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탈도론 제4권
8. 행문품(行門品)
問:云何地一切入?何脩?何相?何味?何處何功德?一切入者何義?幾種地?何地取相?云何作曼陁羅法?何脩地法?
【문】무엇이 지일체입(地一切入)이며, 무엇을 닦음[修]으로 삼고, 무엇을 상(相)으로 삼고, 무엇을 맛[味]으로 삼고, 무엇을 처(處)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功德)인가? 일체입이란 무슨 뜻인가? 또 몇 종의 지(地)가 있으며, 어떤 흙에서 상을 취하는가? 무엇이 만다라를 만드는 법인가? 무엇이 수지법(修地法)인가?
答:是心依地相生,此謂地一切入。心不亂住,是爲脩。善樂著地想爲相。不捨爲味。意無異念爲處。
【답】지(地)를 의지해 이 마음에 상(相)이 생기는 것을 지일체입이라 한다. 마음이 산란됨이 없이 머무는 것을 수(修)라 한다. 지상(地想)에 잘 낙착(樂著)하는 것을 상(相)이라 하고, 버리지 않는 것을 맛[味]이라 하고, 의식[意]에 다른 생각[異念]이 없는 것을 처(處)라 한다.
何功德者,謂有十二功德,從地一切入是相易得,於一切時、於一切行心行無碍,如意神通,履水遊空如地,受種種色辯,初念宿命辯,及天耳界辯,隨行善趣甘露爲邊。
무엇이 공덕인가. 열두 가지 공덕이 있어 지일체입으로부터 그 상(相)이 쉽게 얻어진다. 일체시ㆍ일체행에서 마음의 움직임[行]에 장애가 없고, 뜻대로 하는 신통으로 땅위를 걷듯 물위를 걷고 허공을 노닐며, 갖가지 색변ㆍ초념숙명변 및 천이계변(天耳界辯)을 얻어 따라서 훌륭한 세계로 가고 감로를 변(邊)으로 한다.
問:一切入何義?
答:謂周普一切入。如佛說偈言:
【문】일체입이란 무슨 뜻인가?
【답】두루 보편한 것[周普]을 일체입이라 한다. 부처님이 게송으로 설한 바와 같다.
若人念佛德,生喜充遍身,觀地一切入,周滿閻浮提,此觀緣地生,心喜亦如是。
만약 사람이 부처님의 덕을 생각하면 기쁨이 생겨 온 몸에 충만하고
지일체입을 관하면 염부제를 가득 채우나니
이 관은 흙을 인연해 생기며 마음의 기쁨 또한 그와 같다.
脩如是觀,見曼陁羅遍一切入。
이와 같은 관을 닦으면 만다라가 일체입에 변재하는 것을 보게 된다.
問:地幾種?何地取相可脩?
答:地有二種,一自相地、二造作地。
【문】지에는 몇 종류가 있는가? 어떤 지에서 상을 취해야 수행할 수 있는가?
【답】지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자상지(自相地)요, 둘째는 조작지(造作地)이다.
堅爲自相地界,是謂自相地。若手自掘、若敎人掘,造作所成,是謂作地。
딱딱함[堅]이 자상지계(自相地界)가 되니, 이것을 자상지라 한다. 만약 손으로 직접 파거나 남을 시켜 파게 해서 만든 것이라면 이것을 작지(作地)라 한다.
成四種色,謂白、黑、赤及如明色。於是坐禪人,於自相地不應作意,應除白、黑、赤。何以故?若觀自相地,從此不起彼分相。若取白、黑、赤色,成脩色一切入。何以故?觀自相地離白黑赤,若作不作當取其相,如明相現當取其相。
(지는) 네 가지 색을 이루니, 소위 백색ㆍ흑색ㆍ적색 및 여명색(如明色)이다. 여기에서 좌선인은 자상지를 의도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며, 백색ㆍ흑색ㆍ적색은 제외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만약 자상지를 관하면 이것으로부터는 피분상(彼分相)이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백색ㆍ흑색ㆍ적색을 취하면 색일체입을 닦는 것이 된다. 무엇 때문인가. 자상지를 관찰하더라도 백색ㆍ흑색ㆍ적색을 떠나야하기 때문이다. (수행대상을 손으로) 만들었건 만들지 않았건 마땅히 그 상을 취해야 하며, 새벽빛과 같은 상[如明相]이 나타나면 마땅히 그 상을 취해야 한다.
問:云何名不作地?
答:處處平坦,離於草莽,無諸株杌,於其眼境當令起心,是名地想,是謂不作地。
【문】무엇을 만들지 않은 지[不作地]라 하는가?
【답】곳곳이 평탄하고, 풀이나 돌이 없고, 각종 그루터기도 없는 것이다. 그런 눈의 경계에서 마땅히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이것을 지상(地想)이라 하고, 이것을 만들지 않은 지라 한다.
若舊坐禪,隨樂不樂,卽見彼分地相,住於不退。新學初禪,取作地相作曼陁羅,不觀非作地。
만약 오랫동안 좌선한 사람이라면 그것이 좋아하는 것이건 좋아하지 않는 것이건 곧 거기에 있는 지(地)의 상(相)을 보고, 불퇴에 머무른다. 처음 배우는 초선의 사람은 지의 상을 만들어 취하고 만다라를 만들며, 만들지 않은 지는 관하지 않는다.
問:云何作曼陁羅?
答:若坐禪人欲於地作曼陁羅,初從當觀寂寂,或於寺舍,或在石室,或在樹下,不住幽闇無日光處非人行路,於如是處皆遠一尋,洒掃淸潔當令地燥。掃於處所如明相現時土色,使與地性得相發起。籌量調適威儀恭敬,取於器物以水和土,刪去草杌卻除糞芥,取其衣帊濟漉泥滓,於淨潔地障蔽坐處,遮斷光明安置禪窟。
【문】어떻게 만다라를 만드는가?
【답】만약 좌선인이 땅에 만다라를 만들려고 한다면 처음부터 마땅히 적적한지 살펴야 한다. 절의 방사나 석실에서 지내거나 혹은 나무아래에 머물러야지 햇빛이 들지 않아 캄캄한 곳이나 비인(非人)이 다니는 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곳에서 사방으로 1심(尋)만큼 물을 뿌려 청결히 하고, 그 땅을 말려 쓸어야 한다. 그곳에서 새벽빛과 같은 상이 나타날 때 흙의 색깔을 지성(地性)과 서로 발기시키고, 적당한 양을 잘 헤아려 위의를 공경히 하고는 기물(器物)을 가져다 흙을 물에 개어 풀이나 나무토막을 집어내고, 분뇨나 씨앗을 제거하고, 천을 이용해 앙금을 거른다. 그리고는 정결한 땅에 앉을 자리를 깔고, 빛을 차단하고, 선좌(禪座)를 놓는다.
不近不遠以規作圓,圓內平滿無有痕迹,然後以泥泥地不雜餘色,以別色不雜於地應安,乃至未燥當覆守護。若至燥時以異色界,其外或如米篩大、或如搔牢大,或圓或方或三角四角,應當分別。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서 자[規]로 원을 만들고, 원 안에는 평평하게 하여 어떠한 흔적도 없게 한다. 그런 뒤에 진흙을 땅에 발라 나머지 색과 섞이지 않게 하고, 다른 색과 섞이지 않게 하여 땅을 편안케 한다. 아직 마르지 않았으면 잘 덮어 보호하고, 만약 말랐으면 다른 색으로 그 밖을 두른다. 혹은 미사(米篩) 크기로, 혹은 소뢰(搔牢) 크기로, 혹은 원(圓)ㆍ방(方)ㆍ삼각ㆍ사각으로 마땅히 분별하여야 한다.
本師所說,最勝圓作曼陁羅。若於衣、若於板、若於壁處,皆作曼陁羅,於地最勝。如是先師所說。
우리 스승의 말씀에 따르면 가장 뛰어난 것은 원이고, 만다라2)를 만듦에 있어서도 천[衣]이나, 판(板)이나 벽(壁)에 모두 만다라를 만들지만 땅[地]에 만든 것이 가장 뛰어나다. 이와 같은 것이 선사(先師)가 설한 바이다.
問:云何修地法?
答:若坐禪人欲脩地一切入,從初當觀欲過患,復應觀出離功德。
【문】무엇이 수지법(修地法)인가?
【답】만약 좌선인이 지일체입을 수행하려고 한다면 처음부터 마땅히 욕의 과환을 관해야 하고, 또 출리(出離)의 공덕을 관해야 한다.
問:何故應觀欲過患?
答:欲者少氣味,故多憂苦,於是處多過患。欲者如骨,喩少氣味。欲者如肉揣喩,以多屬故。欲者如逆風把火喩,隨燒故。欲者如炎炭喩,大小故。欲者如夢喩,倏忽無故。欲者如借物喩,勢不得久故。
【문】왜 욕의 과환을 관해야 하는가?
【답】욕이란 기미(氣味)가 적은 까닭에 우고(憂苦)가 많으니, 이곳에는 과환이 많다. 욕이란 뼈다귀의 비유와 같나니 기미가 적기 때문이고, 욕이란 고깃덩어리의 비유와 같나니 많은 것이 들러붙기 때문이다. 욕이란 바람을 거슬러 횃불을 잡는 비유와 같나니 따라서 태우기 때문이고, 욕이란 염(炎)과 탄(炭)의 비유와 같나니 크고 작음이 있기 때문이다. 욕이란 꿈의 비유와 같나니 갑작스레 없어지기 때문이고, 욕이란 빌린 물건의 비유와 같나니 그 힘이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다.
欲者如樹果喩,爲人所折故。欲者如刀喩,以斬斫故。欲者如槊喩,以爲槊故。欲者如毒蛇頭喩,可怖畏故。欲者如風吹緜喩,不可守護故。欲者如幻喩,惑癡人故。欲者是暗,無所見故。欲者是障碍路,礙諸善法故。欲者是癡,失正念故。
욕이란 나무 과일의 비유와 같나니 사람에 의해 꺾기기 때문이고, 욕이란 칼의 비유와 같나니 자르기 때문이다. 욕이란 창의 비유와 같나니 찌르기 때문이고, 욕이란 독사 머리의 비유와 같나니 가히 두렵기 때문이다. 욕이란 바람에 날리는 솜털의 비유와 같나니 보호할 수 없기 때문이며, 욕이란 환상의 비유와 같나니 사람을 미혹시키기 때문이다. 욕이란 어둠이니 보이지 않기 때문이고, 욕이란 장애이니 모든 선법을 방해하기 때문이며, 욕이란 어리석음이니 올바른 생각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欲者如熟,以爛故。欲者是械,相駐縛故。欲者是盜,功德物故。欲者是怨家,起鬪爭故。欲者是苦造諸過患故。如是已觀欲過患,應觀出離功德。名出離者,謂初禪從初出家脩諸善,是名出離。
욕이란 열과 같나니 문드러지기 때문이며, 욕이란 형틀이니 묶어놓기 때문이며, 욕이란 도둑이니 공덕의 물건을 훔치기 때문이고, 욕이란 원한이 있는 집이니 다툼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욕이란 괴로움이니 모든 과환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욕의 과환을 관한 뒤에 마땅히 출리의 공덕을 관해야 한다. 처음 선을 닦고 처음 출가하고부터 모든 선(善)을 닦는 것을 출리라 한다.
問:云何出離功德?
答:無蓋心自在住寂寂樂,堪忍苦樂住不忘失,曠濟衆事得大果地,堪受供養,二處饒益,是大智慧、是一切善處,名超三界。
【문】무엇이 출리의 공덕인가?
