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자료

4. 분별정품(分別定品)

bunnehaital 2022. 9. 24. 21:01

4. 분별정품(分別定品)

 

爾時淨戒坐禪人已行頭陁受成就勝善處當何所作令定起

그때 청정히 계율을 지키며 좌선하는 사람이 이미 두타법을 수지해 실천한다면 수승하고 훌륭한 경지[勝善處]를 성취하기 위해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을 일으켜야 한다.

 

何定何相何味何起何處何人受禪解脫定正受何差別幾定因可見以此起定障定有幾法幾定功德定幾衆具幾種定云何起定

정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일어남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는가? 어떤 사람이 받는가? ()ㆍ해탈ㆍ정ㆍ정수(正受)에는 어떤 차별이 있는가? 볼 수 있고, 이것으로 정을 일으키는 정의 원인은 몇 가지인가? 정을 장애하는 것에는 몇 가지 법이 있는가? 정의 원인에는 몇 가지가 있는가? 정의 공덕은 몇 가지인가? 정에 필요한 여러 도구는 몇 가지인가? 정은 몇 종류인가? 어떻게 정을 일으키는가?

 

定者有淸淨心一向精進與寂靜功德等正眞住不亂此謂定復次煩惱猛風無傾心慮如殿裏燈光焰不動如阿毘曇說若心正住無所攀緣亦不動亂寂靜無著正定定根定力此謂爲定

정이란 청정한 마음을 지니고 한결같이 정진하여 적정의 공덕 등과 더불어 올바로 참되게 머물러 산란함이 없는 것, 이것을 정이라 한다. 또 번뇌의 맹렬한 바람이 마음을 흔드는 일이 없는 것이 전각 안 등불의 빛과 불꽃이 움직이지 않음과 같은 것이다. 아비담에서 마음이 올바로 머물러 반연하는 바 없고, 또한 어지럽게 움직이지 않으며, 적정하고 집착하는 바 없으며, 정근(定根)ㆍ정력(定力)을 올바로 하는 것, 이것을 정이라 한다고 설한 것과 같다.

 

云何相何味何起何處心住是相伏怨是味寂靜是起於染不著心得解脫是名爲處

무엇이 상이고, 무엇이 맛이고, 무엇이 일어남이고, 무엇이 처인가. 마음이 머무는 것이 상이며, 원한을 굴복시키는 것이 맛이며, 적정한 것이 일어남이며, 번뇌에 물들지 않고 마음이 해탈을 얻는 것을 처라 한다.

 

何人受定謂受心數等方便定等如手執稱令心心數等如鉢中油念與精進等行爲定猶如四馬齊力牽車思惟等爲定如彼箭師注心調直以除怨故如藥消毒如毘曇說斂攝是定義從是定義滿是定義

어떤 사람이 정을 받아들이는가. 소위 손으로 저울을 잡듯이 심수(心數) 등을 받아들여 일정하게 유지하고 방편정(方便定)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며, 발우 속의 기름처럼 심()과 심수(心數)를 일정하게 하는 것이다. 네 마리 말이 고르게 힘을 써 마차를 끌듯이 염()과 정진(精進)을 일정하게 행하는 것을 정이라 하고, 화살을 만드는 장인이 온 마음을 기울여 곧게 펴는 것처럼 사유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을 정이라 한다. 원한을 없애기 때문이니, 약이 독을 해소시키는 것과 같다. 비담에서 말했듯이 거두어 포섭하는 것이 정의 뜻이고, 이를 따르는 것이 정의 뜻이며, 이를 만족하는 것이 정의 뜻이다.

 

禪者四禪謂初禪等解脫者謂八解脫內有色想外觀色等定者三定謂有覺有觀等正受者謂九次第正受

()이란 4선이니, 소위 초선(初禪) 등이다. 해탈이란 소위 8해탈이니, []으로 색상(色想)을 가지며 밖[]으로 색을 관하는 것 등이다. 정이란 3정이니, 소위 유각유관(有覺有觀) 등이다. 정수(定受)란 소위 9차제의 정수이다.

