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멱선지식품(覓善知識品)
問:爾時何以起定?
答:若初坐禪人欲生禪定,當覓勝善知識。何以故?初坐禪欲生禪定得最勝定,若離善知識,成不住分。
【문】그때 어떻게 정을 일으키는가?
【답】만약 처음 좌선하는 사람이 선정을 일으키려고 한다면 마땅히 훌륭한 선지식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처음 좌선하는 사람이 선정을 일으켜 최승의 정을 얻으려고 할 때 만약 선지식을 떠나면 부주분(不住分)을 이루게 된다.
如經中說:有雲比丘成於退分。如人獨遊遠國,無侶開示隨意自行,如象無鉤。若坐禪人所脩之行,得善知識說法敎誡令其攝受,示除過患使得善法,從敎修行精勤苦行得最勝定。
경에서 “유운(有雲)비구는 퇴분을 이룬다”고 설한 바와 같고, 또 사람이 홀로 먼 나라에 가는 것과 같으며, 반려자나 안내자 없이 뜻에 따라 자의로 행하는 것은 코끼리에 멍에가 없는 것과 같다. 만약 좌선하는 사람이 닦아야 할 행에 있어 그로 하여금 섭수케 하고, 과실을 없애는 것을 보이고, 선법(善法)을 얻게 하는 선지식의 설법과 가르침을 얻어 그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고 정근하고 고행한다면 최승의 정을 얻을 것이다.
如富商主衆所敬貴,如親善人、如親父母。善知識者,如象所繫令不動故,如御車人使隨去住故,如人執拖爲得善道,如醫治病爲消苦楚,猶如天雨潤益諸種,如母養兒、如父敎子、如親無難、如友饒益、如師敎誡,一切善法依是成滿。
이는 많은 대중에게 존경받는 부유한 상단의 우두머리와 같고, 선량한 친구와 같고, 친부모와 같다. 선지식은 코끼리가 멍에에 묶인 것처럼 움직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며, 마부처럼 마음대로 가고 서게 하기 때문이며, 키를 잡는 선장처럼 좋은 길을 얻게 하고, 병을 치료하는 의사처럼 쓰라린 아픔을 없애며, 모든 종자를 윤택하고 이롭게 하는 하늘의 비와 같고, 자식을 키우는 어머니와 같고, 자식을 가르치는 아버지와 같고, 어려움이 없는 친지와 같고, 유익한 친구와 같고, 가르치고 타이르는 선생과 같나니, 모든 선법은 이를 의지해 원만히 성취된다.
是故世尊敎於難陁:一切梵行,所謂善知識。是故當覓勝善之人爲善朋友。
이런 까닭에 세존께서는 난다에게 “모든 범행은 소위 선지식이다”라고 가르쳤다. 그러므로 마땅히 훌륭하고 선량한 사람을 찾아 좋은 친구로 삼아야 한다.
云何是勝善知識?謂有所成就。明了脩多羅、毘曇、毘尼,是謂所得成就。明了業種、得善神通,得見四諦,此二種人功德成就,是所當覓。若不得二種功德成就人,以七分成就善知識,是亦當覓。
어떤 사람이 훌륭한 선지식인가. 소위 성취한 바가 있어 수다라(修多羅 : 經)ㆍ비담(毘曇 : 論)ㆍ비니(毘尼 : 律)를 분명하게 요해하는 자이니, 이런 자들을 얻어야 할 바를 성취해 갖가지 업을 분명히 요해한 자라 한다. 훌륭한 신통을 얻은 자, 4제를 보게 된 자, 이 두 종류의 사람은 공덕을 성취한 사람이니, 이들이 마땅히 찾아보아야 할 자들이다. 만약 이 두 종류의 공덕을 성취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7분(分)으로써 선지식을 성취하나니, 이들 역시 마땅히 찾아보아야 한다.
云何七分?可敬愛、可重、可貴、能說、忍辱、說深語、不安非處。
무엇이 7분인가. 경애(敬愛)할 만함ㆍ중시할 만함ㆍ귀히 여길 만함ㆍ설법에 능함ㆍ인욕ㆍ심오한 말을 설함ㆍ비처(非處)에 안주하지 않음이다.
