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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도론 제3권 -6. 분별행품(分別行品)

bunnehaital 2022. 9. 24. 21:05

해탈도론 제3권 

 

6. 분별행품(分別行品

 

爾時依止阿闍梨以數日觀其行其行相應行處應當敎於是行者十四行欲行瞋恚行癡行信行意行覺行欲瞋恚行欲癡行瞋癡行等分行信意行信覺行意覺行等分行

그때 의지아사리(依止阿闍梨)는 수일간 그의 행을 관찰하고, 그의 행에 상응하는 행처(行處)를 마땅히 가르쳐야 한다. 여기에서 행이란 14행이다. 즉 욕행(欲行)ㆍ진에행(瞋恚行)ㆍ치행(癡行)ㆍ신행(信行)ㆍ의행(意行)ㆍ각행(覺行)ㆍ욕진에행(欲瞋恚行)ㆍ욕치행(欲癡行)ㆍ진치행(瞋癡行)ㆍ등분행(等分行)ㆍ신의행(信意行)ㆍ신각행(信覺行)ㆍ의각행(意覺行)ㆍ등분행(等分行)이다.

 

復次愛見慢等種種行可知於是貪欲意使行性樂著無異於是義由行故成十四人欲行人嗔行人癡行人信行人意行人覺行人欲瞋行人欲癡行人瞋癡行人等分行人信意行人信覺行人意覺行人等分行人

또 애()ㆍ견()ㆍ만() 등 갖가지 행을 알아야 한다. 여기에서 탐욕ㆍ의사(意使)ㆍ행성(行性)ㆍ낙착(樂著)은 이 뜻과 다르지 않나니, 행으로 인해 14()이 성립한다. 즉 욕행인ㆍ진행인ㆍ치행인ㆍ신행인ㆍ의행인ㆍ각행인ㆍ욕진행인ㆍ욕치행인ㆍ진치행인ㆍ등분행인ㆍ신의행인ㆍ신각행인ㆍ의각행인ㆍ등분행인이다.

 

於是欲欲欲使欲性欲樂此謂欲行人其欲常行增上欲是謂欲行如是一切當分別

여기서 욕욕(欲欲)ㆍ욕사(欲使)ㆍ욕성(欲性)ㆍ욕락(欲樂), 이것을 욕행인이라 하며 그 욕심이 항상 움직여 욕심을 증상(增上)시키는 것, 이것을 욕행이라 한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을 분별해야 한다.

 

爾時此十四人略成七人如是欲行人信行人成一瞋行人意行人成一癡行人覺行人成一欲瞋行人信意行人成一欲癡行人信覺行人成一瞋癡行人意覺行人成一二等分行人成一

그때 이 14인을 줄이면 7인이 된다. 즉 욕행인과 신행인이 하나를 이루고, 진행인과 의행인이 하나를 이루고, 치행인과 각행인이 하나를 이루고, 욕진행인과 신의행인이 하나를 이루고, 욕치행인과 신각행인이 하나를 이루고, 진치행인과 의각행인이 하나를 이루고, 두 가지 등분행인이 하나를 이룬다.

 

何故欲行人信行人成一

欲行人於善朋增長信行欲親覲功德故復次以三行欲及信此句成一相有愛念義覓功德義非捨義

왜 욕행인과 신행인이 하나를 이루는가?

욕행인은 선한 친구에게서 믿음을 증장시키니, 욕심을 행하며 공덕을 직접 보기 때문이다. 또한 3행으로써 욕과 믿음이라는 이 구()는 한 가지 모양을 이루니, 애념(愛念)이 있다는 뜻, 공덕을 찾는다는 뜻, 버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於是欲者念欲信者念善欲者覓欲功德信者覓善功德欲者不捨非可愛爲相信者不捨可愛爲相是故欲行及信行成一相

여기에서 욕이란 욕망의 대상을 늘 생각하는 것이고, 믿음이란 선을 늘 생각하는 것이다. 욕이란 욕망의 공덕을 찾는 것이고, 믿음이란 선의 공덕을 찾는 것이다. 욕이란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을 버리지 않는 것을 상()으로 삼고, 믿음이란 사랑해야 할 것을 버리지 않는 것을 상으로 삼는다. 이런 까닭에 욕행과 신행은 한 가지 모양을 이룬다.