【답】번뇌에 덮이지 않은 마음으로 적적한 즐거움에 자재하게 머물고, 고를 견뎌내고 즐거움에 머물면서 잃지 않으며, 여러 가지 일을 널리 구제하여 대과지(大果地)를 얻고, 공양을 받아 2처를 이롭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대지혜이고, 이것은 일체선처(一切善處)이니, 이를 삼계를 초월한 것이라 한다.
復次名出離者,彼出離婬欲,是寂寂諸蓋,是樂無垢,是處最勝地,是道爲得最勝,是淸淨心垢。此是功德脩行所造,是樂內所脩行。
또 출리라 하는 것은 그 음욕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개(蓋)가 적적한 것이며, 이것은 허물이 없는 즐거움이며, 이 처(處)는 최승의 지(地)이며, 이 도(道)로 최승을 얻게 된다. 이것은 마음의 때를 청정케 하며, 이 공덕은 수행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며, 이 즐거움은 안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欲是麤,出是勝妙。欲者有煩惱,出離者是無煩惱。欲者是下,出離者是上。欲者有嗔恚,出離者無嗔恚。欲者非可愛果,出離者是可愛果。欲者有怖畏,出離者無怖畏。
욕은 거칠고, 출리는 수승하고 오묘하다. 욕은 번뇌가 있고, 출리는 번뇌가 없다. 욕은 하(下)이고, 출리는 상(上)이다. 욕은 진에가 있고, 출리는 진에가 없다. 욕은 과보가 좋지 않지만 출리는 그 과보가 좋다. 욕은 두려움이 있지만 출리는 두려움이 없다.
如是已觀婬欲過患及觀出離功德,依出離生欲樂,心生信、生恭敬,觀可作非可作,依節量食安置衣鉢,身不懈惓心無怠惰,當小行腳。小行腳已坐洗手足,應念佛菩提念法念僧。脩善行念已,當令歡喜。
이와 같이 음욕의 과환을 관하고 출리의 공덕을 관한 뒤, 출리에 의지해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을 일으키고, 믿음을 일으키고, 공경을 일으킨다.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관하고, 절량식에 의지하고, 의발을 안치하고, 몸에는 게으름이 없고 마음에는 태만이 없게 하여 잠시 행각한다. 잠시 행각한 뒤에는 앉아서 손과 발을 씻고, 부처님의 깨달음을 염하고, 법을 염하고, 승을 염한다. 선행을 닦아 염한 뒤에는 환의하도록 이렇게 말해야 한다.
我能如此得具足。若我不得出離,復不久安精進,是故應作勇猛。
“나는 능히 이와 같이 구족을 얻었다. 만약 내가 출리를 얻지 못하면 또 오랫동안 편히 정진하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마땅히 용맹스럽게 해야 한다.”
去曼陁羅不遠不近,如軛如尋遠,應安坐具對曼陁羅結跏趺坐。令身平正,內心起念閉眼少時,除身心亂,攝一切心成一心。小開眼,髣髴令觀曼陁羅。
만다라에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멍에[軛]나 심(尋)의 길이만큼 떨어져 좌구를 안치해야 하고, 만다라를 마주해 결가부좌를 하여 몸을 바르게 하고, 안에서 마음으로 생각을 일으키고는 잠시 눈을 감고 몸과 마음의 산란함을 없애며, 모든 마음을 거두어 일심을 이룬다. 그리고 약간 어렴풋하게 눈을 떠 만다라를 관해야 한다.
彼坐禪人現觀曼陁羅形,以三行取相:以等觀、以方便、以離亂。
그 좌선인은 현재 만다라형(曼陀羅形)을 관하는데 3행 즉 등관(等觀)으로써, 방편으로써, 이난(離亂)으로써 상을 취해야 한다.
問:云何以等觀?
答:坐禪人現觀曼陁羅,非大開眼、非大閉眼,如是當觀。何以故?若大開眼,其眼成惓。曼陁羅自性現見自性,彼分想不起。若最閉眼,見曼陁羅成闇,亦不見彼相便生懈怠。是故應離大開眼、大閉眼,唯專心住曼陁羅。爲心住故,當觀如人映鏡見其面像,依鏡見面面從鏡生。彼坐禪人觀曼陁羅,見其定相依曼陁羅起,是故當觀等觀取相,爲心住故。如是以等觀取相。
【문】무엇이 등관으로써 취하는 것인가?
【답】좌선인은 현재에서 만다라를 관할 때, 크게 뜬 눈도 아니고 꼭 감은 눈도 아닌 상태로 이와 같이 관해야 한다. 왜냐하면 만약 눈을 크게 뜨면 그 눈이 피로를 느껴 만다라의 자성ㆍ현견의 자성ㆍ피분상(彼分想)이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눈을 꼭 감고 만다라를 보면 암혹을 이루고 그 상도 보지 못하게 되어 곧 게으름이 생긴다. 이런 까닭에 크게 뜨거나 꼭 감거나 하지 않고, 오로지 마음을 기울여 만다라에 머물러야 한다. 마음이 머무는 까닭에 마땅히 사람이 거울에 비추어 자신의 얼굴을 보듯 해야 한다. 거울을 의지해 얼굴을 보면 얼굴 모습이 거울로부터 생기듯, 그 좌선인이 만다라를 관해 그 정상(定相)을 보면 (정상이) 만다라를 의지해 생긴다. 이런 까닭에 마땅히 등관으로써 관해 상을 취해야 하니, 마음을 머물게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것이 등관으로써 상을 취하는 것이다.
問:云何以方便?
答:謂四作意方便。一謂內隔、二滿方、三轉、四遍滿。
【문】무엇이 방편으로써 취하는 것인가?
【답】소위 네 가지 작의방편(作意方便)이 있다.
첫째는 내격(內隔), 둘째는 만방(滿方), 셋째는 전(轉), 넷째는 편만(遍滿)이다.
是時見相出散無隔,是時當作內隔作意。是時見小相、或見半曼陁羅,是時作令滿曼陁羅已,方滿令作意。是時心散亂及心懈懶,是時應當策課如陶家輪。是時若心得住,是時令見曼陁羅遍滿無虧,當觀捨。如是以方便可知。
이때 보이던 상이 밖으로 흩어져 간격이 없으면, 이럴 때는 간격 안으로 들어오도록 마음을 써야 한다. 이때 상이 작게 보이거나 만다라의 반만 보이면, 이럴 때는 만다라가 온전하도록 한 다음에 사방에 가득하도록 마음을 써야 한다. 이때 마음이 산란하거나 마음이 게을러지면, 이럴 때는 도공의 물레처럼 일과를 정해 채찍질해야 한다. 이때 마음이 머묾을 얻으면, 이럴 때는 보이는 만다라가 두루 가득해 이지러짐이 없게 하고 마땅히 사(捨)를 관해야 한다. 이와 같은 것이 방편으로써 취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問:云何以離亂?
答:離亂有四種,一最速作精進、二最遲作精進、三最高、四最下。
【문】무엇이 이난(離亂)으로써 취하는 것인가?
【답】이난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너무 급하게 정진하는 것이요, 둘째는 너무 더디게 정진하는 것이요, 셋째는 최고요, 넷째는 최하이다.
問:云何速作精進?
答:謂急疾作意不待時節,早坐晩罷乃至身疲,是謂速作。
【문】무엇이 급하게 정진하는 것인가?
【답】급하게 마음을 쓰고, 시절을 기다리지 않는 것이다. 아침에 앉아 저녁에 그만두는 등, 몸을 피로하게 하는 것을 급하게 정진하는 것이라 한다.
問:云何遲作精進?
答:謂離作意方便,雖見曼陁羅,不恭敬作意,數起數眠。若速作精進,則成身懶心退,心出外緣起諸調戲。若遲作精進,身心成懶懈怠,起諸睡眠。
【문】무엇이 더디게 정진하는 것인가?
【답】작의방편을 벗어나 만다라를 보고는 있지만 공경하는 마음을 쓰지 않고, 자주 일어나고, 자주 조는 것이다. 만약 급하게 정진하면 곧 몸이 나태해지고 마음이 퇴보하며, 마음이 외연을 만나면 각종 유희를 일으킨다. 만약 더디게 정진하면 몸과 마음이 나태하고 게을러져 각종 수면을 일으킨다.
最高者,其心退起諸調亂,於所行處成不樂。若不樂於初戲笑言語,以由欲心成高。復次若得諸相行,由喜樂欲心成高。
최고란 그 마음이 퇴보하고 갖가지 산란심을 일으켜 행처에 대해 즐겁지 않게 되는 것이다. 만약 처음의 웃고 장난치는 언어를 즐거워하지 않으면 이로 인해 욕심이 높아지게 된다. 또한 만약 모든 상이 변화하게 되면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해 욕심이 높아지게 된다.
最下者,退調緣故,於業處成不樂。若不樂,於初行處所作嗔處,由嗔恚心成下。復次久惓覺觀,從勝退落其心,由憂受心成下。
최하란 물러남과 유희를 인연한 까닭에 업처에 대해 즐겁지 않게 되는 것이다. 만약 처음의 행처를 즐거워하지 않으면 자기가 한 것에 대해 성을 내게 되고, 그 성냄으로 인해 마음이 낮아지게 된다. 또한 오랫동안 각관에 싫증을 내어 승(勝)으로부터 그 마음이 퇴락하면 근심으로 말미암아 그 마음이 낮아지게 된다.
是坐禪人,若心速作退墮調處,以念根、定根攝伏令捨調。若心進作退墮懶處,以念根、精進根攝伏令捨懈懶。若高心者退墮欲處,成現知令捨欲。若下心者退墮於嗔恚,成現知令捨嗔恚。於此四處成淸淨心、成專一心,此明因三行定心成,隨意得見曼陁羅形。若專一心想成。
이 좌선인은 만약 마음이 급히 서둘러 유희하는 곳에 퇴락한 경우에는 염근(念根)과 정근(定根)으로써 거두고 제압해 유희를 버리게 하고, 만약 마음이 지어나가다 게으른 곳에 빠진 경우에는 염근과 정진근으로써 거두고 제압해 그 게으름을 버리게 하며, 만약 교만한 사람이 탐욕에 빠진 경우에는 현지(現知)를 이루어 욕심을 버리게 하고, 낙심한 사람이 성냄에 빠진 경우에는 현지를 이루어 성냄을 버리게 한다. 그러면 이 4처에서 청정심을 이루고, 전일(專一)한 마음을 이룬다. 이것은 3행으로 인하여 마음을 안정시키면 뜻에 따라 만다라형을 보게 된다는 것을 밝혔다. 만약 전일한 마음이면 상(想)이 일어나게 된다.
起名相者有二種,謂取相、彼分相。
상(相)이라 하는 것에 두 가지 종류가 있으니, 소위 취상(取相)과 피분상(被分相)이다.
云何名取相?若坐禪人以不散心現觀曼陁羅,從曼陁羅起想,如於虛空所見,或時遠或時近、或時左或時右、或時大或時小、或時醜或時好、或時多或時少,不以眼觀曼陁羅,以作意方便取相起,是名取相。
무엇을 취상이라 하는가. 만약 좌선인이 산란하지 않은 마음으로 현재에서 만다라를 관한다면 만다라로부터 상(想)이 생긴다. 마치 허공에서 보이는 것처럼 어떤 때는 멀게, 어떤 때는 가깝게, 어떤 때는 왼쪽에, 어떤 때는 오른쪽에, 어떤 때는 크게, 어떤 때는 작게, 어떤 때는 추하게, 어떤 때는 멋있게, 어떤 때는 많게, 어떤 때는 적게 보인다. 눈으로 만다라를 관하지 않고 작의방편으로 취하면 상이 일어나니, 이것을 취상이라 한다.