 

云何爲禪思惟事故思惟怨故心喜樂故離障解脫故令平等故方便發定故得自在故不以一義住正受故樂起定故解脫正受者

왜 선을 하는가. 사물을 사유하기 때문이고, 원한을 사유하기 때문이며, 마음이 기쁘고 즐겁기 때문이고, 장애를 벗어나 해탈하기 때문이며, 평등하게 하기 때문이고, 방편으로 정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며, 자재를 얻기 때문이고, 1()로써 정수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며, 기꺼이 정을 일으키기 때문이고, 해탈의 정수이기 때문이다.

 

幾功德令定得起見四功德令定得起云何爲四現見法樂樂住以觀樂事神通現證有具足

몇 가지 공덕이 정을 일으키는가. 네 가지 공덕을 보면 정을 일으킬 수 있다. 무엇이 네 가지 공덕인가. 현재 법의 즐거움을 보고 그 즐거움에 머무는 것, ()으로써 사물을 즐기는 것, 신통을 현재에 증득하는 것, ()가 구족하는 것이다.

 

何者現見法樂樂住謂人得定能生無漏心起悅味受出世樂現見法樂樂住是故世尊說彼此身從靜生喜使得淸涼令漸圓滿具足成就等如佛告比丘我先作尼乾七日七夜身不動搖口不言說默然端住一向受樂是謂於聖法現見法樂樂住

무엇이 현재 법의 즐거움을 보고 그 즐거움에 머무는 것인가. 소위 사람이 정을 얻으면 무루를 일으킬 수 있고 마음에 희열이 생겨나 세간을 벗어난 즐거움을 누리며, 법의 즐거움을 현재에서 보고 그 즐거움에 머문다. 이런 까닭에 세존께서는 이런 저런 몸에서 고요함으로부터 기쁨이 생겨 청량(淸凉)을 얻게 하며, 점차 원만하게 하여 구족하게 성취한다등으로 설하셨다. 또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나는 예전 니건(尼乾)이었을 때, 7일 낮ㆍ밤을 몸을 움직이지 않고 입은 말하지 않고 침묵하면서 단정히 앉아 한결같이 즐거움을 누렸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이것이 소위 성법(聖法)에서 현재 법의 즐거움을 보고 그 즐거움에 머문다는 것이다.

 

以觀樂事者謂坐禪人得心定事無有蓋纏調柔堪受持觀見陰入界等自性安樂是故世尊敎諸比丘應當脩行如是一切以心依如實知

관으로써 사물을 즐기는 것이란, 소위 좌선인이 마음으로 정을 얻어 개()와 전()이 없고, 유연히 조절하여 능히 수지하며, ()ㆍ입()ㆍ계() 등을 관하고 보아 자성이 안락해진 것이다. 이런 까닭에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에게 마땅히 수행하여야 한다. 이와 같이 일체는 마음을 의지처로 삼아 여실히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神通現證者已得定人依證五通謂如意天耳他心宿命天眼是故世尊說已得心定隨宜轉變如是一切令得如意

신통을 현재에 증득하는 것이란 이미 정을 얻은 사람이 그에 의해 5통을 증득하는 것이니, 소위 여의(如意)ㆍ천이(天耳)ㆍ타심(他心)ㆍ숙명(宿命)ㆍ천안(天限)이다. 이런 까닭에 세존께서 이미 마음에 정을 얻었다면 뜻하는 바에 따라 전변한다. 이와 같이 일체를 뜻대로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有具足者已得定人未到無學終令不退由定得報得色無色有具足如佛所說少修初禪得梵天眷屬如是種類一切生彼如是一切此四功德能生彼定一一當起

()가 구족하는 것이란 이미 정을 얻었다면 그 사람은 아직 무학(無學)에 이르지 못했더라도 끝내 물러나지 않으며, 정으로 인해 과보를 얻어 색유(色有)나 무색유(無色有)가 구족하게 된다. 부처님께서 초선을 조금만 닦아도 범천의 권속이 된다. 이와 같은 종류 일체는 그와 같은 일체를 생기게 한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이 네 가지 공덕은 그 정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하나하나를 마땅히 일으켜야 한다.

