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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도론(解脫道論)-해탈도론(解脫道論) 제1권-1. 인연품(因緣品)

bunnehaital 2022. 9. 21. 23:56

해탈도론(解脫道論)

 

 

해탈도론(解脫道論) 1

 

아라한 우파저사(優波底沙, Upatiʂya) 양나라 말로 대광(大光) 지음

() 부남(夫南)삼장 승가바라(僧伽婆羅, Saṅghabhara 또는 Saṅghapāla) 한역, 이태승 번역

阿羅漢優波底沙梁言大光造, 梁扶南三藏僧伽婆羅譯

 

1. 인연품(因緣品)

禮世尊應供正遍知戒定智慧無上解脫隨覺此法有稱瞿曇

세존ㆍ응공ㆍ정변지께 예배 올립니다.

계ㆍ정ㆍ혜와 무상해탈(無上解脫) 이 법을 따라 깨달아 명성을 얻으신 구담(瞿曇).

 

若人脫衆難已得離諸著成就於勝分心畏生老死樂善樂解脫令到涅槃樂未到有彼岸亦令得具足廣問脩多羅毘曇毘尼事此解脫道我今當說諦聽

만약 사람이 갖가지 고난을 벗어나서 모든 집착을 떠나며, 승분심(勝分心)을 성취하고, 생ㆍ노ㆍ사를 두려워하며, ()과 해탈을 즐겨 열반의 즐거움에 이르게 하며, 아직 이르지 못한 그 피안을 또한 구족하게 하기 위해서는 널리 수다라(修多羅Sūtra)ㆍ비담(毘曇Abhidharma)ㆍ비니(毘尼Vinaya)를 물어야 한다. 이런 해탈도를 내가 이제 설할 것이니, 잘 들어라.

 

云何爲戒

戒者威儀義定者不亂義慧者知覺義解脫者離縛義無上者無漏義隨覺者知得義此法者四聖法義瞿曇者姓義有稱者世尊義以戒定慧解脫殊勝功德能到最勝名稱無量

무엇이 계(Sila)인가?

란 위의(威畿)의 뜻이다. “(Sāmādhi)”이란 불란(不亂)의 뜻이다. “(Pañ̃ñā)”란 지각(知覺)의 뜻이다. “해탈이란 계박을 벗어나다[離縛]는 뜻이다. “무상(無上)”이란 무루(無漏)의 뜻이다. “따라 깨달음[隨覺]”이란 지득(知得)의 뜻이다. “이 법이란 4성법(聖法)을 뜻한다. “구담[Gotama]”이란 성씨를 뜻한다. “명성이 있다란 세존(世尊)을 뜻한다. 계ㆍ정ㆍ혜ㆍ해탈의 뛰어난 공덕으로 가장 수승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고 그 명성이 한량없게 된다.

 

解脫道者何義

解脫者五解脫伏解脫彼分解脫斷解脫猗解脫離解脫

해탈도(解脫道)란 무슨 뜻인가. 해탈이란 5해탈을 말하니, 즉 복해탈(伏解脫, Vikhambhana-vimutti)ㆍ피분해탈(彼分解脫, Tadamga-vimutti)ㆍ단해탈(斷解脫, Samuccheda-vimutti)ㆍ의해탈(猗解脫, Patippassaddha-vimutti)ㆍ이해탈(離解脫, Nissarana-vimutti)이다.

 

云何伏解脫現脩行初禪伏諸蓋此謂伏解脫彼分解脫者現脩達分定諸見解脫此謂彼分解脫斷解脫者脩出世閒道能滅餘結此謂斷解脫猗解脫者如得果時樂心猗此謂猗解脫離解脫者是無餘涅槃此謂離解脫此解脫道爲得解脫是具足道以戒定慧謂解脫道解脫道者我今當說

무엇이 복해탈인가. 현재 초선을 닦아 모든 개()를 굴복시키는 것, 이것을 복해탈이라 하다. 피분해탈이란 현재 달분정(達分定)을 닦아 모든 견해로부터 해탈하는 것, 이것을 피분해탈이라 한다. 단해탈이란 출세간도를 닦아 능히 나머지 결박[]을 없애는 것, 이것을 단해탈이라 한다. 의해탈이란 과보를 얻었을 때 마음이 즐겁고 몸이 경쾌한 것[=輕安]과 같은 것이니, 이것을 의해탈이라 한다. 이해탈이란 바로 무여열반이니, 이것을 이해탈이라 한다. 이 해탈도는 해탈을 얻기 위한 것이고, 이 구족도는 계ㆍ정ㆍ혜에 의해 얻어지는 해탈도라 한다. 해탈도를 나는 지금 마땅히 설할 것이다.

 

何用說解脫道

有善人樂得解脫不聞說解脫故又不伏解脫故又不正伏解脫故如盲人無導獨遊遠國唯嬰衆苦不得解脫欲得解脫而無所因何以故解脫是因如佛所說若有衆生塵勞微細不聞法故終亦退轉又如佛說諸比丘有二因二緣能生正見

어떠한 필요로 해탈도를 설하는가?