從彼作多故,彼分相起,名彼分相者。若作意時隨心卽現,非見曼陁羅後生心念,但作心閉眼如先所觀,若遠作意亦卽遠見,若近、左右、前後、內外上下亦復如是,隨心卽現,此謂彼分相。
그로부터 여러 차례 자의하기 때문에 피분상이 일어난다. 피분상이라 하는 것은 작의할 때 마음을 따라 곧 나타나는 것이지, 만다라를 보고난 후에 생긴 마음 속 생각이 아니다. 그저 마음을 쓰기만 하면 눈을 감아도 앞에서 관한 바와 같이 나타나고, 만약 멀다고 작의하면 곧 멀리 보이고, 만약 가깝다거나 왼쪽ㆍ오른쪽ㆍ전ㆍ후ㆍ내ㆍ외ㆍ상ㆍ하라고 작의해도 또한 마찬가지로 마음을 따라 곧 나타난다. 이것을 피분상이라 한다.
相者何義?謂因義、相義。如佛敎比丘,彼諸惡不善法有相起是因緣義。復說智義、相義。如佛說以作想當捨,是謂智義。復說像義、相義。如自見面像想像。彼分無異義。
상(相)이란 무슨 뜻인가. 인(因)의 뜻이 상의 뜻이다.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그 모든 악과 불선법에는 상의 일어남이 있다”라고 가르친 것과 같다. 이것이 인연의 뜻이다. 또 말하자면 지(智)의 뜻이 상의 뜻이다. 부처님께서 “상(想)을 지어 마땅히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이것을 지의 뜻이라 한다. 또 상(像)의 뜻이 상의 뜻이니, 스스로 그 얼굴의 영상을 보고 형상을 생각하는 것과 같다. 피분(彼分)은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爾時得相,坐禪人於其師所起恭敬心。取於勝相應當守護,若不守護是則當失。
그때 상을 얻은 좌선인은 그 스승의 처소에서 공경심을 일으켜 승상(勝相)을 취해 마땅히 수호하여야 한다. 만약 수호하지 않으면 곧 잃어버린다.
問:云何應守護?
答:以三種行應守護相,如是以離惡故、以脩行善故、以常作故。
【문】무엇이 마땅히 지키는 것인가?
【답】세 종류의 행으로 마땅히 상을 지켜야 하나니, 이와 같이 악을 떠남으로써, 선(善)을 수행함으로써, 항상 닦음으로써 수호해야 한다.
云何離不善?樂於作務、樂種種語戲、樂睡眠、樂聚會、樂狎俗,不守護諸根、不節於食、初夜後夜不起禪習、不敬所學、多惡親友、脩不行處、應離不好時節食臥坐、不彼對治。是善,應常作。
무엇이 불선(不善)을 떠나는 것인가. 작무(作務)를 즐기고, 갖가지 언어의 유희를 즐기고, 잠을 즐기고, 모임을 즐기고, 속인과 어울리는 것을 즐기고, 모든 감관을 수호하지 않고, 식사를 절제하지 않고, 초야와 후야에 일어나 선을 닦지 않고, 배운 것을 공경하지 않고, 악한 친구가 많고, 행하지 말아야 할 것을 닦는 것은 마땅히 떠나야 한다. 좋지 않은 시절에 먹고, 자고, 누워서는 안 되나니, 그것들을 대치하는 그런 선을 항상 닦아야 한다.
問:云何以常作?
答:彼坐禪人善取此相,常觀其功德,如珍寶想,常歡喜行,常脩多修,或晝夜多脩行,或倚坐臥心樂攀緣,處處放心。取相已取,取已令起,起已觀隨,觀已脩,脩有時,時觀曼陁羅。如是以常作見相。彼如是現守護相,或得自在若相、隨心得禪外行。若外行從心者,由,是得安。
【문】무엇이 항상 닦는 것인가?
【답】그 좌선인은 이런 상을 잘 취해 보배를 생각하듯이 항상 그 공덕을 관해야 한다. 항상 기뻐하며 행하고, 항상 닦고, 많이 닦고, 낮이건 밤이건 많이 수행하고, 기대건 눕건 마음으로 기꺼이 반연하고, 처처에 마음을 놓아 상을 취하고, 이미 취했으면 취하고 나서는 일으키며, 일으키고 나서는 그에 따라 관하고, 관하고 나서는 닦고, 닦음에 있어 때때로 만다라를 관해야 한다. 이와 같이 항상 닦음으로써 상을 보면, 그는 이와 같이 현재에서 상을 수호하고 혹 자재함을 얻기도 한다. 만약 상이 마음을 따르면 선(禪)의 외행(外行)을 얻고, 만약 외행이 마음을 따르면 그로부터 안(安)을 얻는다.
問:云何禪外行?
答:此事從心作意不亂,以伏諸蓋,但未脩行覺、觀、喜、樂、一心及信等五根,雖得定力念念猶起,是禪外行。安者,從此外行是法,由心得脩行力,是覺信等法於事不動,是名爲安。
【문】무엇이 선의 외행인가?
【답】이 일[事]은 마음으로부터 작의하며, 산란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개(蓋)를 조복한다. 단지 아직 각(覺)ㆍ관(觀)ㆍ희(喜)ㆍ락(樂)ㆍ일심(一心) 및 신(信) 등의 5근을 수행하지 않아 비록 정력(定力)을 얻었어도 생각이 오히려 일어난다. 이것의 선의 외행이다. 안(安)이란 이 외행으로부터 이러한 법이 마음으로 말미암아 수행력을 얻으면 이 각과 신 등의 법이 일에 있어서 움직이지 않나니, 이것을 안이라 한다.
問:外行及安有何差別?
答:若伏五蓋是其外行,以伏此五故成安。以禪外行得勝定,若得勝定是名爲安。若於身心未得寂寂,於外定心動如船在浪。若於身心已得寂寂,處安不動如船無風在水,諸根無力故。於所爲事外禪行不久住,如小童子。
【문】외행과 안은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답】만약 5개를 조복한다면 이것이 그 외행이다. 이 5개를 조복하는 까닭에 안을 이루고, 선의 외행으로 수승한 정[勝定]을 얻는다. 만약 수승한 정을 얻는다면 이것을 안이라 한다. 만약 몸과 마음에 아직 적적함을 얻지 못했다면 외정(外定)에서 마음은 움직이나니, 마치 파도에 떠있는 배와 같다. 만약 몸과 마음에 이미 적적함을 얻었다면 안정된 곳에 처하여 움직이지 않나니, 마치 배가 바람이 없는 물 위에 있는 것과 같다. 모든 근(根)에 힘이 없는 까닭에 하는 일[事]에서 외선행(外禪行)이 오래 머물지 못하나니, 마치 어린아이와 같다.
諸根有力故;於事安靜久住,如有力人。脩不自在,故禪外行成不和合,如人誦經久廢則忘;以脩自在,故成安和合,如人誦經恒習不忘。
모든 근에 힘이 있는 까닭에 일에 안정되게 오랫동안 머무나니, 마치 힘이 있는 사람과 같다. 수행이 자재하지 않은 까닭에 선의 외행이 불화합을 이루나니, 마치 사람이 경을 외우는 것을 오랫동안 하지 않으면 곧 잊어버리는 것과 같다. 수행이 자재한 까닭에 안정되게 화합을 이루나니, 마치 사람이 항상 경을 외우면 잊지 않는 것과 같다.
若不善伏蓋,猶如盲人,於禪外行成盲。如是等不淸淨敎。若善伏蓋成不盲,於成安定。如是等淸淨敎。從相自在所初,乃至性除,名爲外行。性除無閒,是名爲安。
만약 개(蓋)를 잘 조복하지 않으면 오히려 맹인과 같아 선의 외행에서 눈이 멀게 되니, 이와 같은 것들은 청정하지 못한 가르침이다. 만약 개를 잘 조복하면 눈이 멀지 않게 되고 안정(安定)을 이루게 되니, 이와 같은 것들은 청정한 가르침이다. 그리고 상의 자재로부터 시작하여 성제(性除)에 이르기까지를 외행(外行)이라 하고, 성제가 무간(無間)한 것 이것을 안(安)이라 한다.
問:外行者何義?
答:禪近故是名外行,如路近村是謂村路,義一名異。安者何義?安爲和合義,如到曼陁羅。出離、禪安無異義。於是坐禪人住於外行,應令增長一切入,或於安定或於初禪當令增長。
【문】외행이란 무슨 뜻인가?
【답】선(禪)에 가까운 까닭에 이것을 외행이라 한다. 마치 길이 마을에 가까우면 이를 마을길이라 하는 것처럼 뜻은 같지만 이름이 다르다. 안이란 무슨 뜻인가. 안이란 화합의 뜻으로 만다라에 이르는 것과 같다. 출리선(出離禪)은 안과 다른 뜻이 아니다. 여기에서 좌선인은 외행에 머물러 마땅히 일체입을 증장시켜야 하고, 혹은 안정(安定)에서 혹은 초선에서 마땅히 증장시켜야 한다.
問:云何應令增長?
答:謂從初相如手四指節,當令漸增。
【문】마땅히 증장시켜야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답】한 뼘 손가락 네 마디 크기인 최초의 상(相)으로부터 마땅히 점차 증장시켜야 한다.
如是作意、如是得自在、如是次第,如輪如蓋、如樹影、如福田、如鄰如村、如郭如城,如是次第,漸令漸長遍此大地。若江山高下、樹木棘刺諸不平正,如是一切不作意。乃至大海作意地想,乃至增長,時心所行成最勝定。
이와 같이 작의하고, 이와 같이 자재를 얻어 이와 같이 차례대로 바퀴[輪] 만하게, 일산[蓋] 만하게, 나무 그림자 만하게, 복전(福田) 만하게, 이웃집 만하게, 마을 만하게, 곽(郭) 만하게, 성(城) 만하게, 이와 같이 차례대로 점차 증장시켜 이 대지에 변재하게 한다. 높고 낮은 강과 산, 나 나무와 가시덤불, 평평하지도 바르지도 않은 모든 것, 이와 같은 일체를 작의하지 않고, 나아가 큰 바다 만하게 지상(地想)을 작의하고, 나아가 증장할 때 마음의 소행은 최승의 정을 이룬다.
若坐禪人得禪外行,不能得安定,此坐禪人以二行應令起安定方便:一以因緣、二以受持。
만약 좌선인이 선의 외행은 얻었지만 안정을 얻을 수 없었다면, 이 좌선인은 두 가지 행으로써 마땅히 안정의 방편을 일으켜야 한다. 첫째는 인연으로 일으키는 것이고, 둘째는 수지(受持)로 일으키는 것이다.
以十行從因緣起安定方便:一令觀處明淨、二遍起觀諸根、三曉了於相、四制心令調、五折伏懈怠、六心無味著、七心歡喜、八心定成捨、九離不學定人親近學定人、十樂著安定。
인연에 따라 10행으로써 안정의 방편을 일으켜야 한다. 첫째는 그 처(處)의 명정(明淨)을 관하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모든 근에 대한 관을 널리 일으키는 것이고, 셋째는 상(相)을 완전히 아는 것이며, 넷째는 마음을 제어해 잘 조절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게으름을 조복시키는 것이며, 여섯째는 마음에 미착(味著)이 없는 것이며, 일곱째는 마음이 환희하는 것이며, 여덟째는 마음이 안정되어 사(捨)를 이루는 것이며, 아홉째는 정을 배우지 않은 사람을 떠나 정을 배운 사람을 가까이하는 것이며, 열째는 안정에 낙착(樂著)하는 것이다.