 

何故瞋恚行及意行成一

瞋行人於善朋增長智行瞋親覲功德故復次以三行瞋恚及智成一相非愛念故覓瞋故捨故

왜 진에행과 의행이 하나를 이루는가?

진행인은 선한 친구에게서 지혜[]를 증장시키니, 성냄을 행하며 공덕을 직접 보기 때문이다. 또한 3행으로써 진에와 지혜는 한 가지 모양을 이루니, 애념이 아니기 때문이며, 성낼만한 꺼리를 찾기 때문이며, 버리기 때문이다.

 

於是瞋人非安愛念智者非安行念瞋恚人覓嗔智者覓行過患瞋人安捨智者安捨行是故瞋行人及意行成一相等故

여기서 성내는 사람은 욕망의 대상에 대한 생각을 편안해 하지 않으며, 지혜로운 사람은 행()에 대한 생각을 편안해 하지 않는다. 성내는 사람은 성낼만한 꺼리를 찾고, 지혜로운 사람은 행의 과실을 찾는다. 성내는 사람은 버림[]을 편안해 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행을 버리는 것을 편안해 한다. 이런 까닭에 진행인과 의행은 한 가지 모양을 이루니, 비슷하기 때문이다.

 

何故癡行人及覺行人成一

癡行人爲得善增長覺行癡親覲功德故信慧動離故復次以二行癡覺成一相不自定故動故

왜 치행인과 각행인이 하나를 이루는가?

치행인은 선을 얻기 위해 각을 증장시키니, 어리석음을 행하며 공덕을 직접 보기 때문이며, 믿음과 지혜가 동요하고 분산되기 때문이다. 2행으로써 치와 각은 하나의 상을 이루니, 스스로 안정되지 못하기 때문이며, 동요하기 때문이다.

 

於是癡安亂故不安覺種種覺憶故成不安癡無所趣向成動覺輕安故成動是故癡行及覺行成一相等故以此方便餘行當分別如是此成七人

여기서 치는 어지러움을 편안해 하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고, 각은 갖가지 각과 기억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치는 나아가고자 하는 바가 없어서 동요하는 것이고, 각은 편안하기 때문에 동요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치행과 각행은 한 가지 모양을 이루니,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런 방편으로써 나머지 행도 마땅히 분별하여야 한다. 이와 같이 해서 일곱 종류의 사람이 된다.

 

於此七人云何速脩行云何遲脩行

이 일곱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이 수행을 빨리하고, 어떤 사람이 수행을 더디게 하는가?

 

欲行人速脩行以安可敎化信力故癡覺薄故

욕행인은 수행을 빨리 하나니, 가히 교화하기 쉽고, 믿음[]의 힘이 있는 까닭이며, ()ㆍ각()이 거의 없는 까닭이다.

 

瞋行人速脩行安可敎化有意力故癡覺薄故

진행인도 수행을 빨리 하나니, 가히 교화하기 쉽고, ()의 힘이 있는 까닭이며, 치ㆍ각이 거의 없는 까닭이다.

 

癡行人遲脩行難可敎化有癡覺力故信意薄故

치행인은 수행이 더디나니, 가히 교화하기 어렵고, 치ㆍ각의 힘이 있는 까닭이며 신()ㆍ의()가 거의 없는 까닭이다.

 

欲瞋行人速脩行安可敎化有信意力故癡覺薄故

욕진행인은 수행이 빠르나니, 가히 교화하기 쉽고, 신ㆍ의의 힘이 있는 까닭이며 치ㆍ각이 거의 없는 까닭이다.

 

欲癡行人遲脩行難可敎化不安信故癡覺力故

욕치행인은 수행이 더디나니, 가히 교화하기 어렵고, 믿음을 편안해 하지 않는 까닭이며, 치ㆍ각의 힘이 있는 까닭이다.

 

瞋癡行人遲脩行難可敎化不安意故癡覺力故

진치행인은 수행이 더디나니, 가히 교화하기 어렵고, 의를 편안해 하지 않는 까닭이며, 치ㆍ각의 힘이 있는 까닭이다.