어떤 선량한 사람들[善人]이 기꺼이 해탈을 얻으려 해도 해탈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하기 때문이며, 또 번뇌를 굴복시켜 해탈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또 번뇌를 바르게 굴복시켜 해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눈먼 이가 안내하는 사람 없이 홀로 먼 나라로 가는 것과 같아 갖가지 고통을 받을 뿐 해탈을 얻을 수 없으며, 해탈을 얻고 싶어도 그 원인 되는 바가 없다. 왜냐하면 해탈에 있어 이것이 원인이기 때문이니, 부처님께서 진로(塵勞)가 미세한 중생이라 해도 법을 듣지 않는 까닭에 결국은 역시 퇴전하고 만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또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에게는 두 가지 인, 두 가지 연이 있어 능히 바른 견해[正見]를 일으킨다.

 

云何爲二從他聞自正念是故說解脫不伏解脫者爲生厭離故說解脫不正伏解脫者爲除不正道爲得禪解脫道故說解脫如遠行人得善示導是伏解脫道三陰成滿

무엇이 둘인가. 첫째는 다른 이로부터 듣는 것이고, 둘째는 스스로 바르게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까닭에 해탈을 설한다. 번뇌를 굴복시켜 해탈하지 못하는 자에게 싫어하여 떠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기 위하여 해탈을 설한다. 번뇌를 바르게 굴복시켜 해탈하지 못하는 자에게 바르지 않은 도[不正道]를 없애고 선해탈도(禪解說道)를 얻게 하기 위하여 해탈을 설한다. 마치 먼 길을 가는 사람이 좋은 안내자를 만나는 것과 같다. 번뇌를 굴복시키는 해탈도[伏解脫道]에서는 3()을 원만히 성취해야 한다.

 

何等爲三謂戒陰定陰慧陰

무엇이 3음인가. 계음ㆍ정음ㆍ혜음이다.

 

云何戒陰正語正業正命及種類所攝或戒陰種種戒功德聚

무엇이 계음(戒陰)인가. 정어ㆍ정업ㆍ정명 및 그 종류에 속하는 것들이다. 혹은 계음이란 갖가지 계의 공덕이 모인 것을 말한다.

 

云何定陰正精進正念正定及種類定陰所攝或種種定功德聚

무엇이 정음(定陰)인가. 정정진ㆍ정념ㆍ정정 및 그 종류의 정음에 속하는 것이나 혹은 갖가지 정()의 공덕이 모인 것이다.

 

云何慧陰正見正思惟及種類所攝或種種慧功德聚此三陰成滿

무엇이 혜음(慧陰)인가. 정견ㆍ정사유 및 그 종류에 속하는 것이나 혹은 갖가지 지혜의 공덕이 모인 것이다. 이것이 3음을 원만히 성취하는 것이다.

 

是伏解脫道當學三學謂增上戒學增上心學增上慧學有戒有增上戒學有定有增上心學有慧有增上慧學復次有戒戒學有戒增上戒學有定心學有定學增上心學有慧慧學有慧增上慧學

번뇌를 굴복시키는 해탈도에서는 마땅히 3()을 배워야 한다. 증상계학(增上戒學)ㆍ증상심학(增上心學)ㆍ증상혜학(增上慧學)이다. 계가 있고 증상계학이 있으며, 정이 있고 증상심학이 있으며, 혜가 있고 증상혜학이 있다. 또 계와 계학이 있고 계학과 증상계학이 있으며, 정과 심학이 있고 정학과 증상심학이 있으며, 혜와 혜학이 있고 혜학과 증상혜학이 있다.

 

云何戒學

謂有相戒是名戒學謂達分戒是增上戒學復次凡夫戒是名戒學聖戒是增上戒學

무엇이 계학인가?

유상계(有相戒) 이것을 계학이라 하고, 달분계(達分戒) 이것을 증상계학이라 한다. 또 범부계 이것을 계학이라 하고, 성계(聖戒) 이것을 증상계학이라 한다.

 

云何心學所謂欲定

무엇이 심학(心學)인가?

소위 욕정(欲定)이다.

 

云何增上心學

色定及無色定此謂增上心學復次有相定心學達分定及道定是謂增上心學

무엇이 증상심학인가?

색정(色定) 및 무색정(無色定), 이것이 말하자면 증상심학이다. 또 유상정(有相定)은 심학이고, 달분정(達分定) 및 도정(道定)은 증상심학이다.

 

云何慧學

謂世閒智是名慧學四諦相似智及道智是謂增上慧學如世尊爲鈍根人說增上戒學爲中根人說增上心學爲利根人說增上慧學

무엇이 혜학인가.

말하자면 세간지(世間智)를 혜학이라 하고, 사제상사지(四諦相似智) 및 도지(道智)를 증상혜학이라 한다. 세존이 근기가 둔한 사람[鈍根人]을 위하여 증상계학을 설하고, 근기가 보통인 사람[中根人]을 위하여 증상심학을 설하고, 근기가 예리한 사람[利根人]을 위하여 증상혜학을 설한 것과 같다.