問:云何作明淨處觀?
答:以三種行得作分明處,謂能脩調適食樂、修時節樂、脩威儀樂。
【문】어떻게 명정처관(明淨處觀)을 짓는가?
【답】세 가지 행으로써 분명처(分明處)를 지을 수 있다. 말하자면 능히 알맞은 식사의 즐거움을 닦는 것이며, 시절의 즐거움을 닦는 것이며, 위의의 즐거움을 닦는 것이다.
遍起諸根觀者,謂信等五根不令消滅、無作懈怠、如快馬乘車。
모든 근에 대한 관을 널리 일으킨다는 것은 신(信) 등의 5근을 소멸하지 않게 하고 게으름을 떨지 않아 날쌘 말이 끄는 수레와 같은 것이다.
曉了於相者,善捉意想不急不寬,如巧師繩墨平等無偏,善解作意急離不離。
상을 완전히 안다는 것은 작의한 상(想)을 잘 잡아 급하지도 느슨하지도 않은 것이다. 교사(巧師)가 먹줄을 평등하게 하여 치우침이 없게 하는 것처럼 작의를 잘 이해하여 급함도 떠나고 아님도 떠나는 것이다.
制心令調者,有二種行,以二種行成心調:一多起精進、二心過度處成心調。
마음을 제어해 잘 조절하는 것에는 두 종류의 행이 있어 두 종류의 행으로써 마음의 조절을 이룬다. 즉 첫째는 정진을 많이 일으키는 것이고, 둘째는 마음이 과도한 경우에 마음을 조절하는 것이다.
或住婬處及種種相處,增長亂意成於心調。於坐禪人若多起精進,過度處成心調,以二行應制伏心,以令精進起每中調適。若往婬處及種種相,增長調心,以二行折伏,以觀覓衆苦及惡果報。
혹 음처(婬處)나 갖가지 상(相)이 있는 곳에 머물 때에는 어지러운 생각을 증장시켜 마음의 조절을 이루고, 좌선인이 정진을 많이 일으키는 것이 과도한 경우에도 마음의 조절을 이루어야 한다. 이런 두 가지 행으로써 마땅히 마음을 제어해 조복하고 정진이 일어나게 하면서 늘 중도(中道)로 조절해야 한다. 만약 음처나 갖가지 상이 있는 곳에 갔을 때에는 더욱더 마음의 조절에 힘써 두 가지 행으로써 절복시키고, 갖가지 고통 및 나쁜 과보를 관하고 찾아보아야 한다.
制伏懈心者,以二行成懈怠心。以不得勝定,令心無味,故成懈怠,若多懈怠則欲睡眠。是坐禪人若不得勝定,心無味著故成懈怠。以二行當折伏,謂觀功德以起精進。若懈怠睡眠懶心,以四種行能伏。若多食者取懈怠想,轉行四威儀,以自作意於光明相、住於露處,令心歡喜。
게으른 마음을 제어해 조복시킨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두 가지 행으로써 게으른 마음이 된다. 수승한 정[勝定]을 얻지 못하고 마음을 무미건조하게 하기 때문에 게을러지고, 게으름이 많으면 곧 잠자고 싶어진다. 이 좌선인이 만약 수승한 정을 얻지 못하고 마음에 미착(味著)이 없는 까닭에 게을러졌다면 두 가지 행으로써 마땅히 끊어 없애야 하니, 즉 공덕을 관함으로써 정진을 일으켜야 한다. 만약 게으르고, 잠자고 싶고, 나태한 마음이 있으면 네 가지의 행으로써 조복할 수 있다. 만약 음식을 지나치게 먹고 게으른 생각을 가진다면, 4위의로 바꾸어 행하고, 스스로 광명상(光明相)을 작의하고, 사방이 탁 트인 곳에 머물러 마음을 환희케 해야 한다.
無所復著,以三行成無味,少方便故、以鈍慧故、以不得寂寂樂故。於是坐禪人心若無味,以二種行令得歡喜:一以恐怖、二以歡喜。若觀生老死及四惡趣,見諸可畏心生愁惱;若念佛法僧戒施天,見六行功德心生歡喜。
낙착(樂著)하는 바가 없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3행으로써 무미건조하게 되니, 방편이 적은 까닭에, 지혜가 둔한 까닭에, 적적의 즐거움을 얻지 못한 까닭이다. 여기에서 좌선인의 마음이 만약 무미건조하다면 두 종류의 행으로써 환희를 얻게 한다. 첫째는 공포로 얻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환희로 얻게 하는 것이다. 만약 생ㆍ노ㆍ사 및 4악취를 관해 모든 두려움을 보면 마음에 근심과 고뇌가 생기고, 만약 불ㆍ법ㆍ승ㆍ계ㆍ보시ㆍ하늘을 염하여 6행공덕의 보면 마음에 환희가 생긴다.
心定成捨者,以二行成於禪外地定,以斷諸蓋,心成定。或於所得地以起禪枝,故成心定。是坐禪人心定有二行,當捨非成住故、中方便調適故。
마음이 안정되어 사(捨)를 이룬다는 것은 두 가지 행으로써 선의 외지정(外地定)을 이루고, 모든 개(蓋)를 끊음으로써 마음이 정을 이루는 것이다. 혹은 얻은 지(地)에서 선지(禪支)를 일으킴으로써 마음의 정을 이룬다. 이 좌선인이 마음이 안정되고도 두 가지 행이 있다면 버려야 마땅하니, 머물러서는 안 되기 때문이며, 중도의 방편이 적당하기 때문이다.
離不學定人,或安定、或外行定、或威儀定。彼人無此,不脩不學,不應供養脩。學人者,若有安定、有外行定及威儀定,應從修學亦應供養。
정을 배우지 않은 사람은 떠나야 한다. 안정이건 외행정이건 위의정이건 그 사람에게 이런 것이 없고, 닦지 않고, 배우지 않는다면 공양하거나 그에게서 닦아서는 안 된다. 정을 배운 사람이란 다음과 같다. 만약 안정이 있고, 외행정이 있고, 위의정이 있다면 마땅히 그를 따라서 닦고 배워야 하며, 또한 마땅히 공양해야 한다.
樂著安者,此坐禪人,如彼深源、如彼奔泉、如彼低樹,常樂恭敬多所脩行。行此十事因緣生於安定。
안정에 낙착하는 것이란 이 좌선인이 저 깊은 물처럼, 저 치솟는 샘물처럼, 저 낮은 나무처럼 항상 즐거워하고 공경하며 수행하는 바가 많은 것이다. 이 10사(事)를 행한 인연으로 안정이 생긴다.
問:云何以受持能生安定方便?
答:彼坐禪人善解緣起入寂寂處,其所解相,於所脩定隨心自在,生其欲樂令心得起,從此身意堪任有用令得受持,從生歡喜心得受持,從生適樂身心得受持,從生光明心得受持,從生悲傷心得受持。
【문】수지(受持)로써 안정의 방편을 생기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답】그 좌선인이 연기를 잘 이해하고 적적처에 들어가 그 이해한 상을 닦는 정에서 그 마음에 따라 자재하면 그 욕락을 생기게 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일어나게 한다. 이로부터 몸과 뜻이 감임(堪任)하며 용(用)이 있음으로써 수지를 얻게 하고, 이로부터 환희가 생겨 마음이 수지를 얻고, 이로부터 적당하고 안락한 몸이 생겨 마음이 수지를 얻고, 이로부터 광명이 생겨 마음이 수지를 얻고, 이로부터 상처를 불쌍히 여김이 생겨 마음이 수지를 얻는다.
以是悲傷令心得靜,善取靜心心得受持。如是善取,令捨心得受持。從無邊煩惱,心得解脫成就受持,以解脫故彼成一法味,以一味心得受持脩行,是故從此勝妙心得增長。如是住受持,起安定方便。如是善解緣起及心受持,不久起定。
상처를 불쌍히 여기는 이것으로 마음이 고요함[靜]을 얻게 하고, 고요한 마음을 잘 취하여 마음이 수지를 얻는다. 이와 같이 잘 취하여 사심(捨心)으로 하여금 수지를 얻게 하고, 무변번뇌로부터 마음이 해탈을 얻어 수지를 성취한다. 해탈하는 까닭에 그것이 일법미(一法味)를 이루고, 일미(一味)로써 마음이 수지를 얻어 수행한다. 이러한 까닭에 이 수승함과 오묘함으로부터 마음이 증장하게 된다. 이와 같이 수지에 머물러 안정의 방편을 일으키고, 이와 같이 연기를 잘 이해하고 나아가 마음을 수지하면 오래지 않아 정을 일으킨다.
彼坐禪人離欲不善法,有覺有觀,於寂靜處心所成就,有喜有樂得於初禪,是地一切入功德。於是離欲者,離有三種,謂身離、心離、煩惱離。
그런 좌선인은 욕(欲)과 불선법(不善法)을 벗어나 각(覺)이 있고 관(觀)이 있어 적정처에서 심소를 성취하며, 희(喜)가 있고 낙(樂)이 있어 초선을 얻는다. 이것이 지일체입(地一切入)의 공덕이다. 욕을 벗어난다[離欲]에서 벗어남[離]에 세 종류가 있으니, 즉 신리(身離)ㆍ심리(心離)ㆍ번뇌리(煩惱離)이다.
問:云何身離?
答:遠離諸惱,出處山野。云何心離?以淸淨心到勝善處。云何煩惱離?無結累人,無生死行處。
【문】무엇이 신리인가?
【답】모든 번뇌를 멀리 벗어나 나간 곳인 산이나 들판이다. 무엇이 심리인가. 청정한 마음으로 도달한 수승하고 선한 곳이다. 무엇이 번뇌리인가. 번뇌에 묶인 사람이 없고 생사의 행이 없는 곳이다.
復次離有五種,謂伏離、彼分離、斷離、猗離、出離。云何伏離?謂脩初禪伏於五蓋。云何彼分離?謂脩達分定伏於諸見。云何斷離?謂脩出世閒道斷諸煩惱。云何猗離?謂得果時樂。云何出離?謂涅槃也。
또 벗어남에 다섯 종류가 있다. 즉 복리(伏離)ㆍ피분리(彼分離)ㆍ단리(斷離)ㆍ의리(猗離)ㆍ출리(出離)이다. 무엇이 복리인가. 즉 초선을 닦아 5개(蓋)를 억누르는 것을 말한다. 무엇이 피분리인가. 즉 달분정(達分定)을 닦아 모든 견해를 억누르는 것이다. 무엇이 단리인가. 즉 출세간도를 닦아 모든 번뇌를 끊는 것이다. 무엇이 의리인가. 즉 과를 얻었을 때의 즐거움이다. 무엇이 출리인가. 즉 열반을 말한다.
欲者,有二種:一者處欲、二者欲煩惱。天堂及人所愛色香味觸,此謂欲處。於此欲處起欲染思惟,是謂欲煩惱。從此欲以心別離、以伏別離,是遠離、是出離、是解脫、是不相應,是謂離欲。
욕(欲)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욕처(欲處)요, 둘째는 욕번뇌이다. 천당 및 사람이 좋아하는 색ㆍ향ㆍ미ㆍ촉을 욕처라 한다. 이 욕처에서 욕에 물든 사유를 일으키는 것을 욕번뇌라 한다. 이 욕으로부터 마음으로써 별리(別離)하고, 억누름으로써 별리한다. 이것 원리이고, 이것이 출리이고, 이것이 해탈이고, 이것이 불상응이니, 이것이 욕을 벗어난다고 하는 것이다.
問:云何離不善法?