 

障定有幾者謂八法欲欲嗔恚懈怠睡眠調戲疑惑無明無喜樂一切惡法是障法

정을 장애하는 것에는 몇 가지가 있는가. 소위 8법인 욕욕(欲欲)ㆍ진에(嗔恚)ㆍ해태(懈怠)ㆍ수면(睡眠)ㆍ조희(調戱)ㆍ의혹(疑惑)ㆍ무명(無明)ㆍ무희락(無喜樂)이며, 일체의 악법이 장애가 되는 법이다.

 

幾定因者謂有八法是因出離不嗔明相不亂一切善法令心歡喜能生法智是爲定因

정의 원인에는 몇 가지가 있는가. 소위 원인이 되는 8법이 있다. 벗어나는 것[出離], 화내지 않는 것[不嗔], 밝음을 생각하는 것[明相], 혼란스럽지 않은 것, 일체의 선법, 마음을 환희케 하는 것, 능히 법지(法智)를 일으키는 것, 이것이 정의 원인이다.

 

幾定資者謂有七種戒衆具知足覆蔽根門節量飮食初中後夜而不睡眠常念智慧住處靜寂

정에 자량이 되는 것은 몇 가지인가. 소위 일곱 가지가 있으니, 곧 계, 여러 살림살이에 만족할 줄 아는 것, 6근의 문[根門]을 덮고 가리는 것, 적절한 양을 마시고 먹는 것, 초야ㆍ중야ㆍ후야에 잠들지 않는 것, 항상 지혜를 염두에 두는 것, 머무는 곳이 고요한 것이다.

 

定有幾種者定有二種一世閒定二出世閒定聖果所得謂出世定餘名世定其世閒定是有漏有結有縛是流是厄是蓋是戒盜見盜是取是煩惱此謂世閒定與此相違名出世定

정에 몇 종류가 있는가. 정에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세간정(世間定)이고, 둘째는 출세간정(出世間定)이다. 성과(聖果)를 얻는 것을 출세간정이라 하고, 나머지를 세간정이라 한다. 그 세간정은 루()가 있고, ()이 있고, ()있으며, 이것은 류()이고, 이것은 액()이고, 이것은 개()이고, 이것은 계도(戒盜)ㆍ견도(見盜)이고, 이것은 취()이고, 이것은 번뇌이다. 이것을 세간정이라 한다. 그리고 이것과 서로 반대되는 것을 출세간정이라 한다.

 

復次定有二種邪定正定云何邪定不善一心是謂邪定若善一心是謂正定邪定當斷正定應修

또 정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사정(邪定)과 정정(正定)이다. 무엇이 사정인가. 착하지 않은 것을 일심으로 하는 것, 이것을 사정이라 한다. 만약 착한 것을 일심으로 한다면 이것은 정정이다. 사정은 마땅히 끊어야 하고, 정정은 마땅히 닦아야 한다.

 

復次定有二種外定安定彼彼定初分此謂外定性除無閒此謂安定

또 정에 두 종류가 있으니, 외정(外定)과 안정(安定)이다. 이런 저런 선정의 초입 부분을 외정이라 하고, 성제무간(性除無間)을 안정이라 한다.

 

復次定有三種有覺有觀定無覺少觀定無覺無觀定云何有覺有觀謂初禪有覺有觀二禪無覺少觀餘禪無覺無觀

또 정에 세 종류가 있으니, 유각유관정(有覺有觀定)ㆍ무각소관정(無覺少觀定)ㆍ무각무관정(無覺無觀定)이다. 무엇이 유각유관인가. 소위 초선이 유각유관이고, 2선이 무각소관, 나머지 선이 무각무관이다.

 

復次定有三種謂共喜生定共樂生定共捨生定初禪二禪謂共喜生三禪謂共樂生四禪謂共捨生

또 정에 세 종류가 있으니, 소위 기쁨과 함께 생기는 정[共喜生定]ㆍ즐거움과 함께 생기는 정[共樂生定]ㆍ평정과 함께 생기는 정[共捨生定]이다. 초선ㆍ2선을 기쁨과 함께 생기는 것이라 하고, 3선을 즐거움과 함께 생기는 것이라 하며, 4선을 평정과 함께 생기는 것이라 한다.