 

等分行人遲脩行難可敎化不安住意故有癡覺力故

등분행인은 수행이 더디나니, 가히 교화하기 어렵고, 의에 안주하지 않는 까닭이며, 치ㆍ각의 힘이 있는 까닭이다.

 

爾時此七人由本煩惱成三欲行人嗔恚行人癡行人

그때 이 일곱 종류의 사람은 근본 번뇌에 따라 세 가지가 되니, 즉 욕행인ㆍ진에행인ㆍ치행인이다.

 

此三行何因緣云何可知此欲行人此瞋行人此癡行人云何行受衣乞食坐臥行處威儀

初所造因緣諸行界爲因緣過患爲因緣

3행에는 어떠한 인연이 있는가? 이 자는 욕행인이고, 이 자는 진행인이고, 이 자는 치행인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무엇이 수의(受衣)ㆍ걸식(乞食)ㆍ좌와(坐臥)ㆍ행처(行處)ㆍ위의(威儀)를 행하는 것인가?

애초에 지었던 것이 인연이고, 모든 행계(行界)가 인연이 되고, 과환이 인연이 된다.

 

云何諸行初所造因緣於初可愛方便故多善業成欲行人復從天堂落生於此多起殺割桁械怨業成瞋行人不愛業所覆從地獄從龍生墮落生此初多飮酒離閒成癡行人從畜生墮落生此如是行初造因緣

애초에 지었던 모든 행이 인연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애초에 방편을 좋아한 까닭에 선업을 많이 지으면 욕행인이 된다. 또 천당으로부터 이곳에 떨어져 태어난 경우이다. 죽이고, 베고, 형틀을 채우고, 원망하는 등의 업()을 많이 일으키면 진행인이 된다. () 불애업(不愛業)에 뒤덮이거나 지옥으로부터, 용으로부터 떨어져 이곳에 태어난 경우이다. 애초에 음주를 많이 하고 이간질하면 치행인이 된다. () 축생으로부터 떨어져 이곳에 태어난 경우이다. 이와 같은 행들이 애초에 지은 인연이다.

 

云何界爲因緣二界最近故成癡行人所謂地界水界二界最近故成瞋行人所謂火界風界四界等故成欲行人如是諸行界爲因緣

계가 인연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2계가 가장 가까운 까닭에 치행인이 되니, 소위 지계(地界)와 수계(水界)이다. 2계가 가장 가까운 까닭에 진행인이 되니, 소위 화계(火界)와 풍계(風界)이다. 4계가 균등한 까닭에 욕행인이 된다. 이와 같이 모든 행은 계가 인연이 된다.

 

云何過患爲因緣最多淡成欲行人最多瞻成瞋行人最多風成癡行人復有說最多淡成癡行人最多風成欲行人如是過患爲因緣

과환이 인연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가장 많은 사람은 욕행인이 되고, ()이 가장 많은 사람은 진행인이 되며, ()이 가장 많은 사람은 치행인이 된다. 또 담이 가장 많은 사람이 치행인이 되고, 풍이 가장 많은 사람이 욕행인이 된다는 말도 있다. 이와 같이 관환이 인연이 된다.

 

云何可知此人欲行此人瞋行此人癡行

以七行可知如是以事以煩惱以行以受取以食以業以臥

이 사람은 욕행이고, 이 사람은 진행이고, 이 사람은 치행이라는 것을 고 어떻게 알 수 있는가?

7행으로써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사()로써, 번뇌로써, 행으로써, 수취(受取)로써, ()으로써, ()으로써, ()로써 알 수 있다.

 

云何以事可知

欲行人見所有事未常見而見旣見恒觀於眞實過患不作意於小功德成不難不從此欲解脫旣觀不能捨行知於餘事諸如是行欲行可知

()로써 알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욕행인은 어떤 일을 봄에 있어서 보지 못하던 것을 보듯이 하고, 보고 나서는 항상 진실하다고 관찰하며 과환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조금만 공덕이 있어도 어렵지 않게 긍정하여 이런 욕심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하며, 관찰하고 나서는 능히 행을 버리지 못한다. 다른 일에 있어서도 모두 이와 같이 행한다는 걸 알았다면, 욕행임을 알 수 있다.