答:謂不善根有三種,一貪、二瞋、三癡,與彼相應受想行識及身口意業,此謂不善法。
【문】무엇이 불선법을 벗어나는 것인가?
【답】불선의 근본에 세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탐, 둘째는 진, 셋째는 치이다. 그것과 상응하는 수ㆍ상ㆍ행ㆍ식 및 신업ㆍ구업ㆍ의업, 이것을 불선법이라 한다.
說不善有三種:一自性、二相應、三生緣性。是三不善根,謂貪嗔癡,是名自性,與彼相應受想行識,是名相應。所起身口意業,此謂緣性。以此三不善法,是爲遠離、是出、是脫、是不相應,是謂離不善法。
불선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 설한다. 첫째는 자성(自性), 둘째는 상응(相應), 셋째는 생연성(生緣性)이다. 이 세 가지 불선의 근본, 즉 탐ㆍ진ㆍ치를 자성이라 한다. 그것과 상응하는 수ㆍ상ㆍ행ㆍ식 이것을 상응이라 한다. 그로부터 생기는 신업ㆍ구업ㆍ의업 이것을 연성이라 한다. 이 세 가지 불선법을 멀리 벗어나는 것, 이것이 출이고, 이것이 탈이고, 이것이 불상응이니, 이것이 불선법을 벗어난다고 하는 것이다.
復次離欲者,離貪欲蓋。離不善法者,謂離餘蓋。
또 욕을 벗어난다는 것은 탐욕의 개(蓋)를 벗어나는 것이고, 불선법을 벗어난다는 것은 나머지 개를 벗어나는 것이다.
問:以說離不善法,欲是不善已在其中,何故別說離婬欲?
答:婬欲是出對治。佛所說欲,能除煩惱。離欲者,佛說爲出。如得初禪,欲想相應作意成起,此退分法。是故以欲和合煩惱。欲若別離,一切煩惱皆亦別離,是故別說離欲。
【문】불선법을 벗어나라고 설하면 욕이 바로 불선으로써 이미 그 가운에 포함된다. 왜 따로 음욕을 벗어나라고 설하는가?
【답】음욕은 출(出)로 대치(對治)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욕은 번뇌를 없애는 것이고, 욕을 벗어난 것을 부처님께서는 “출”이라 설하셨다. 초선을 얻었더라도 욕상(欲想)과 상응하여 작의하면 이 퇴분법을 일으키게 되고, 이러한 까닭에 욕으로써 번뇌와 화합한다. 욕이 만약 별리하면 일체번뇌도 또한 별리한다. 이러한 까닭에 달리 욕을 벗어나라고 설한 것이다.
復次離欲者,已得出,成離欲。離不善法者,若得不嗔,成離於嗔。若得明相,成離懈怠睡眠。若得不亂,成離調戲。若得不悔,成離於悔。若得安定,成離於疑。若得智慧,成離無明。若得正思惟,成離邪念。若得歡喜,成離不樂。若心得樂,成離於苦。若得一切善法,則離一切不善。如三藏說。以不貪滿故,成就離欲;以不嗔不癡滿故,成就離不善法。
또 욕을 벗어난다는 다음과 같다. 이미 출을 얻었다면 욕을 벗어나게 된 것이다. 불선법을 벗어난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만약 성내지 않음을 얻으면 성냄을 벗어나게 되고, 명상(明相)을 얻으면 게으름과 수면을 벗어나게 되고, 어지럽지 않음을 얻으면 조희(調戱)를 벗어나게 되고, 후회하지 않음을 얻으면 후회함을 벗어나게 되고, 안정을 얻으면 의심을 벗어나게 되고, 지혜를 얻으면 무명을 벗어나게 되고, 정사유를 얻으면 사념(邪念)을 벗어나게 되고, 환희를 얻으면 즐겁지 않음을 벗어나게 되고, 마음이 즐거움을 얻으면 괴로움을 벗어나게 되고, 일체선법을 얻으면 곧 일체불선을 벗어나게 된다. 이는 3장(藏)에서 “탐하지 않음[不貪]으로 충만한 까닭에 욕에서 벗어남을 성취한다. 성내지 않음[不瞋]ㆍ어리석지 않음[不癡]으로 충만한 까닭에 불선법에서 벗어남을 성취한다”고 설하는 것과 같다.
復次離欲者,是說身離;不善法者,是說心離。復次離欲者,是說斷欲覺;離不善法者,是說斷嗔恚害覺。復次離欲者,是說避欲樂;離不善法者,是說避著身懈怠。
또 욕에서 벗어남을 신리(身離)라고 설하고, 불선법에서 벗어남을 심리(心離)라고 설한다. 욕에서 벗어남이란 욕각(欲覺)을 끊는 것을 말하고, 불선법에서 벗어남이란 진에해각(瞋恚害覺)을 끊는 것을 말한다. 또 욕에서 벗어남이란 욕락(欲樂)을 피하는 것을 말하고, 불선법에서 벗어남이란 몸에 집착한 게으름을 피하는 것을 말한다.
復次離欲者,是說斷於六戲笑及歡喜樂;離不善法者,是說斷戲覺及憂苦等,亦說斷於戲笑及捨。
또 욕에서 벗어남이란 6희소(戱笑) 및 환희의 즐거움을 끊는 것을 말하고, 불선법에서 벗어남이란 희각(戱覺) 및 우고(憂苦) 등을 끊는 것을 말하고, 또 희소(戱笑) 및 사(捨)를 끊는 것을 말한다.
復次離欲者,是現得樂出於欲樂;離不善法者,是現得樂心無過患。
또 욕에서 벗어남이란 현재에서 즐거움을 얻어 욕락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말하고, 불선법에서 벗어남이란 현재에서 즐거움을 얻어 마음에 과환이 없는 것이다.
復次離欲者,謂超出欲流;離不善法者,所餘煩惱應生欲有而生色界,是名超越。
또 욕에서 벗어남이란 욕망의 흐름을 뛰어넘는 것이고, 불선법에서 벗어남이란 나머지 모든 번뇌를 뛰어넘는 것이다. 욕유(欲有)로 태어나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색계에 태어나는 것, 이것을 초월이라 한다.
有覺觀者,云何爲覺?謂種種覺思惟安思想,心不覺智入正思惟,此謂爲覺。此覺成就,故初禪有覺。
각ㆍ관이 있다는 것에서 무엇을 각이라 하는가. 즉 갖가지 각사유(覺思惟), 안정된 사상(思想), 마음이 각지(覺知)하지 못하는 것, 정사유에 들어가는 것, 이것을 각이라 한다. 이 각을 성취하는 까닭에 초선에 각이 있다.
復次入地一切入,依地相無閒成覺思惟,是名爲覺,如心誦經。
또 지일체입에 들어가 지상(地相)에 의지해 간단없이 각사유(覺思惟)를 이루는 것을 각이라 하나니, 마음으로 경을 외우는 것과 같다.
問:覺者何想?何味?何起?何處?
答:覺者,脩猗想爲味,下心作念爲起,想爲行處。云何爲觀?於脩觀時隨觀所擇,心住隨捨,是謂爲觀。以此相應,成初禪有觀。復次入地一切入定人,從修地相心之所觀,如觀諸義爲觀。
【문】각(覺)은 무엇을 상(想)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일어남으로 삼고, 무엇을 처(處)로 삼는가?
【답】각이란 의(猗)를 닦는 상(想)을 맛으로 삼고, 하심(下心)하여 생각을 일으키는 것을 일어남으로 삼고, 상(想)을 행처(行處)로 삼는다.
무엇이 관인가. 관을 닦을 때에 관이 택하는 바에 따라 마음이 수사(隨捨)에 머무는 것, 이것을 관이라 한다. 이것으로 상응하여 성취하므로 초선에 관이 있다. 또 지일체입의 정에 든 사람이 지상(地相)을 닦음에 따라 마음이 관하는 바를 모든 뜻을 관하는 것과 같이 하는 것을 관이라 한다.
問:觀何相?何味?何起?何處?
答:觀者,隨擇,是相,令心猗是味,隨見覺是處。
【문】관은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일어남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는가?
【답】관이란 선택에 따르는 것이 상이다. 마음을 부드럽게[猗] 하는 것이 맛이다. 견(見)의 각에 따르는 것이 그 처이다.
問:覺、觀何差別?
答:猶如打鈴,初聲爲覺,後聲爲觀。復次如心所緣,初爲覺,後爲觀。復次求禪爲覺,守護爲觀。復次憶是覺,不捨是觀。復次麤心受持爲覺,細心受持爲觀。
【문】각과 관은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답】방울을 흔들었을 때와 같나니, 처음의 소리가 각이라면 뒤의 소리는 관이 된다. 또 마음의 소연(所緣)과 같나니, 처음의 것이 각이 되고 뒤의 것이 관이 된다. 또 선(禪)을 구하는 것이 각이고, 수호하는 것이 관이다. 또 기억은 각이고, 놓지 않는 것은 관이다. 또 거친 마음으로 수지하는 것은 각이고, 세밀한 마음으로 수지하는 것은 관이다.
若處有覺,是處有觀;若處有觀,於處或有覺或無覺。如三藏所說。初安心於事是覺,得覺未定是觀。如遠見來人不識男女,及識男女如是色如是形爲覺。從此當觀有戒、無戒富貧貴賤爲觀。
어떤 처에 각이 있으면 그 처에는 관이 있지만, 어떤 처에 관이 있으면 그 처에는 각이 있는 경우도 있고 각이 없는 경우도 하다. 삼장에서 “처음에 마음을 사(事)에 두는 것을 각이라 하고, 각을 얻었어도 정해지지 않은 것을 관이라 한다. 멀리서 오는 사람을 보는 것과 같다. 남녀를 알아보지 못하다가 남녀가 이와 같은 색, 이와 같은 모습이라고 알아보는 것을 각이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계가 있는지 계가 없는지, 부자인지 가난한 자인지, 귀한 자인지 천한 자인지 관찰하는 것을 관이라 한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
覺者求引將來,觀者守持隨逐,如鳥陵虛奮翅爲覺,遊住爲觀。初敎爲覺,久敎爲觀。以覺守護,以觀搜擇。以覺思惟,以觀隨思惟。覺行不念惡法,觀行受持於禪。
각은 찾아서 데려오는 것이고, 관은 지키고 유지하며 좇는 것이다. 새가 허공으로 날아오르며 열심히 날갯짓하는 것과 같은 것이 각이고, 유유히 떠도는 것과 같은 것이 관이다. 처음 가르치는 것이 각이고, 오랫동안 가르친 것이 관이다. 각으로써 수호하고, 관으로써 찾고 가려낸다. 각으로써 사유하며, 관으로써 따라서 사유한다. 각행은 악법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고, 관행은 선(禪)을 수지하는 것이다.
如人有力,默而誦經,隨念其義是觀。如覺所覺,覺已能知。觀於辭辯及樂說辯是覺,義辯、法辯是觀。心解於勝是覺,心解分別是觀。是爲覺觀差別。
사람이 힘이 있어 입을 다물고 경을 외워 그에 따라 의미를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 관이다. 소각(所覺)을 각하고, 각하고 나서는 능히 아는 것과 같나니, 사변(辭辯) 및 요설변(樂說辯)을 관하는 것은 각이고, 의변(義辯)ㆍ법변(法邊)을 관하는 것은 관이다. 마음이 승(勝)을 이해하는 것은 각이고, 마음이 분별을 이해하는 것은 관이다. 이것이 각과 관의 차별이다.