 

復次定有三種善定報定事定云何善定聖道學人及凡夫修色無色定是謂善定聖果學人凡夫生色無色界是謂報定無學人受色無色定是謂事定

또 정에 세 종류가 있으니, 선정(善定)ㆍ보정(報定)ㆍ사정(事定)이다. 무엇이 선정인가. 성도(聖道)의 학인 및 범부가 색정(色定)ㆍ무색정(無色定)을 닦는 것, 이것을 선정이라 한다. 성과(聖果)의 학인 및 범부가 색계ㆍ무색계에 태어나는 것, 이것을 보정이라 한다. 무학(無學)의 사람이 색정ㆍ무색정을 받아들이는 것, 이것을 사정이라 한다.

 

復次定有四種欲定色定無色定無所受定謂彼彼行正受行是謂欲定四禪是謂色定四無色定及善業報此謂無色定四道果謂無所受定

또 정에 네 종류가 있으니, 욕정(欲定)ㆍ색정(色定)ㆍ무색정(無色定)ㆍ무소수정(無所受定)이다. 소위 이런 저런 이들이 행하는 정수행(正受行)을 욕정이라 하고, 4선을 색정이라 하며, 4무색정 및 선업의 과보를 무색정이라 하고, 4도과(道果)를 무소수정이라 한다.

 

又定有四種修行謂苦修行鈍智苦修行利智樂脩行利智樂修行鈍智

또 정에 네 종류의 수행이 있으니, 소위 고통스럽게 수행하고 지혜가 둔한 경우[苦修行鈍智]ㆍ고통스럽게 수행하고 지혜가 예리한 경우[苦修行利智]ㆍ즐겁게 수행하고 지혜가 둔한 경우[樂修行利智]ㆍ즐겁게 수행하고 지혜가 예리한 경우[樂修行鈍智]이다.

 

此四人一者密煩惱二者疏煩惱三者利根四者鈍根於密煩惱人鈍根苦脩行鈍智得定密煩惱利根苦脩行利智得定疏煩惱人鈍根樂脩行鈍智得定疏煩惱利根樂修行利智得定

이 네 사람의 첫째는 번뇌가 치밀한 자[密煩惱], 둘째는 번뇌가 엉성한 자[疎煩惱], 셋째는 근기가 예리한 자[利根], 넷째는 근기가 둔한 자[鈍根]이다. 번뇌가 치밀한 사람이 근기가 둔할 경우에는 고통스럽게 수행하여 둔한 지혜로 정을 얻는다. 번뇌가 치밀한 사람이 근기가 예리할 경우에는 고통스럽게 수행하여 예리한 지혜로 정을 얻는다. 번뇌가 엉성한 사람이 근기가 둔할 경우에는 즐겁게 수행하여 둔한 지혜로 정을 얻는다. 번뇌가 엉성한 사람이 근기가 예리할 경우에는 즐겁게 수행하여 예리한 지혜로 정을 얻는다.

 

於是密煩惱人已密煩惱故苦折伏煩惱是故苦脩行鈍根人以鈍根故久積禪行覺鈍智是故名鈍智以此方便一切應分別

여기서 번뇌가 치밀한 사람은 이미 번뇌가 치밀하기 때문에 고통스럽게 번뇌를 절복시킨다. 이런 까닭에 고통스럽게 수행한다. 근기가 둔한 사람은 근기가 둔한 까닭에 오랫동안 선행(禪行)을 쌓아 둔한 지혜로 깨닫는다. 이런 까닭에 둔한 지혜라 한다. 이런 방편으로 일체를 분별해야 한다.

 

復次定有四種謂小定小事小定無量事無量定小事無量定無量事

또 정에 네 종류가 있으니, 소위 소정소사(小定小事)ㆍ소정무량사(小定無量事)ㆍ무량정소사(無量定小事)ㆍ무량정무량사(無量定無量事)이다.

 

云何小定小事定不隨心所得定小精進此謂小定小事云何小定無量事定不隨心所得彼事大精進此謂小定無量事云何無量定小事定隨心所得彼事小精進此謂無量定小事云何無量定無量事定已隨心所得彼事大精進此謂無量定無量事

무엇이 소정소사인가. 정은 마음이 얻는 바를 따르지 않고 정은 소정진(小精進)인 것을 소정소사라 한다. 무엇이 소정무량사인가. 정은 마음이 얻는 바를 따르지 않고 그 일은 대정진(大精進)인 것을 소정무량사라 한다. 무엇이 무량정소사인가. 정은 마음이 얻는 바를 따르고 그 일이 소정진인 것을 무량정소사라 한다. 무엇이 무량정무량사인가, 정은 이미 마음이 얻은 바를 따르고 그 일도 대정진인 것을 무량정무량사라 한다.