 

學者何義

學可學學增上學學無學名學如是學此三學謂伏解脫道以三種學成就淸淨所謂戒淸淨心淸淨見淸淨於是戒是戒淸淨定是心淸淨慧是見淸淨

()이란 무슨 뜻인가?

가학(可學)을 배우는 것, 증상학(增上學)을 배우는 것, 무학(無學)을 배우는 것, 이것을 학이라 한다. 이와 같은 이 3학을 배우는 것을 번뇌를 굴복시키는 해탈도라 한다. 이 세 가지 학으로 청정(淸淨)을 성취하니, 소위 계청정(戒淸淨)ㆍ심청정(心淸淨)ㆍ견청정(見淸淨)이다. 여기에서 계는 곧 계청정이고, 정은 곧 심청정이고, 혜는 곧 견청정이다.

 

戒者洗犯戒垢定洗纏垢是謂心淸淨慧除無知垢此謂見淸淨復次戒除惡業垢定除纏垢慧除使垢如是以三淸淨是伏解脫道又以三種善伏道謂初後善以戒爲初以定爲中以慧爲後

계는 범계(犯戒)의 때[]를 씻어내고, 정은 전()의 때를 씻어내는데, 이것을 심청정이라 한다. 혜는 무지의 때를 없애므로 이것을 견청정이라 한다. 또 계는 악업의 때를 없애고, 정은 전의 때를 없애고, 혜는 사(使)의 때를 없앤다. 이와 같은 세 가지로 청정하게 하는 것이 곧 번뇌를 굴복시키는 해탈도이다. 또 세 가지 선()으로써 번뇌를 굴복시키는 길이다. 말하자면 초선ㆍ중선ㆍ후선이니 계로써 초를 삼고, 정으로써 중을 삼고, 혜로써 후를 삼는다.

 

云何戒爲初善有精進人成就不退以不退故喜以喜故踊躍以踊躍故身猗以身猗故樂以樂故心定此謂初善定爲中善者以定如實知見此謂中善慧爲後善者已如實知見厭患以厭患故離欲以離欲故解脫以解脫故成自知

계를 초선(初善)으로 삼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정진하는 사람은 불퇴를 성취하고, 불퇴하는 까닭에 기뻐하며, 기뻐하는 까닭에 용약(踊躍)하며, 용약하는 까닭에 몸이 가볍고 편안하며, 몸이 가볍고 편안한 까닭에 즐겁고, 즐거운 까닭에 마음이 안정되니, 이것을 초선이라 한다. 정을 중선(中善)으로 삼는다는 것은 정으로써 여실하게 지견(知見)하는 것이니, 이것을 중선이라 한다. 혜를 후선(後善)으로 삼는다는 것은 이미 여실하게 알고 보았기에 과환을 혐오하고[厭患], 과환을 혐오하는 까닭에 욕심을 떠나며, 욕심을 떠나는 까닭에 해탈하고, 해탈하는 까닭에 스스로 지()를 성취하게 된다.

 

如是成就三善道已伏解脫道得三種樂謂無過樂寂滅樂正覺樂彼以戒得無過樂以定得寂滅樂以慧得正覺樂如是成就得三種樂

이와 같은 세 가지 선의 길을 성취하고 나면 번뇌를 굴복시키는 해탈도가 세 가지 즐거움을 얻게 되니, 즉 과오가 없는 즐거움[無過樂]ㆍ적멸의 즐거움[寂滅樂]ㆍ정각의 즐거움[正覺樂]이다. 그것은 계로써 과오가 없는 즐거움을 얻고, 정으로써 적멸의 즐거움을 얻고, 혜로써 정각의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취하여 세 가지 즐거움을 얻는다.

 

是伏解脫道遠離二邊得中道具足以此戒善除諸欲著於無過樂情生欣樂以定除身羸於寂滅樂而增喜樂以慧分別四諦中道具足於正覺樂深懷愛樂如是遠離二邊得中道具足

번뇌를 굴복시키는 해탈도는 양 극단을 멀리 떠나 중도를 얻어 구족하는 것이다. 이 계의 선()으로써 모든 욕망과 집착을 없애 과오가 없는 즐거움에서 유정이 흔연한 즐거움을 일으키고, 정으로써 몸의 분잡함을 없애 적멸의 즐거움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증진시키고, 혜로써 4제를 분별하고 중도를 구족하여 정각의 즐거움에서 깊이 사랑과 즐거움을 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양 극단을 멀리 떠나 중도를 얻어 구족하는 것이다.

 

是伏解脫道以戒除惡趣以定除欲界以慧除一切有於戒多脩於定慧少脩成須陁洹斯陁含於戒定多脩於慧少修成阿那含脩三種滿成阿羅漢無上解脫

번뇌를 굴복시키는 해탈도는 계로써 악취(惡趣)를 없애고, 정으로써 욕계(欲界)를 없애며, 혜로써 모든 유()를 없애는 것이다. 계를 많이 닦고 정과 혜를 조금 닦으면 수다원(須陀洹)ㆍ사다함(斯陀含)을 이루고, 계와 정을 많이 닦고 혜를 조금 닦으면 아나함(阿那含)을 이루며, 세 가지 모두 원만히 닦으면 아라한(阿羅漢)의 무상해탈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