寂寂所成。名寂寂者,謂離五蓋是名寂寂。復次色界善根。復說初禪外行,復說禪心從此心生,是謂寂寂所成,如地水生花名地水花。
적적(寂寂)으로 이루어지는 것에서 적적이라 하는 것은, 소위 5개를 벗어난 것을 적적이라 한다. 또는 색계의 선근, 또는 초선의 외행이라고 설하고, 또는 선심(禪心)이라고 설한다. 이런 마음으로부터 생기는 것을 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하니, 지수(地水)에서 꽃이 피면 지수화라고 하는 것과 같다.
喜樂者,心於是時大歡喜戲笑,心滿淸涼,此名爲喜。
희락이란 마음이 그때 크게 기쁘고 환희하여 환하게 웃고 마음에 청량함이 가득한 것, 이것을 희라 한다.
問:喜何相?何味?何起?何處?幾種喜?
答:喜者謂欣悅遍滿爲相,歡適是味,調伏亂心是起,踊躍是處。
【문】희는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일어남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으며, 몇 종류의 희가 있는가?
【답】희는 널리 기쁨이 가득한 것을 상으로 삼고, 적절히 기뻐함을 그 맛으로 삼으며, 어지러운 마음을 조복하는 것이 일어남이고, 용약(踊躍)하는 것이 처이다.
幾種喜?六種喜,從欲生、從信生、從不悔生、從寂寂生、從定生,及菩提分生喜。
희에는 여섯 종류가 있다. 욕(欲)으로부터 생기는 희, 신(信)으로부터 생기는 희, 불회(不侮)로부터 생기는 희, 적적으로부터 생기는 희, 정(定)으로부터 생기는 희, 보리분으로부터 생기는 희이다.
云何從欲生?貪欲染著心喜,是名欲生喜。云何從信生?多信人心喜,及見陶師等生喜。云何從不悔生喜?淸淨持戒人多生歡喜。云何從寂寂生?入初禪人喜。云何從定生?入二禪生喜。云何菩提分生喜?於第二禪脩出世閒道喜。
무엇이 욕으로부터 생기는 희인가. 탐욕에 물들어 집착하는 마음의 기쁨이니 이것을 욕생희(欲生喜)라 한다. 무엇이 신으로부터 생기는 희인가. 믿음이 깊은 사람의 마음의 기쁨 및 도예가 등을 보고 기쁨을 일으키는 것이다. 무엇이 불회로부터 생기는 희인가. 청정하게 계를 지키는 사람이 자주 환희를 일으키는 것이다. 무엇이 적적으로부터 생기는 희인가. 초선에 든 사람의 기쁨이다. 무엇이 정으로부터 생긴 희인가. 2선에 들어 기쁨을 내는 것이다. 무엇이 보리분에서 생기는 기쁨인가. 제2선에서 출세간도를 닦는 기쁨이다.
復次說喜五種,謂笑喜、念念喜、流喜、越喜、滿喜。
또 희에 다섯 종류가 있다고 설하나니, 소위 소희(笑喜)ㆍ염염희(念念喜) ㆍ유희(流喜)ㆍ월희(越喜)ㆍ만희(滿喜)이다.
笑喜者,如細雨沾身,令毛皆豎。念念喜者,生滅不住,如夜時雨,流喜者,如油下流,久灌其身終不周遍。越喜者,周帀一切心生歡喜,不久便失,如貧人見伏藏。滿喜者,身住用滿,如雷有雨。於是小喜及念念喜,以信起於外行。流喜者,有力起於外行。越喜者,於曼陁羅正與不正皆起處處方便。滿喜者,生於安處。
소희란 가랑비에 몸이 젖어 털이 모두 곤두서는 것과 같고, 염염희는 생하고 멸하며 머묾이 없어 밤에 내리는 비와 같으며, 유희란 기름이 아래로 오랫동안 흘러내려도 그 몸을 완전히 뒤덮을 수는 없는 것과 같고, 월희란 일체를 두루 에워싸듯이 마음에 환희를 일으켰다가 오래지 않아 곧 잃어버리는 것으로 가난한 사람이 복장(伏藏)을 보는 것과 같으며, 만희란 몸에 머물러 두루 가득한 것으로 천둥이 비를 머금은 것과 같다. 여기에서 소희(小喜) 및 염염희는 믿음으로써 외행을 일으키고, 유희는 힘을 가지고 외행을 일으키며, 월희는 만다라에서 정(正)과 부정(不正)이 모두 일어나 처처에 방편이 되고, 만희는 안처(安處)에 생겨난다.
問:云何爲樂?
答:,是時可受心樂心觸所成,此謂爲樂。
【문】무엇이 낙이 되는가?
【답】이때 가수심(可受心)과 낙심이 서로 결합해 이루어진 것을 낙이라 한다.
問:樂何相?何味?何起?何處?幾種樂?喜樂何差別?
答:味爲相,緣愛境是愛味,攝受是起,其猗是處。幾種樂者,有五種,謂因樂、資具樂、寂寂樂、無煩惱樂、受樂。
【문】낙은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일어남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으며, 몇 종류의 낙이 있고, 희와 낙은 어떤 차별이 있는가?
【답】맛들임을 그 상으로 하니, 사랑스러운 경계를 반연하여 그 맛을 사랑하는 것이다. 섭수가 그 일어남이고, 그 의(猗)가 처이다. 몇 종류의 낙이 있느냐 하면, 다섯 종류가 있다. 소위 인락(因樂)ㆍ자구락(資具樂)ㆍ적적락(寂寂樂)ㆍ무번뇌락(無煩惱樂)ㆍ수락(受樂)이다.
云何名因樂?如佛所說:戒樂耐老。此謂因樂,是樂功德。資具樂者,如佛所說:佛生世樂。寂寂樂者,謂生定捨及滅禪定。無煩惱樂者,如佛所說:第一涅槃受樂,所謂受樂也。於此論中,受樂是可樂。
무엇이 인락인가. 부처님께서 “계의 즐거움은 늙음을 견딘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이것을 인락이라 하니, 바로 낙의 공덕이다. 자구락이란 부처님께서 “부처님께서 세상의 즐거움을 일으킨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적적락이란 정(定)과 사(捨)를 일으키고, 선정을 소멸하는 것이다. 무번뇌락이란 부처님께서 “제일가는 열반에서 즐거움을 누린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으니, 소위 즐거움을 누리는 것[受樂]이다. 이 논에서는 수락이 바로 가희 즐겨야 할 것이다.
喜樂何差別者,心踊躍是喜,心柔軟是樂。心猗是樂,心定是喜。麤喜,細樂。喜行陰所攝,樂受陰所攝。是處有喜,有樂;是處有樂,或有喜或無喜。
희와 낙은 어떤 차별이 있는가. 마음이 용약하는 것이 희이고, 마음이 유연한 것이 낙이다. 마음의 부드러움[猗]이 낙이고, 마음의 고요함이 희이다. 거친 것이 희이고, 미세한 것이 낙이다. 희는 행음(行陰)에 포섭되고, 낙은 수음(受陰)에 포섭된다. 기쁨이 있는 곳에는 즐거움이 있지만 즐거움이 있는 곳에는 기쁨이 있거나 혹은 없거나 한다.
初者形,第二爲名。外行成就入初禪禪枝,謂覺、觀、喜、樂、一心也。
처음[初]이란 두 번째를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외행을 성취하여 초선에 드는데, 선지(禪支)는 각ㆍ관ㆍ희ㆍ락ㆍ일심이다.
禪者何義?謂於事平等思惟也、奮迅五蓋也、思惟對治也。入初禪得正受者,已得、已觸、已作證住。
선(禪)이란 무슨 뜻인가. 소위 사물을 평등하게 사유하는 것이고, 5개(蓋)를 신속히 떨쳐 버리는 것이고, 사유하여 대치하는 것이다. 초선에 들어 정수(正受)를 얻었다는 것은 이미 얻고, 이미 접촉하고, 이미 짓고 증득하여 머무는 것이다.
復次離欲不善法者,從欲界地說初禪爲勝相;從有覺觀說第二禪爲勝相,以寂寂所成有喜有樂,從寂寂所成喜樂說爲勝相。
또 욕과 불선법을 벗어난다는 것은 욕계지(欲界地)로부터 초선을 설해 수승한 상[勝相]을 삼고, 각관(覺觀)이 있음으로부터 제2선을 설해 수승한 상을 삼고, 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에 희가 있고 낙이 있으니 적적으로 이루어진 희락으로부터 수승한 상을 설하는 것이다.
復次離欲不善法者,謂能斷對治。有覺觀者,謂說禪相寂寂所成。喜樂者,謂說相似禪正受。入住者,謂得初禪離於五分,成就五分三善,十想具足二十五功德相應,以此福善上生梵天勝妙居處。
또 욕과 불선법을 벗어나는 것이란 소위 능히 끊고, 대치하는 것이다. 각관이 있다는 것은 소위 선(禪)의 상을 말한다. 적적으로 이루어진 희락이란 상사선(相似禪)을 말한다. 정수(正受)에 들어 머문다는 것은 초선에 들어 5분(分)을 벗어나고, 5분(分)과ㆍ3선(善)을 성취하고, 10상(想)을 구족하고, 25공덕과 상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복(福)과 선(善)으로 수승하고 오묘한 거처인 범천으로 올라가 태어난다.
離五分者,謂離五蓋。云何爲五?謂貪欲、瞋恚、懈怠睡眠、調悔、疑。
5분을 벗어난다는 것은 5개를 벗어나는 것이다. 무엇이 다섯인가. 소위 탐욕(貪欲)ㆍ진에(瞋恚)ㆍ해태수면(懈怠睡眠)ㆍ조회(調悔)ㆍ의(疑)이다.
貪欲者,謂於五塵心生愛染。瞋恚者,謂行十惱處。懈怠者,謂心懶墯。睡眠者,謂身悶重欲得寤寐。
탐욕이란 5진(塵)에 대해 마음이 애염(愛染)을 일으키는 것이고, 진에란 10뇌처(惱處)를 행하는 것이며, 해태란 마음이 나태해지는 것이고, 수면이란 몸의 번민이 심하여 깊이 잠들고 싶어 하는 것이다.
眠有三種:一從食生、二從時節生、三從心生。
잠[眠]에는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식(食)으로부터 생기는 것이고, 둘째는 시절에 따라 생기는 것이고, 셋째는 마음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다.
若從心生,以思惟斷。若從飮食及時節生,是羅漢眠,不從心生,無所蓋故。若眠從食及時節生者,以精進能斷。如阿㝹樓馱所說:我初盡漏,得不從心眠,于今五十五歲,於其中閒斷食時節臥,已二十五年。
만약 마음에서 생겼다면 사유로써 끊는다. 음식이나 시절로부터 생겼다면 이는 아라한의 잠이니, 마음에서 생기지 않고 덮이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잠이 음식 및 시절로부터 생겼다면 정진으로써 끊을 수 있다. 아누루타기 “나는 처음 누(漏)를 다했을 때 마음이 잠들지 않음을 얻어 지금 55세가 되었다. 그 사이에 음식과 시절로 인한 누음[臥]을 끊은 지 이미 25년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問:若眠成色法,何故爲心數煩惱?
答:色者一向成心數煩。惱如我見人飮酒及食,是則可知。
【문】만약 수면이 색법(色法)을 이룬다면 왜 심수번뇌(心數煩惱)가 되는가?
【답】색이란 한결같이 심수번뇌를 이루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람이 술을 마시고 밥을 먹는 것을 보는 것처럼 이것을 알 수 있다.
問:若眠身法、懈怠心數法,何故二法合成一蓋?
答:此二種法,一事一相,所謂疲懈共爲一。
【문】만약 수면이 신법(身法)이고, 해태가 심수법(心數法)이라면, 왜 두 법이 합하여 하나의 개(蓋)를 이루는가?