 

復次定有四種欲定精進定心定慧定欲定者依欲脩得謂爲欲定依精進得謂精進定依心修得謂爲心定依慧修得謂爲慧定

또 정에 네 종류가 있으니, 욕정(欲定)ㆍ정진정(精進定)ㆍ심정(心定)ㆍ혜정(慧定)이다. 욕정이란 욕망을 의지해 닦아 얻는 것을 욕정이라 한다. 정진을 의지해 얻는 것을 정진정이라 하고, 마음을 의지해 닦아 얻는 것을 심정이라 하고, 지혜를 의지해 닦아 얻는 것을 혜정이라 한다.

 

復次定有四種有定是佛所得非聲聞所得有定聲聞所得非佛所得有定是佛所得及聲聞所得有定非佛所得非聲聞所得大悲定雙變定是佛所得非聲聞所得學果定是聲聞所得非佛所得九次第定無學果定佛所得及聲聞得無想定非佛所得非聲聞得

또 정에 네 종류가 있다. 어떤 정은 부처님이 얻는 것이고 성문이 얻는 것은 아니다. 어떤 정은 성문이 얻는 것이고 부처님이 얻는 것은 아니다. 어떤 정은 부처님이 얻는 것이기도 하고 성문이 얻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정은 부처님이 얻는 것도 아니고 성문이 얻는 것도 아니다. 대비정(大悲定)ㆍ쌍변정(雙變定)은 부처님이 얻는 것이고 성문이 얻는 것이 아니다. 학과정(學果定)은 성문이 얻는 것이고 부처님이 얻는 것은 아니다. 9차제정(次第定)ㆍ무학과정(無學果定)은 부처님도 얻고 성문도 얻는 것이다. 무상정(無想定)은 부처님이 얻는 것도 아니고 성문이 얻는 것도 아니다.

 

復次定有四種有定爲起不爲滅有定爲滅不爲起有定爲起爲滅有定不爲起亦不爲滅

또 정에 네 종류가 있다. 어떤 정은 생기게 하고 소멸하게 하지는 않으며, 어떤 정은 소멸하게 하고 생기게 하지는 않으며, 어떤 정은 생기게 하고 또 소멸하게 하며, 어떤 정은 생기게 하지도 않고 소멸하게 하지도 않는다.

 

云何爲起不爲滅

欲界善不善定此謂爲起不爲滅四聖道定是爲滅不爲起學及凡夫色無色善定爲起亦爲滅一切果定及事定非爲起非爲滅

무엇이 생기게 하고 소멸하게 하지는 않는 것인가?

욕계의 선한 정[善定]과 선하지 못한 정[不善定], 이것을 생기게 하고 소멸하게 하지는 않는 것이라 한다. 네 가지 성도의 정[四聖道定], 이것은 소멸하게 하고 생기게 하지는 않는 것이다. 학인 및 범부의 색()과 무색(無色)의 선한 정은 생기게 하고 또 소멸하게 하는 것이다. 일체 과위의 정[果定] 및 사정(事定)은 생기게 하지도 않고 소멸하게 하지도 않는 것이다.

 

復次定有四種初禪二禪三禪四禪離於五蓋成就覺一心此謂初禪離於覺觀成就三枝離喜成就二枝離樂捨一心成就第四禪

또 정에 네 종류가 있으니, 초선ㆍ2선ㆍ3선ㆍ4선이다. 5()를 떠나 ()ㆍ관()ㆍ희()ㆍ락()ㆍ일심(一心)을 성취하는 것을 초선이라 하고, 각과 관을 떠나 나머지 세 가지를 성취하는 것을 (2선이라 하며), 희를 떠나 나머지 두 가지를 성취하는 것을 3선이라 하고, 낙을 떠나 사()와 일심으로 제4선을 성취한다.

