜를 증장시키지 못했으므로 행처에 대한 수행을 일으키게 해서는 안 되니, 방편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방편을 벗어나면 그 정진에는 과보가 없나니, 마치 사람이 코끼리를 타면서 갈고리가 없는 것과 같다.

 

欲行人應脩不淨想及觀身是其欲對治故

욕행인은 마땅히 부정상 및 관신을 닦아야 하나니, 이것이 그 욕심을 상대해 다스리기 때문이다.

 

瞋行人應脩四無量心是瞋對治故或當脩色一切入心隨逐故

진행인은 마땅히 4무량심을 닦아야 하나니, 이것이 성냄을 상대해 다스리기 때문이다. 혹은 마땅히 색일체입을 닦아야 하나니, 마음이 이를 뒤쫓기 때문이다.

 

信行人當修六念處念佛爲初信定故

신행인(信行人)은 마땅히 6염처를 닦아야 하나니, 염불이 최초의 믿음을 확고히 하기 때문이다.

 

意行人當脩觀四大於食不淨想念死念寂寂深處故復次意行人於一切行處無所妨碍

의행인(意行人)은 마땅히 관사대ㆍ식부정상ㆍ염사ㆍ염적적을 닦아야 하나니, 심오한 행처이기 때문이다. 또한 의행인은 일체 행처에서 장애가 되는 것이 없다.

 

覺行人當脩念數息以斷覺故

각행인(覺行人)은 마땅히 염수식을 닦아야 하니, 이로써 거친 생각을 끊기 때문이다.

 

癡行人以言問法以時聞法以恭敬法與師共住令智增長於三十八行隨其所樂應當脩念死及觀四大最勝

치행인은 말로 법을 묻고, 시간에 맞춰 법을 듣고, 공손하게 법을 존경하고, 스승과 함께 머물러 지혜를 증장시키고, 38행처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바에 따라 응당 닦아야 한다. 그 가운데 염사 및 관사대가 가장 뛰어나다.

 

復說於分別行處我見彼勝六人於所分別略而爲三

또 설하기를, 행처의 분별에서 우리는 그 뛰어남을 본다. 6인은 분별되는 바에서는 줄여 세 가지가 된다.

 

若然於初有妨

二欲行人謂鈍根利根

만약 그렇다면 처음에 말한 것을 방해하지 않겠는가?

두 종류의 욕행인이 있으니, 소위 둔한 근기[鈍根]와 예리한 근기[利根]이다.

 

爲鈍根欲人脩不淨觀爲其欲對治是所應敎行脩得除欲

근기가 둔한 욕인에게는 부정관을 닦아 그 욕심을 상대해 다스리게 해야 한다. 이것이 마땅히 가르쳐야할 행이니, 이것을 닦으면 욕심을 제거할 수 있다.

 

利根欲人初信增長當脩念處是所應敎行脩得除欲

근기가 예리한 욕인은 처음의 믿음을 증장시켜 마땅히 염처를 닦아야 한다. 이것이 마땅히 가르쳐야할 행이니, 이것을 닦으면 욕심을 제거할 수 있다.

 

二瞋行人謂鈍根利根爲鈍根瞋恚行人脩四無量是其瞋恚對治是所應敎行脩得除瞋

두 종류의 진행인이 있으니, 소위 둔한 근기와 예리한 근기이다.

근기가 둔한 진에행인에게는 4무량을 닦게 해야 하니, 이것이 그 진에를 상대해 다스리는 것이다. 이것이 마땅히 가르쳐야할 행이니, 이것을 닦으면 성냄을 제거할 수 있다.

 

利根瞋恚行人以智增長脩行勝處是所敎脩得除瞋

근기가 예리한 진에행인은 지혜를 증장시킴으로써 승처를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가르쳐야할 바이니, 이것을 닦으면 성냄을 제거할 수 있다.

 

二癡行人謂無根鈍根爲無根癡行人不應敎脩行處爲鈍根癡行人爲除覺應敎脩念數息

두 종류의 치행인이 있으니, 소위 무근(無根)과 둔한 근기이다.

근기가 없는 치행인에게는 마땅히 수행처를 가르쳐서는 안 된다.

근기가 둔한 치행인에게는 거친 생각[]을 제거하기 위해 염수식을 닦도록 가르쳐야 한다.

 

如是以略唯成三人是故無妨於是法一切入及數息以空增長無妨成一切行若已得勝功德勝一切行所行之處故成不妨

이와 같이 줄이면 단지 3인이 된다. 따라서 방해될 것이 없다. 이 법에서 일체입 및 수식은 공()으로써 증장시켜 방해 없이 일체의 행을 이룬다. 만약 이미 뛰어난 공덕을 얻었다면, 뛰어난 일체행이 행해진 곳인 까닭에 성취하는데 방해가 없다.

 

解脫道論卷第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