【답】이 두 종류의 법은 사(事)가 하나이고 상(相)이 하나이니, 소위 피곤함[疲]과 게으름[懈]이 함께 하나를 이룬다.
調者心不寂寂,悔者心恨不定,其相旣等故成一蓋。
조(調)란 마음이 적적하지 않은 것이고, 회(悔)란 마음으로 한스러워하며 안정되지 않은 것이다. 그 상이 이미 같기 때문에 하나의 개를 이룬다.
疑者心執不一。有四種疑:一者奢摩他難、二者毘婆舍那難、三者二俱難、四者於諸非難。於是具足爲得奢摩他,或於此疑;或於身疑,我堪得寂寂,爲不得寂寂?若於彼成疑,此謂奢摩他難。
의(疑)는 마음의 집착이 하나가 아닌 것이다. 네 종류의 의(疑)가 있다. 첫째는 사마타(奢摩他, Sama tha)의 난(難)이며, 둘째는 비바사나(毘婆舍那, Vipassanā)의 난이며, 셋째는 그 둘 모두의 난이며, 넷째는 모든 비법(非法)에서의 난이다. 여기에서 구족하여 사마타를 얻게 되었더라도 이것에 대해 의심하거나 몸에 대해 의심하여 ‘내가 감히 적적을 얻을 수 있을까, 아니면 적적을 얻을 수 없을까’ 하며 그것에 대해 의심을 한다면 이것을 사마타의 난이라 한다.
或於四聖諦、或於三世疑,此謂毘婆舍那難。或於佛法僧疑,此二俱難。或於國城道路、或於男女名姓,是謂非法難。於此經中,疑爲寂寂難,是可取。
혹 사성제에 대하여, 혹은 삼세에 대하여 의심을 하면 이것을 비바사나의 난이라 한다. 혹 불법승에 대하여 의심을 하면 이것을 둘 모두의 난이라 한다. 혹 국성(國城)ㆍ도로나 혹은 남녀ㆍ성명에 대해 의심을 한다면 이것을 비법의 난이라 한다. 이 경에 대한 의심은 적적의 난이라 한다. 이것은 취할만한 것이다.
蓋者何義?謂障碍乘義。覆義、煩惱義、縛義、此無異義。
개(蓋)란 무슨 뜻인가. 소위 승(乘)을 장애한다는 뜻, 덮는다는 뜻[覆義], 번뇌라는 뜻, 묶는다는 뜻[縛義]이다. 이것에는 다른 뜻이 없다.
問:有諸細結,謂覆惱等,何故但說五蓋耶?
答:以集執取成五。復次以婬欲執著,能攝一切貪欲。以瞋恚執著,能攝一切不善法。以懈怠睡眠調悔疑執著,能攝一切癡不善法。如是以五蓋執著,能攝一切煩惱,以此相故成五蓋。五分成就者,謂覺、觀、喜、樂、一心。
【문】여러 가지 미세한 결박이 있으니, 소위 부(覆)ㆍ뇌(惱) 등이다. 왜 단지 5개만을 설하는가?
【답】집집(集執)으로써 취해 다섯 가지를 이룬다. 또 음욕의 집착으로써 능히 일체탐욕을 포섭하고, 진에의 집착으로써 능히 일체의 불선법을 포섭하고, 해태ㆍ수면ㆍ조회ㆍ의에 대한 집착으로써 능히 일체의 어리석은 불선법을 포섭한다. 이와 같이 5개에 대한 집착으로써 능히 일체의 번뇌를 포섭하고, 이러한 상(相)으로써 5개를 이룬다. 5분을 성취한다는 것은 각ㆍ관ㆍ희ㆍ락ㆍ일심을 말한다.
問:若說初禪成就五枝爲禪,不應更復別說其枝爲禪。若別說枝,何故初禪說五枝相應?
答:依禪枝成禪,不離禪枝有禪。無別異禪。如依一一車分說車,離分無車。如依軍分說軍,非離軍分有軍。如是依禪枝名禪,非離枝有禪。以一種名禪,以可分名枝。說事名禪,說功德名枝。以說依制名禪,以說依性制名枝。
【문】만약 초선이 5지(枝)를 성취하여 선으로 삼는다고 설한다면, 또 다시 그 지가 선(禪)이 된다고 달리 설해서는 안 된다. 만약 달리 지를 설한다면 어떠한 까닭에 초선이 5지와 상응한다고 설하는가?
【답】선지(禪支)에 의해 선을 이룬다. 선지를 떠나 선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달리 다른 선은 없다. 마치 수레의 부품 하나하나에 의지해 수레를 설하고, 그 부품을 떠나서는 수레가 없는 것과 같다. 또 마치 군인에 의지해 군대를 설하고, 군인을 떠나서는 군대가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선지에 의지해 선이라 하니, 그 지를 떠나서 선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종류이기에 선이라 하고, 나눌 수 있기에 지라 한다. 사(事)를 설명해 선이라 하고, 공덕을 설명해 지라 한다. 제(制)에 의지해 설명하면 선이라 하고, 성제(性制)에 의지해 설명하면 지라 한다.
問:於有念精進等法,何故但說五枝耶?
答:以執著成五。
【문】염ㆍ정진 등의 법이 있는데 왜 5지만 설하는가?
【답】집착으로써 다섯 가지를 이룬다.
問:云何爲執相?
答:覺者隨於事,心而得自安。觀者隨於持心,覺觀不雜,起於方便。若方便具足喜樂生,若起方便具足得生,喜心增長樂心成滿。以此四功德心成就不亂。若心不亂得定,是名執相。如是執著成五。
【문】무엇이 집상(執相)이 되는가?
【답】각은 사심(事心)을 따라 스스로 편안함을 얻고, 관은 지심(持心)을 따른다. 각관이 혼잡하지 않으면 방편을 일으키는데, 만약 방편이 구족되면 희와 낙이 생긴다. 만약 방편을 일으켜 구족하게 생기게 되면 희심(喜心)이 증장하고 낙심이 원만해진다. 이 네 가지 공덕으로 마음은 어지럽지 않음을 성취하고, 만약 마음이 어지럽지 않으면 정을 얻는데 이것을 집상(執相)이라 한다. 이와 같이 집착은 다섯 가지를 이룬다.
復次蓋對治故成五。初蓋對治初禪,乃至五蓋對治五禪。覺者初禪爲勝枝,以覺除欲。若覺入正定,餘枝亦起。觀者於五枝,第二禪是初起,喜者於第三禪是初起,樂者於第四禪是初起,一心者於第五禪是初起。如是以勝枝成五。
또 개(蓋)를 대치하는 까닭에 다섯 가지가 된다. 초개(初蓋)의 대치는 초선이고, 나아가 5개의 대치는 5선이다. 각은 초선에서 승지(勝支)가 되어 각으로써 욕을 없앤다. 만약 각으로 정정(定正)에 들면 다른 지(支)도 또한 일어난다. 5지 가운데 관은 제2선에서 처음으로 일어나고, 희는 제3선에서 처음으로 일어나고, 낙은 제4선에서 처음으로 일어나고, 일심은 제5선에서 처음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승지로써 다섯 가지가 된다.
復次以五蓋對治成五。如三藏所說:一心是婬欲對治,歡喜是嗔恚對治,覺是懈怠眠對治,樂是調悔對治,觀是疑對治。以蓋從對治,是故成五。
또 5개를 대치함으로써 다섯 가지가 된다. 삼장에서 “일심은 음욕을 대치하고, 환희는 진에를 대치하고, 각은 해태ㆍ수면을 대치하고, 낙은 조회(調悔)를 대치하고, 관은 의(疑)를 대치한다”라고 설한 바와 같다. 개에 따라 대치하는 까닭에 다섯 가지가 된다.
問:此坐禪人作意於一切地相,何故乃起喜樂耶?
答:地一切入相,非起喜樂因,離五蓋熱隨性脩故,是以法子應起喜樂。
【문】이 좌선인은 일체지상(一切地相)을 작의하는데 어떠한 까닭에 곧 희락을 일으키는가?
【답】지일체입상(地一切入相)은 희락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5개의 열(熱)을 벗어나 성(性)에 따라서 수행하는 것을 인으로 삼는 까닭이다. 이것으로써 법자(法子)는 마땅히 희락을 일으켜야 한다.
又問:若然,法子何故不於第四禪起喜樂?
答:非其處故,又得第四禪已斷喜樂故。復次初已起喜樂,以方便伏斷,見有過患已,貪著最寂寂捨樂,是故不起喜樂。
【문】만약 그렇다면 법자는 어떠한 까닭에 제4선에서 희락을 일으키지 않는가?
【답】그 처(處)가 아닌 까닭이다. 또 제4선을 얻고 나서는 희락을 끊기 때문이다. 또 처음에 이미 희락을 일으켰더라도 방편으로써 조복하고 끊어버린다. 즉 과환을 있는 것을 보고 나서는 최고의 적적함을 탐착해 낙을 버린다. 이러한 까닭에 희락을 일으키지 않는다.
三種善者,謂初、中、後善。以淸淨脩行爲初善,以捨增長爲中善,以歡喜爲後善。
세 종류의 선(善)이란 초선ㆍ중선ㆍ후선을 말한다. 청정한 수행이 초선이 되고, 사(捨)를 증장시킴이 중선이 되며, 환희가 후선이 된다.
云何淸淨脩行?謂諸善資具。云何捨增長?是謂安定。云何爲歡喜?是謂爲觀。如是初禪成三種善。
무엇이 청정한 수행인가. 소위 모든 선을 갖추는 것이다. 무엇이 사를 증장시키는 것인가. 이것은 안정(安定)을 말한다. 무엇이 환희인가. 이것은 관이다. 이와 같이 초선은 세 가지 선을 이룬다.
十相具足。以淸淨脩行三相,以捨增長三相,以令歡喜四相。
10상을 구족한다는 것은 청정한 수행으로써 얻는 3상과 사를 증장시킴으로써 얻는 3상과 환희로써 얻는 4상이다.
問:以淸淨脩行云何三相?
答:是禪障碍從彼心淸淨,以淸淨故心得中奢摩他相,以得故於彼心跳擲,此謂以修淸淨三相。
【문】청정한 수행으로써 얻는 3상은 어떤 것인가?
【답】이 선의 장애 그로부터 마음이 청정해지고, 청정하기 때문에 마음속에 사마타상을 얻고, 얻기 때문에 그 마음이 용솟음친다. 이것이 청정을 닦음으로써 얻는 3상이라 한다.
問:云何以捨增長三相?
答:若心淸淨成捨,若得寂寂成捨,一向住成捨而捨增長,此謂三相。
【문】무엇이 사를 증장시킴으로써 얻는 3상인가?
【답】만약 마음이 청정하면 사를 이루고, 만약 적적을 얻으면 사를 이루고, 한결같이 머물면 사를 이루고 사가 증장한다. 이것을 3상이라 한다.
問:云何以令歡喜四相?
答:謂於此十相生法隨逐脩行令成歡喜,於此諸根以爲一味成令歡喜,隨行精進乘成令歡喜,以能脩行成令歡喜,此謂四相。如是初禪十相具足。
【문】무엇이 환희로써 얻는 4상인가?
【답】이 10상이 생기는 법을 따라 수행함으로써 환희를 성취하는 것, 이 모든 근에서 일미를 이룸으로써 환희를 성취하는 것, 정진승(淸進乘)을 따라 행함으로써 환희를 성취하는 것, 능히 수행함으로써 환희를 성취하는 것, 이것을 4상이라 한다. 이와 같이 초선은 10상을 구족한다.