云何可敬愛?依二種行者,善說共住樂,心解不難,是謂可敬愛。
무엇이 경애할 만함인가. 두 가지 행에 의지하는 자는 훌륭하게 설법하고, 함께 머무는 것을 즐기며, 마음으로 이해하기를 어려워하지 않나니, 이것을 경애할 만함이라 한다.
可重者,戒行寂靜守念成就,不貪欲多語,是謂可重。
중시할 만함이란 계행이 적정하고, 생각[念]을 지키는 것을 성취하며, 탐욕을 부리거나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이다. 이를 중시할 만함이라 한다.
可貴者,聞慧功德成就,知坐禪可重,是爲可貴。
귀히 여길 만함이란 문혜(聞慧)의 공덕을 성취하고 좌선을 중시할 줄 아는 것이다. 이를 귀히 여길 만함이라 한다.
能說者,我言可愛可重可貴有果。如是思惟:饒益彼故、尊重法故,於非可作制伏攝受終不棄捨,是謂能說。
설법에 능함이란 자신이 하는 말이 사랑스럽고, 중시할 만하고, 귀히 여길 만하고, 과보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유하면 상대를 이롭게 하기 때문에, 법을 존중하기 때문에, 다듬거나 조복시킬 수 없는 자마저 거두어 끝내 버리지 않는 것이다. 이를 설법에 능함이라 한다.
忍辱者,能令無滯綺語摠語相,如賢聖故,是謂忍辱。
인욕이란 능히 체(滯)ㆍ기어(綺語)ㆍ총어(總語)의 상이 없게 하는 것이니, 현성과 같기 때문이다. 이것을 인욕이라 한다.
深語者,通達業處,若分別、想念、作意、安著,皆由執相,善說如法,不如法煩惱取相能令滅盡,是說深語。
심오한 말이란 업으로 삼은 것[業處]을 통달하는 것이니, 분별(分別)ㆍ상(想)ㆍ염(念)ㆍ작의(作意)ㆍ안착(安著)은 모두 상(相)에 대한 집착을 말미암은 것이다. 법다운 것과 법답지 못한 것을 잘 설하여 번뇌로 취착한 상을 능히 멸진케 하는 이것을 심오한 말을 설하는 것이라 한다.
不安非處者,若於姓族住處業聚誦著非住可避,若於堪事處行令得安隱,是住可住,此謂不安非處。以此七分成就,是善知識可覓。
비처에 안주하지 않음이란 성족(姓族)의 거주지에서 사람들을 모아 암송하고 저술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면 이는 올바른 주처가 아니므로 피해야 옳다는 것이다. 만약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곳을 다니며 안온을 얻게 한다면 이런 주처에는 머물러도 된다. 이것을 비처에 안주하지 않는 것이라 한다. 이 7분을 성취한 그런 선지식을 찾아보아야 한다.
問:云何應覓?
答:若知某甲住處是功德成就可重,若有禪師應當往彼。若自不知、餘處同學知,應往親覲。
【문】찾아야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답】만약 공덕을 성취해 중시할 만한 어떤 주처에 어떤 선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마땅히 그를 찾아가야 한다. 만약 자신은 알지 못하지만 다른 주처의 동학(同學)이 안다면 마땅히 찾아가 직접 만나보아야 한다.
已知時節如法未說其意,恭敬勞問起居,諮訪所行:何處國土何處住止,有衆安住,有僧靜坐,有是禪師,其行若爲?以何功德一切所貴?應作如是問。同學應答:某國某住某衆禪坐,某禪師衆所愛重。
시절이 법다운데도 자신의 뜻을 설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면 공경히 기거의 안부를 자주 묻고 소행을 여쭈며 “어느 국토 어느 주처에 안주하는 대중이 있는가, 정좌(靜坐)하는 스님이 있는가, 이런 선사가 있는가, 그 행은 어떠한가, 어떤 공덕으로 모두에게 존중받는가”라고 마땅히 이와 같이 물어야 한다. 그러면 동학은 “어느 나라, 어느 주처, 어느 대중의 선좌, 어느 선사가 대중들에게 사랑받고 존중 받는다”라고 답해야 한다.