 

復次定有五種謂初禪二禪三禪四禪五禪五禪者爲五枝一心離五蓋成就五枝是謂初禪離覺成就四枝是謂二禪離喜成就二枝是謂三禪離樂成就二分謂第四禪所謂捨一心

또 정에 다섯 종류가 있으니, 초선ㆍ2선ㆍ3선ㆍ4선ㆍ5선이다. 5선이란 각ㆍ관ㆍ희ㆍ락ㆍ일심의 다섯 가지를 하는 것이다. 5개를 떠나 이 다섯 가지를 성취하는 것을 초선이라 한다. 각을 떠나 나머지 네 가지를 성취하는 것을 2선이라 하고, 희를 떠나 나머지 두 가지를 성취하는 것을 3선이라 한다. 낙을 떠나 2()을 성취하는 것을 제4선이라 하니, 소위 사와 일심이다.

 

 

何故說四禪及五禪

由二人報故第二禪二種謂無覺無觀無覺少觀

4선 및 5선을 설하는가?

2인의 과보에 의하는 까닭이다. 2선에 두 종류가 있으니, 소위 무각무관(無覺無觀)과 무각소관(無覺少觀)이다.

 

是誰坐禪人令初禪自在起第二禪

於麤覺觀攝念思惟復知覺過患令起無覺觀第二禪是其修四禪次第復有一人已令初禪自在現起第二禪於麤覺攝念思惟唯知覺過患見無覺少觀起第二禪是其受五禪次第是故說於五禪

이것은 어떤 사람이 좌선하는 사람이고, 초선으로부터 자재하게 제2선을 일으키는가?

거친 각과 관[麤覺觀]에서 생각을 포섭해[攝念] 사유하고, 또 각과 관의 과실을 알아 각과 관이 없는 제2선을 일으키게 하면, 이것이 그 4선을 닦는 차제이다. 또 어떤 사람은 이미 초선을 자재하게 하고는 현재에서 제2선을 일으켜 거친 각에서 생각을 포섭해 사유하고 오로지 각의 과실만 알아 무각소관(無覺少觀)을 보고 제2선을 일으키니, 이것이 5선을 받는 차제이다. 이런 까닭에 5선을 설한다.

 

復五種定謂五分正受喜滿樂滿心滿光滿觀想於是初禪二禪喜滿於是三禪樂滿於他心智是名心滿於天眼通是名光滿從彼彼定起觀智是名觀想

또 다섯 종류의 선정이 있다. 소위 5()의 정수(正受)이니, 희만(喜滿)ㆍ낙만(樂滿)ㆍ심만(心滿)ㆍ광만(光滿)ㆍ관상(觀想)이다. 여기서 초선과 2선은 희만이고, 3선은 낙만이고, 타심지에서 이것을 심만이라 하고, 천안통에서 이것을 광만이라 하고, 이런 저런 선정으로부터 관지(觀智)를 일으키는 것을 관상이라 한다.

 

復次定有五種謂五智正定此現在樂亦未來樂報依身智起此定是聖所行無煩惱此定慧人脩習此定寂寂快樂猗所得成就無二不伏生死此定寂寂最樂猗成一性所得非伏生死我此定念入念起依身智起

또 선정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소위 5()의 정정(正定)이다. 이것은 현재도 즐겁고 미래에도 즐거운 과보가 있으며, 신지(身智)를 의지해 일어난다. 이 선정은 성인이 행하는 것이고, 번뇌가 없는 것이다. 이 정은 지혜로운 사람이 닦는 것이다. 이 선정은 적적하고 쾌락하며 의()로 얻는 것으로서 무이(無二)를 성취해 생사를 제압하지 않는다. 이 선정은 적적하고 최고로 즐거우며 의()가 일성(一性)을 이루어 얻는 것으로서 태어나고 죽는 아()를 제압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선정은 생각[]으로 들어가고 생각으로 일어나며, 신지(身智)를 의지해 일어난다.

 

復次已分別行處已分別修行事及下中上以如是定有多種可知一切諸定皆入四定

또 이미 행처를 분별하였고, 이미 수행사(修行事) 및 하ㆍ중ㆍ상을 분별하였다. 이와 같이 선정에는 많은 종류가 있지만 일체의 모든 선정이 다 4선정에 들어감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