二十五功德相應者,謂初禪覺、觀、喜、樂、一心具足,信、精進、念、定、慧具足,初、中、後具足、斂攝具足、脩行具足、寂寂具足、依具足、攝受具足、從具足、觀具足、脩具足、力具足、解脫具足、淸淨具足。最勝淸淨脩成住二十五功德相應,是天勝居從寂寂生,謂喜樂住,超越人閒,天居勝處。
25공덕상응이란 소위 초선에서 각ㆍ관ㆍ희ㆍ락ㆍ일심을 구족하고, 신(信)ㆍ정진ㆍ염ㆍ정ㆍ혜를 구족하고, 초ㆍ중ㆍ후를 구족하고, 염섭(斂攝)을 구족하고, 수행을 구족하고, 적적을 구족하고, 의(依)를 구족하고, 섭수를 구족하고, 종(從)을 구족하고, 관(觀)을 구족하고, 수(修)를 구족하고, 역(力)을 구족하고, 해탈을 구족하고, 청정을 구족하고, 최승청정을 수행하여 25공덕상응에 머물게 된다. 이것은 천상의 훌륭한 거처로 적적으로부터 생긴다. 말하자면 희락이 머무는 곳이고, 인간을 초월한 곳이며, 하늘이 거주하는 수승한 곳이다.
如佛世尊敎諸比丘:如勤浴師浴師弟子,以好銅槃盛豆米屑,以水和攪合而爲丸,浸潤內外相著不散。如是比丘身心寂寂,能生喜樂灌令遍濕,無所不著。如以寂寂所生喜樂,於其身心無不著處,是勤浴師及浴師弟子。坐禪之人亦復如是。如是銅槃一切入相如是可知。
불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숙련된 욕사(浴師)나 욕사의 제자는 좋은 구리그릇[銅槃]에 콩가루와 쌀가루를 담아 물로 개어 환(丸)으로 만드는데, 안팎으로 고루 젖어 서로 붙어서 흩어지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는 몸과 마음을 적적케 하여 능히 희락을 일으키고, 두루 젖도록 부어 붙지 않는 곳이 없도록 한다”라고 가르친 것과 같다. 이처럼 적적에서 생긴 희락으로써 그 몸과 마음에 붙지 않는 곳이 없도록 한다. 숙련된 욕사와 욕사의 제자는 좌선인과 또한 마찬가지이고, 이와 같은 구리그릇[銅槃]은 일체입의 상과 마찬가지임을 알 수 있다.
問:一切入何等相耶?
答:如銅槃浴屑處堅細光焰。善取一切入相,成堅生喜、成細淸淨故光焰。心心數法以成事故,是謂銅槃等一切入相,心心數法如浴屑,如是可知。
【문】일체입은 어떤 상인가?
【답】구리그릇은 목욕가루[浴屑]를 담는 곳으로 단단하고[堅], 미세하고[細], 빛나는 것이다[光焰]. 이처럼 일체입의 상을 잘 취하면 단단해지고, 희를 일으키면 미세해지고, 청정하기 때문에 빛나게 되니, 심법과 심수법으로 일을 성취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구리그릇은 일체입상과 같고, 심법과 심수법은 목욕가루와 같다고 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問:云何浴屑等心心數法性?
答:如麤浴屑,旣不和合隨風飛散。如是心心數法性,離喜樂成麤,離定不和合,與五蓋風共飛,此謂是浴屑等心心數法性。
【문】목욕가루가 심법ㆍ심수법의 성(性)과 같다는 것은 무엇인가?
【답】거친 목욕가루는 이미 화합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바람에 따라 흩날린다. 이처럼 심법과 심수법의 성은 희락을 벗어나면 거칠어지고, 정(定)을 벗어나면 화합하지 않아 5개의 바람과 함께 날아간다. 이것을 이 목욕가루가 심법과 심수법의 성과 같다고 하는 것이다.
云何水等?謂喜樂定如水,令浴屑濕軟爲丸。如是喜樂令心心數法濕軟爲定。如是水等喜樂定,如欲水攪令相著。如是覺觀可知。
무엇이 물과 같은가. 소위 희ㆍ락ㆍ정이다. 물이 목욕가루를 촉촉하고 부드럽게 하여 환(丸)으로 만들듯이, 이와 같이 희락은 심법과 심수법을 촉촉하고 부드럽게 하여 고정시킨다. 이와 같이 물은 희ㆍ락ㆍ정과 같다. 물을 섞어 서로 붙게 하는 것과 같이, 이와 같이 각ㆍ관을 알아야 한다.
問:云何丸等?
答:謂覺觀如欲使,以浴屑置於銅槃中,以水撓攪以手作丸。若作丸已,合諸濕屑,共作於丸,不令散失,置銅槃中。
【문】무엇이 환(丸)과 같은가?
【답】각과 관이다. 욕사는 목욕가루를 구리그릇에 놓고 물을 섞어 손으로 환을 만들고, 환을 만든 뒤에는 젖은 가루들을 모두 합해 한 덩어리의 환을 만들어 흩어져 없어지지 않게 하고는 구리그릇에 놓아둔다.
如是坐禪人心心數法,貯於事中能生寂寂。初禪以喜樂爲水,以覺觀爲手,以攪作丸,能生寂寂。所成心心數法,喜樂相隨成一丸,禪心不散亂,置於禪事。
이와 마찬가지로 좌선인은 심법과 심수법을 사(事) 중에 저장하여 능히 적적을 생기게 하고, 초선에서 희락으로 물을 삼고 각관으로 손을 삼아 섞어서 환을 만들어 능히 적적을 생기게 하고, 거기에서 이루어진 심법과 심수법을 희락과 서로 따르게 하여 하나의 환을 이루고, 선심을 산란하지 않게 하여 선사(禪事)에 놓아둔다.
如是丸等,覺觀如浴屑,內外遍濕相著不散。如是坐禪人,初禪於身上下,從頭至足,從足至髑髏、皮髮,內外喜樂遍滿,住於不退,如是成住梵天。
이와 같이 환은 각ㆍ관과 같다. 목욕가루가 안팎으로 고루 젖어 서로 붙어서 흩어지지 않는 것처럼, 이와 같이 좌선인은 초선에서 몸의 위와 아래 머리에서 발까지, 발에서 해골[髑髏]ㆍ피부ㆍ머리털에 이르기까지, 안팎으로 희락이 두루 가득하게 하여, 불퇴에 머문다. 이와 같이 범천에 머물게 된다.
問:名喜樂,非色法、無有對相,何以遍住於身?
答:名者,依色,色依名色,是故若名已成喜,色亦成喜;若名已成樂,色亦成樂。復次色從樂生令身起猗,一切身成彼色猗樂,是故無碍。
【문】희락이라고 부르는 것은 색법(色法)이 아니고 대상(對相)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몸에 두루 머물 수 있는가?
【답】명(名)은 색(色)에 의지하고, 색은 명색에 의지한다. 따라서 만약 명이 이미 희를 이루었다면 색도 또한 희를 이룬다. 만약 명이 이미 낙을 이루었다면 색도 또한 낙을 이룬다. 또 색은 낙으로부터 생겨 몸이 부드러움[猗]을 일으키게 하고, 모든 몸은 그 색을 이루어 의락(猗樂)한다. 이런 까닭에 무애이다.
令生梵天功德者,初禪成有三種,謂下、中、上。
범천에 태어나게 하는 공덕이란 다음과 같다. 초선이 이루어지는데 세 종류가 있으니, 소위 하ㆍ중ㆍ상이다.
若觀勝緣,不善除五蓋,不至如意自在,是謂下禪。若觀勝緣,善除五蓋,至如意自在,是謂中禪。若觀勝緣,善除五蓋,至如意自在,是謂上禪。
만약 수승한 연[勝緣]을 관하지만 5개를 잘 없애지 못하고 여의자재에 이르지 못했다면 이것을 하선(下禪)이라 한다. 만약 수승한 연을 관해 5개를 잘 없앴지만 여의자재에 이르지 못했다면 이것을 중선(中禪)이라 한다. 만약 수승한 연을 관해 5개를 잘 없애고 여의자재에 이르렀다면 이것을 상선(上禪)이라 한다.
於是坐禪人,若脩下初禪,命終生於梵天種類,彼壽命一劫三分。若脩中初禪,命終生於梵天,壽半劫。若修上初禪,命終生大梵天,壽命一劫。
여기에서 좌선인이 만약 하품의 초선을 닦았다면, 목숨을 마쳤을 때 범천의 종류로 태어나며 그 수명은 1겁의 3분의 1이다. 만약 중품의 초선을 닦았다면, 목숨을 마쳤을 때 범천에 태어나며 수명은 반겁이다. 만약 상품의 초선을 닦았다면, 목숨을 마쳤을 때 대범천에 태어나며 수명은 1겁이다.
是生梵天功德成有四種,有人成退分,有人成住分、有人成勝分、有人成達分。
이 범천에 태어나는 공덕을 이루는 데 네 종류가 있으니, 어떤 사람은 퇴분(退分)을 이루고, 어떤 사람은 주분(住分)을 이루고, 어떤 사람은 승분(勝分)을 이루고, 어떤 사람은 달분(達分)을 이룬다.
是鈍根人,欲住放逸作意相隨,成起此禪,故成退分。復次以三禪行成於退分,最大纏故令不精進。若人從初已起惡覺不能消除,以此大纏故成速退。其於樂禪事業、樂話語、樂睡眠,不住精進,是故成退。
근기가 둔한 사람은 욕에 머물러 방일하는 작의와 함께 하며 이 선(禪)을 일으키기 때문에 퇴분을 이룬다. 또 2선을 행하더라도 퇴분을 성취하는데 얽힘[纏]이 너무 큰 까닭에 정진을 못하게 한다. 만약 사람이 처음부터 이미 악한 각(覺)을 일으키고도 능히 없애지 못했다면 이 큰 얽힘 때문에 속히 물러나게 된다. 그리고 그 선사업(禪事業)을 즐기고, 대화를 즐기고, 수면을 즐기면 정진에 머물지 못하는데 이런 까닭에 물러나게 된다.
問:誰退何以退?
答:有說,若急疾煩惱成,起退失。復說悠悠煩惱故退。復說若失奢摩他成退。復說於有相久不脩行,於彼彼處不能令起,以不得定成退分。
【문】누가 물러나고, 어떻게 물러나는가?
【답】급질번뇌(急疾煩惱)가 있으면 퇴실이 일어난다는 설이 있고, 또 유유번뇌(悠悠煩惱)로 인해 물러난다는 설이 있고, 또 사마타를 잃으면 물러나게 된다는 설이 있고, 또 존재하는 상[有相]에 대해 오랫동안 닦지 않아 이런저런 곳에서 일으킬 수 없어서 정을 얻지 못해 퇴분을 이룬다는 설이 있다.
若鈍根人住不放逸,得彼法念,成禪住分。利根人住不放逸,隨意得第二禪,無覺作意相隨,起成彼禪勝分。利根人住不放逸,隨意得毘婆舍那,隨逐厭患想作意成,起隨意無染,成禪達分。
만약 근기가 둔한 사람이 불방일에 머무르면 그 법의 염(念)을 얻어 선주분(禪住分)을 이룬다. 근기가 예리한 사람이 불방일에 머무르면 뜻에 따라 제2선을 얻고, 각이 없는 작의와 함께 하여 그 선의 승분(勝分)을 일으키게 된다. 근기가 예리한 사람이 불방일에 머무르면 뜻에 따라 비바사나를 얻고, 과환을 혐오하는 생각[厭患想]을 좇아 작의를 일으켜 뜻에 따라 번뇌에 오염됨이 없이 달분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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