得聞是已深思隨喜,當往彼處親覲受行。應整衣服到和上所,自說意樂。和上聽我,我當往彼親覲禪師。
이를 듣고 나서는 깊이 생각해 따라 기뻐하며, 마땅히 그곳으로 찾아가 직접 뵙고 그 행을 배워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의복을 가지런히 하고 화상의 처소에 이르러 이렇게 자신의 의요(意樂)를 말씀드려야 한다. “화상이여, 허락하소서. 저는 저곳으로 찾아가 선사를 직접 뵐 것입니다.”
和上應聽,答善哉,我亦隨喜,是善人所作。此謂善人共住、善人所行,是隨法修行,若見聞者,得大利益,何況共住。汝當往彼。汝已往彼,愼莫放逸,若是善人可勤修學。若於一時及一切時,等加信敬,誠當善語,守護身口,曉解脩行,當得成就。一切依師莫生輕易,如初嫁小女性事舅姑,應生慚愧聽受敎誡。
그러면 화상은 허락하며 이렇게 답해야 한다. “훌륭하구나. 나 또한 기쁘니, 이는 선량한 사람이 해야 할 바이다. 이것을 ‘선량한 사람이 함께 머무는 것은 선량한 사람이 행할 바이다’라고 하니, 이는 법에 따라 수행하는 것이다. 보거나 듣기만 해도 큰 이익을 얻는데 하물며 함께 머무는 것이랴. 그러니 너는 그곳으로 가야 하리라. 너는 그곳에 가서는 삼가 방일해서는 안 된다. 만약 그 선량한 사람에게서 부지런히 수학할만하다면, 만약 한 때나 모든 시간 등에 믿고 공경하며 정성을 다할만하다면, 마땅히 잘 말하고, 몸과 입을 수호하고, 잘 이해하고, 수행하여야 하고, 마땅히 성취하여야 한다. 일체를 스승께 의지해야지 경솔한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갓 결혼한 여자가 시부모를 섬기듯이 마땅히 부끄러움을 일으켜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若見弟子無衣服湯藥,若往彼時如法料理,說法敎誡。及至,將送行坐,敎以善法。彼坐禪人齊整衣服,恭敬圍繞禮師足下。
만약 제자에게 의복과 탕약이 없는 것을 보았다면 그곳으로 떠날 때에 여법하게 마련해주면서 법을 설해 가르치고, 나아가 전송할 때도 걷고 앉는 자리에서 선법(善法)으로 가르쳐야 한다. 그 좌선인은 의복을 가지런히 하고서 공경히 주위를 돌고 스승의 발아래 예배하여야 한다.
於行所半路園外諸有水地,往彼一處衣鉢革屣澡罐禪具,高置一處不使近水,當浴不聲。若浴竟已,齊整衣服,著鬱多羅僧,衣鉢禪具置右肩上,卷僧伽梨若置肩上。
(그런 다음) 수행처소나 길 도중이나 동산 밖에 물이 있는 곳이 있으면 그곳 한 자리로 가서 의발(衣鉢)ㆍ혁사(革屣)ㆍ조관(澡罐)ㆍ선구(禪具)를 한 곳에 높이 올려놓고 물이 닿지 않게 하라. 목욕할 때에는 소리를 내지 말고, 목욕을 끝냈으면 의복을 가지런히 하고서 울다라승(鬱多羅僧)을 입고, 의발과 선구를 오른쪽 어깨 위에 놓고, 승가리를 말아 쥐거나 혹은 어깨 위에 놓는다.
若入寺舍,低蓋繞塔。若見比丘,當往諮問:此處有坐禪人不?有糞掃衣人不?有乞食人不?有律師不?有者於何處住?從何可至?有者當往。若無此人,有律師者,我亦當往。又無律師,誰爲上座,我亦當往。
절에 들어가면 일산을 거두고 탑 주위를 돌아야 하며, 비구를 보면 마땅히 그에게 가서 이렇게 물어야 한다. “이곳에 좌선하는 분이 계십니까, 분소의를 수지하는 분이 계십니까, 걸식하는 분이 계십니까, 율사가 계십니까, 계시다면 어디에 머무십니까, 어디로 가야 이를 수 있습니까, 계시다면 마땅히 찾아갈 것입니다. 만약 이런 분이 없다면 율사는 계십니까? 저는 그래도 찾아갈 것입니다. 또 율사마저 없다면 어느 분이 상좌이십니까? 저는 그래도 찾아갈 것입니다.”