 

嗔行人者見所有如是事如倦不能久看隨取過患多毀人於多功德非不難從此不捨唯以過患得已便知行餘事亦如是行瞋行可知

진행인은 이와 같은 일을 봄에 있어서 권태로운 듯 오랫동안 보지 못하고, 모든 일에서 과환을 취해 사람들을 헐뜯는 일이 많다. 많은 공덕이 있음에도 어렵지 않게 부정하여 이로부터 버리지 못하고, 오직 과환으로써 자신의 편리를 얻는다. 다른 일을 행함에 있어서도 이와 같이 행함을 알았다면, 진행임을 알 수 있다.

 

癡行人見所有如是事於功德過患成信他聞他人所薄亦薄聞他所讚歎亦讚歎自不知故以如是行於外事癡行可知如是以事

치행인은 이와 같은 일을 봄에 있어서 공덕과 과환에 대해 남을 믿는다. 다른 사람이 경멸하는 것이면 그 말을 듣고 자신도 경멸하고, 다른 사람이 칭찬하는 것이면 그 말을 듣고 자신도 칭찬하니, 스스로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외사(外事)를 행하면 치행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사로써 알 수 있다.

 

云何以煩惱可知

欲行人五煩惱多行嫉此謂五嗔恚行人五煩惱多行忿此謂五癡行人五煩惱多行懶懈怠無明是五如是以煩惱可知

번뇌로써 알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욕행인은 5번뇌를 많이 행하니, ()ㆍ간()ㆍ환()ㆍ첨()ㆍ욕() 이것을 다섯 가지라 한다. 진에행인도 5번뇌를 많이 행하니, (忿)ㆍ한()ㆍ부()ㆍ간()ㆍ진() 이것을 다섯 가지라 한다. 치행인도 5번뇌를 많이 행하니, ()ㆍ해태(懈怠)ㆍ의()ㆍ회()ㆍ무명(無明) 이것을 다섯 가지라 한다. 이와 같이 번뇌로써 알 수 있다.

 

云何以行

欲行人見行以性擧腳疾行平擧腳平下腳不廣擧腳可愛行如是以行欲行可知嗔恚行人見行以性急起腳急下相觸以半腳入地如是已行瞋恚人可知癡行人見行以性起腳摩地亦摩下以腳觸腳行以如是行癡行人可知如是以行

걸음[]으로 알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욕행인이 걷는 것을 보면 습관적으로 다리를 들어 빨리 걸으며, 편안히 다리를 들고 편안히 다리를 내리며, 보폭이 넓지 않고, 사랑스럽게 걷는다. 이와 같이 행으로써 욕행을 알 수 있다. 진에행인이 걷는 것을 보면 습관적으로 급히 다리를 올렸다가 급히 내려 서로 부딪치고, 발바닥이 반만 땅에 닿는다. 이와 같이 걸었다면 진에인임을 알 수 있다. 치행인이 걷는 것을 보면 습관적으로 다리를 들면서 땅을 쓸고 내릴 때도 쓸며, 다리로 다리를 부딪치면서 걷는다. 이와 같은 행으로써 치행인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행으로써 알 수 있다.

 

云何以著衣欲行人

欲行人若捉衣以性不多見不寬著衣太下周正圓種種可愛可見瞋行人著衣以性大急太上不周正不圓不種種可愛不可觀癡行人若著衣以性多寬不周正不圓非種種可愛可觀如是以著衣可知

옷 입는 것[著衣]으로 욕행인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욕행인은 옷을 입을 때 습관적으로 너무 서둘지도 않고 느슨하게도 하지 않으며, 너무 내리지도 않는다. 고르고 바르고 원만하며, 여러 가지로 사랑스럽고 보기도 좋다. 진행인은 옷을 입을 때 습관적으로 몹시 급하고, 너무 위로 올리며, 고르지도 바르지도 않고, 원만치 못하며, 여러 가지로 사랑스럽지 못하고, 볼만하지도 않다. 치행인은 옷을 입을 때 습관적으로 너무 느슨하게 입어 고르지도 바르지도 않고, 원만치 못하며, 여러 가지로 사랑스럽지 못하고, 볼만하지도 않다. 이와 같이 옷 입는 것으로 알 수 있다.