若上座大僧爲取衣鉢,勿與;若餘小者,應與。若無人取,下置一處。若見上座,應當禮足於一面住。
만약 상좌나 대승(大僧)이 의발을 받아주려 하면 주어서는 안 된다. 만약 다른 어린 사람이라면 마땅히 주어야 한다. 만약 의발을 받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한 곳에 내려놓아라. 만약 상좌를 보면 마땅히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머물러야 한다.
舊住比丘以坐以水及澡洗處如法供給,延其消息安其衣鉢,示其便處,訪問僧制。日將入時,周行寺內。若見律師,共語諮問所疑之罪及不犯罪。若見阿毘曇師,爲應修慧,當問陰入界業。若見頭陁人,爲相應慧,當問頭陁功德。若住於彼,日日應往處處諮問。若欲行,當屛牒臥具,禮大僧足,白云行去。此是比丘爲客法用。
그러면 그곳에 예전부터 머물던 비구는 자리와 물 및 씻는 곳을 여법하게 공급하고, 그가 쉴 자리를 펴주고, 그의 의발을 안치하고, 대소변 보는 곳을 일러준다. (그러면 찾아간 자는) 그곳 승가의 규율에 대해 묻고 해가 질 무렵에 절 안을 두루 돌아보아야 한다. 그러다 율사를 보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의심나는 죄나 범해서는 안 되는 죄에 대해 물어야 한다. 만약 아비담사(阿毘曇師)를 보면 마땅히 지혜를 닦아야 하고, 음(陰)ㆍ입(入)ㆍ계(界)의 업에 대해 물어야 한다. 만약 두타를 수지하는 사람을 보면 지혜에 상응하여 마땅히 두타의 공덕에 대해 물어야 한다. 만약 그곳에 머문다면 매일매일 찾아가 곳곳에서 물어야 한다. 만약 그곳을 떠나고자 한다면, 마땅히 와구를 잘 접어 대승(大僧)의 발에 예배하며 떠난다고 알려야 한다. 이것이 비구가 나그네가 되었을 때의 법용(法用)이다.
於彼坐禪人,應住親近。禪師若至,雖小亦代取衣鉢。禪師之法,可行不可行不應卽行令去,是先所作應當修行。若欲敎人先取覺學。坐禪人先已行法。
그 좌선인에게서는 마땅히 머물며 가까이해야 하고, 선사가 만일 찾아왔다면 그가 비록 나이가 적더라도 대신 의발을 받아들어야 한다. 선사의 법이 행할만한 것이건 행할만한 것이 아니건 곧바로 가거나 떠나게 해서는 안 되며, 그것이 예전에 했던 것이라도 마땅히 수행하여야 한다. 만약 사람을 가르치고자 한다면 좌선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예전에 어떤 법을 행하였는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
看視住處安置衣鉢,少時消息知識時節,親覲禪師恭敬禮拜,少時靜默當坐。若禪師問所欲,當隨說所樂,若不問者則不應說。從此已後,楊枝澡洗等,當請依止脩所行業。
(선사를 찾아갔을 때에는) 주처를 살펴보고 의발을 안치하고는 잠시 쉬다가 적절한 시기를 알아 선사를 직접 뵙고, 공경히 예배하고, 잠시 침묵하다가 앉아야 한다. 만약 선사가 원하는 바를 물으면 그에 따라 좋아하는 바를 말씀드려야 하고, 묻지 않으면 말씀드려서는 안 된다. 그러고 난 뒤에 양치질 세수 등을 하고는 의지할 것을 청하고 행할 업을 닦아야 한다.