 

云何以食可知

欲行人樂肥甜瞋恚行人樂酢癡行人不定樂復次欲行人食時自量相應中適取揣食亦知氣味不速食若得少味成大歡喜瞋行人見食多取揣食滿口食若得少味大瞋惱癡行人見食不圓小揣食不中適少取以食塗染其口半揣入口半墮盤器亂心不思惟食如是以欲可知

먹는 것[]으로 알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욕행인은 비리고 단 것을 좋아하고, 진에행인은 신 것을 좋아하고, 치행인은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없다. 또 욕행인은 식사 때에 자신의 양에 상응하도록 적당하게 취하고 뭉쳐서 먹으며, 또 그 맛을 음미하면서 빨리 먹지 않으며, 조금만 맛있어도 크게 기뻐한다. 진행인이 먹는 걸 보면 많이 취하고 뭉쳐서 입 속에 가득 넣어 먹으며, 조금만 맛이 없어도 크게 화를 낸다. 치행인이 먹는 걸 보면 둥글지 않게 작게 뭉쳐서 먹고, 적당치 않게 조금만 취하고, 음식을 입 주위에 발라 지저분하게 하고, 반은 집어 입 속에 넣고 반은 그릇에 떨어뜨리며, 산란한 마음으로 정신 차리지 않고 먹는다. 이와 같이 먹는 것으로 알 수 있다.

 

云何以事知

欲行人掃地平身捉掃帚不駃不知土沙而能淸淨瞋行人若掃地急捉掃帚兩邊駃除去土沙急聲雖淨潔而不平等愚癡行人若掃地寬捉掃帚輾轉看盡處處不淨亦不平等如是浣染縫等一切事平等作不與心是欲人嗔行人於一切事不平等作不與心癡行人亂心多作不成如是以事可知

일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욕행인은 마당을 청소할 때 편안한 자세로 빗자루를 잡고, 빠르지 않게 토사(土沙)가 없도록 하면서도 능히 청정하게 한다. 진행인이 마당을 쓸면 빗자루를 바짝 잡고서 양쪽으로 빠르게 토사를 제거하면서 급한 소리를 내며, 비록 청결하더라도 평등치 못하다. 우치행인(愚癡行人)이 마당을 쓸면 느슨하게 빗자루를 잡고 이리저리 훑고 지나가기에 곳곳이 깨끗하질 못하고 또 평등치 못하다. 이와 같이 빨래[]ㆍ염색[]ㆍ바느질[] 등 일체의 일을 평등하게 행하지만 정성을 다하지 않는 것이 욕행인이다. 진행인은 모든 일을 불평등하게 행하고 정성을 다하지 않는다. 치행인은 흐트러진 마음으로 많은 일을 저지르면서 완성하지 못한다. 이와 같이 일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云何以臥坐

欲行人眠不駃眠先拼擋臥處令周正平等安隱置身屈臂眠夜中有喚卽起如有所疑卽答瞋行人若眠駃隨得所安置身面目頻蹙於夜若有人喚卽起瞋答癡人若眠臥處不周正放手腳覆身而臥夜中若有人喚應聲噫噫久時方答如是以臥可知

눕고 앉는 것[臥坐]으로 알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욕행인은 잠잘 때 서두르지 않는다. 잠잘 때는 먼저 잠자리를 깔고 덮어 반듯하고 평평하게 하며, 몸을 편안하게 누이고, 팔을 굽혀 잠을 잔다. 밤중에 누군가 부르면 곧 일어나고, 의심스러운 것이 있으면 곧 대답한다. 진행인은 잠잘 때 서두르며, 자리를 펴자마자 몸을 눕히고, 얼굴을 찌푸리고 잔다. 밤에 만약 누군가 부르면 곧 일어나 성을 내며 대답한다. 치인(癡人)은 잠잘 때 잠자리가 반듯하지 못하고, 손과 발을 함부로 하며 몸을 뒤집어 눕는다. 밤중에 누군가 부르면 어어 하며 대꾸하다가 한참만에야 대답한다. 이와 같이 눕는 것으로 알 수 있다.

 

問何行何法用受衣乞食坐臥行處

欲行人衣麤不下色可憎是與其衣當著瞋行人衣精細衣淨潔好色下可愛是應當著癡行人衣隨所得當著

어떤 행에 어떤 법으로 수의(受衣)ㆍ걸식ㆍ좌와ㆍ행처를 사용해야 하는가?

욕행인은 거친 옷, 물들이지 않고 혐오스러운 그런 옷을 마땅히 입어야 한다. 진행인은 곱고 촘촘한 옷, 정결하고 곱게 염색하고 사랑스러운 옷, 이런 것을 마땅히 입어야 한다. 치행인은 옷을 얻는 대로 입어야 한다.

 

欲行人乞食麤不淨潔無美氣味少乞食瞋行人乞食肥美淨潔好氣味如意所得癡行人乞食隨所得有節

욕행인은 걸식할 때 거칠고, 정결하지 않고, 맛이 없는 것을 조금만 걸식해야 한다. 진행인은 걸식할 때 기름지고, 화려하고, 정결하고, 맛이 좋은 것을 뜻하는 대로 얻어야 한다. 치행인은 걸식할 때 얻는 대로 절도 있게 먹어야 한다.

 

欲行人臥坐於樹影水閒於小遠村處復於未成寺於無臥具處是其當眠坐瞋行人坐臥樹影水邊成就平正於寺已成臥具具足成其坐臥處癡行人依師親覲當住

욕행인은 나무 그늘이나 물가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앉고 누워야 한다. 또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절, 와구가 없는 곳, 그런 곳에서 마땅히 앉고 누워야 한다. 진행인은 나무 그늘이나 물가라도 편편하고 반듯한 곳에서 앉고 누워야 하며, 이미 완성된 절이나 와구가 갖추어진 곳에서 앉고 눕는 자리를 성취해야 한다. 치행인은 스승을 의지해 직접 보고 머물러야 한다.

 

欲行人行處麤飯飮食處若入聚落應向日而行於惡人處是其當行瞋恚行人處於飯水飮食具足逐日而入多信向人處是其當入癡行人隨所得處

욕행인이 다닐 곳[行處]은 거친 반찬과 음식이 있는 곳이다. 만약 취락에 들어간다면 마땅히 햇볕을 안고 걸어야 하며, 악인의 처소가 바로 다녀야 할 곳이다. 진에행인은 밥과 물, 음식이 구족한 곳에 햇볕을 등지고 들어가야 하며, 신심이 많은 사람들의 처소가 바로 들어가야 할 곳이다. 치행인은 주어진 곳에 따른다.

 

欲行人威儀多行腳處嗔行人依坐臥癡行人依行處

욕행인은 위의에 있어 행각하는 처소를 늘려야 하며, 진행인은 앉고 눕는 곳에 의지해야 하며, 치행인은 행처에 의지해야 한다.

 

於是散向欲者依可愛境界爲信瞋恚者不可愛境界爲信癡者不觀爲因欲者如奴瞋恚者如主癡者如毒貪者少過患斷無染瞋恚大過患使無染癡者大過患斷無染欲行人樂色瞋行人樂諍癡行人樂懈怠

여기에 산구(散句)가 있다. 욕심내는 자는 좋아할 만한 경계를 의지해 믿음을 삼고, 성내는 자는 좋아해서는 안 되는 경계를 믿음으로 삼고, 어리석은 자는 관찰하지 않는 것을 인()으로 삼는다. 욕심내는 자는 노예와 같고, 화내는 자는 주인과 같고, 어리석은 자는 독()과 같다. 탐욕은 작은 과환이니 끊어서 물듦이 없게 하고, 성냄은 큰 과환이니 물듦이 없게 하고, 어리석음은 큰 과환이니 물듦이 없게 하라. 욕행인은 색을 좋아하고, 진행인은 다툼을 좋아하고, 치행인은 게으름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