若乞時至,往問闍梨,如法當作。食時若至,爲闍梨洗足及安坐處授鉢。於其自鉢食,應問闍梨所取多少,安置自鉢減與弟子。如是攝受,如是不難。
걸식할 때가 되면 아사리[스승]에게 찾아가 물어 여법하게 행하여야 한다. 식사 때가 되면 아사리의 발을 씻어드리고, 자리에 편안히 앉혀드리고, 발우를 드리고, 자신의 발우의 음식에 대하여 그 취한 바의 많고 적음을 아사리에게 여쭤야 하고, 자신의 발우의 음식을 덜어 제자에게 주어야 한다. 이와 같이 거두고, 이와 같이 어렵지 않다.
爾時食已,取闍梨鉢洗訖安處,知時親覲恭敬禮拜,少時靜默當坐。若闍梨問,隨說所樂。若不問,禮拜闍梨,請聽我說本來所欲。若蒙聽許,隨意問。
그때 먹고 나서는 아사리의 발우를 가져다 씻고, 편안한 곳에서 때를 알아 직접 뵙고, 공경히 예배하고, 잠시 침묵하다가 앉아야 한다. 만약 아사리가 물으면 그에 따라 좋아하는 바를 말씀드리고, 묻지 않으면 아사리에게 예배하고 “제가 본래 원했던 바를 말씀드리도록 허락하소서. 만약 허락하신다면 제 뜻대로 여쭙겠습니다”라고 청해야 한다.
闍梨若聽,一切當說。若不問,禮阿闍梨,覓時節當說我來因緣,願闍梨聽我所說。若阿闍梨聽,一切其所樂當說。闍梨言善哉,如法敎誡,應當攝受。是故世尊說偈:
아사리가 만약 허락하면 모든 것을 말씀드려야 한다. 만약 물어보지 않는다면 아사리에게 예배하고 적절한 시기를 엿보아 “제가 찾아온 인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원컨대 아사리시여, 저의 말을 들어주소서”라고 말한다. 만약 아사리가 허락하면 좋아하는 모든 것을 말씀드려야 한다. 그러면 아사리는 “훌륭하구나”라고 말하고, 법에 따라 가르치고, 마땅히 거두어야 한다. 때문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설하셨다.
以時而親近,令心無憍慢,梵行能護法,譬如樹無風。
적절한 때에 가까이하고 마음에 교만이 없게 하라.
범행은 법을 보호할 수 있으니, 나무에 바람이 없는 것과 같네.
念法而脩行,及法戲自樂,法住法分別,當說如實法。
법을 생각하면서 수행하고 나아가 법의 유희를 스스로 즐기며
법에 머물고, 법을 분별하여 여실한 법을 설해야 하네.
毀法不當行,綺語憂戲笑,嗔恚勿懈怠,忿恨貪慢癡。
법을 훼손하는 짓을 해서는 안 되니 기어(綺語)ㆍ우(憂)ㆍ희소(戱笑)
진에(瞋恚)ㆍ해태(懈怠) 분(忿)ㆍ한(恨)ㆍ탐(貪)ㆍ만(慢)ㆍ치(癡)가 없게 하라.
愛染很戾等,脩行悉伏除,守義不自高,知善誠實語。
오염된 애욕과 사나운 행동 등을 수행으로 모두 조복해 없애고
의를 지키며 스스로 오만하지 말고 착하고 정성스럽고 진실하게 말할 줄 알라.
爲定實知聞,若人輒放逸,聞慧不增長。
정(定)을 위해서는 실로 알고 들어야 하나니
만약 사람이 문득 방일하면 문혜(聞慧)가 증장되지 않네.
若人知正法,天人所恭敬,恭敬成信心,多聞能護法,令得所樂聞。
만약 사람이 정법을 알면 천인에게 공경을 받고
그 공경심이 신심을 이루나니 다문은 능히 법을 보호하고
좋아하는 것을 들을 수 있게 하네.
如是諸功德,隨法能修行,能生勝妙解,成就智慧人。
이와 같은 모든 공덕을 법에 따라 수행할 수 있다면
수승하고 오묘한 이해를 일으킬 수 있어 지혜로운 사람이 되리라.
若有如是師,當脩不放逸。
만일 이와 같은 스승이 있다면 마땅히 수행하며 방일하지 말라.
解脫道論卷第二 甲辰歲高麗國分司大藏都監奉勅彫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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