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탈도론 제6권
8. 행문품 ③
問:云何虛空一切入?何脩?何相?何味?何處?何功德?云何取其相?
答:虛空一切入,有二種:有虛空離色、有虛空不離色。虛空入處相,所謂離色虛空。井穴虛空相,此謂不離色虛空。彼脩此想,心住不亂,此謂脩。於虛空想放意爲相,不離虛空想爲味,作意無二爲處。
【문】무엇이 허공일체입(虛空一切入)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답】허공일체입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색을 벗어난 허공과 색을 벗어나지 않는 허공이다. 허공입처의 상은 소위 색을 벗어난 허공이다. 우물의 구멍과 같은 허공상은 소위 색을 벗어나지 않는 허공이다. 그가 이 상(想)을 닦아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 이것을 닦음[修]이라 한다. 허공상에 뜻을 두는 것을 상으로 삼고, 허공상을 떠나지 않는 것이 그 맛이며, 작의하는데 둘이 없는 것이 그 처이다.
何功德者,不共二功德,於虛空入,障礙處所不能碍。若牆壁山等,身行無礙,自在無畏。
어떤 공덕이 있는가. 공유하지 않는 두 가지 공덕이 있다. 허공입에서 장애처는 능히 장애가 되지 않는다. 담장이나 벽이나 산 등이 있어도 신행(身行)이 걸림이 없고 자재로우며 두려움이 없다.
云何取其相者,於虛空入取虛空相,若作處、若自然處,舊坐禪人於自然處取相,能於處處見,或於孔穴、或櫺窗閒、或樹枝閒。從彼常見,隨樂不樂,卽見彼分虛空相卽起,不如新坐禪人。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작처나 자연처의 허공입에서 허공상(虛空相)을 취한다. 구참 좌선인은 자연처에서 상을 취한다. 그는 능히 곳곳에서 보고, 구멍이나 창문 틈이나 혹은 나뭇가지 사이에서 그로부터 항상 보고, 즐겁건 즐겁지 않건 그것을 따라 즉시 피분을 본다. 그러면 허공상이 즉시 일어난다. 신참 좌선인은 그렇지 않다.
新坐禪人於作處取相,不能於非作處。彼坐禪人,或於屋內、或於屋外不障碍處,作圓孔穴作虛空想,以三行取相:以等觀、以方便、以離亂。於虛空一切入,生四禪五禪,餘如初廣說虛空一切入已竟。
신참 좌선인은 작처에서 상을 취해야 하니, 작처가 아닌 곳에서는 불가능하다. 그 좌선인은 실내나 혹은 실외에서 장애가 없는 곳에 둥근 구멍을 만들어 허공상(想)을 짓고, 평등관ㆍ방편ㆍ이난의 세 가지 행으로써 상을 취하여 허공일체입에서 4선ㆍ5선을 일으킨다. 나머지는 앞에서 자세히 설한 것과 같다.[허공일체입을 마친다.]
問:云何識一切入?
答曰:識處定,此謂識一切入,餘如初廣說十一切入已竟。
【문】무엇이 식일체입(識一切入)인가?
【답】식처정(識處定)을 식일체입이라 한다. 나머지는 앞에서 자세히 설한 것과 같다.[십일체입을 마친다.]
問:於是一切入,云何散句?
答:若一相得自在,一切餘相隨其作意。若於一處一切入,於初禪得自在。堪任餘一切入,能起第二禪。如是第二禪得自在,能起第三禪。第三禪得自在,能起第四禪。
【문】이 일체입(一切入)에서 무엇이 산구(散句)인가?
【답】만약 하나의 상(相)으로 자재를 얻으면, 모든 나머지 상도 그것에 따라 작의한다. 만약 1처(處)의 일체입에서 초선에 자재를 얻으면 나머지 일체입도 감당하여 제2선을 일으킬 수 있다. 이와 같이 제2선에 자재를 얻으면 제3선을 일으킬 수 있고, 제3선에 자재를 얻으면 제4선을 일으킬 수 있다.
問:於諸一切入,云何最勝?
答:四色一切入是爲最勝,成解脫故,得除入故,曰一切入勝。作光明故,心得自在。於八一切入及於八定,以入十六行安詳而起。隨所樂處,其所樂定隨意無障,次第上次第下,次第上下令一一增長,或俱令增長,或中少、或分少、或事少、或分事少、或分俱、或事俱、或分事俱。
【문】모든 일체입에서 무엇이 가장 수승한가?
【답】네 가지 색깔의 일체입이 가장 수승하니, 해탈을 이루고 수승처[除入]를 얻기 때문이다. 백일체입(白一切入)이 수승하며, 광명을 짓는 까닭에 마음에 자재를 얻는다. 8일체입 및 8정에서 16행으로 들어갔다가 느긋하게 일어남으로써 자신이 좋아하는 처(處)를 따라 자신이 좋아하는 정(定)이 뜻에 따라 장애가 없으며, 차례대로 올라가고 차례대로 내려오고 차례대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며 하나하나를 증장시킨다. 함께 증장시키기도 하고, 중간을 생략하기도 하고, 분(分)을 생략하기도 하고, 사(事)를 생략하기도 하고, 분과 사를 생략하기도 하고, 분과 함께하기도 하고, 사와 함께 하기도 하고, 분과 사와 함께하기도 한다.
隨其所樂處者,或於村、或於阿蘭若,是其所樂處入於三昧。如所樂者,是其所樂禪,入於禪定如其所樂。時者,隨意所樂時入於三昧,或多時入正受。
자신이 좋아하는 처를 따른다는 것은 혹은 마을에서 혹은 아란야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이런 곳에서 삼매에 드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이란 자신이 좋아하는 선(禪)으로 선정에 드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때[時]란 자신의 뜻에 따라 좋아하는 시간에 삼매에 드는 것이고, 혹은 많은 시간 정수(正受)에 드는 것이다.
次第上者,於初禪入定次第,乃至非非想處。次第下者,從初入非非想定,次第乃至初禪。次第上下者,越於往還,從初禪入第三禪,從第三禪入第二禪,從第二禪入第四禪,如是乃至入非非想定。
차례대로 올라간다는 것은 초선에서 정에 들어 차례대로 비비상처에 이르는 것이고, 차례대로 내려온다는 것은 처음에 비비상정에 들어 차례대로 초선에 이르는 것이며, 차례대로 올라갔다가 내려온다는 것은 한 단계를 뛰어넘었다가 돌아오는 것으로서 초선에서 제3선으로 들어갔다가 제3선에서 제2선으로 들어가고, 제2선에서 제4선으로 들어갔다가 하면서 이와 같이 비비상정에 드는 것이다.
令一一增長者,以次第入第四禪,或上或下。俱令增長者,入第四禪,從此虛空入第三禪,如是二種入定。
하나하나를 증장시킨다는 것은 차례대로 제4선에 들어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것이다. 함께 증장시킨다는 것은 제4선에 들어 이 허공으로부터 제3선에 드는 것으로, 이와 같이 두 종류의 정에 드는 것이다.
中少者,已入初禪,從此入非非想處,從此入第二禪,從此入無所有處。如是現入正受,能辨虛空處。
중간을 생략한다는 것은 초선에 들고 나서는 이로부터 비비상처에 들고, 이로부터 제2선에 들고, 이로부터 무소유처에 들면서 이와 같이 현재에서 정수(正受)에 들어 능히 허공처를 분별하는 것이다.
分少者,一禪於八一切入入定。事少者,於三一切入入於八定分。事少者,所謂二定及一切入。分俱者,於三一切入入二二禪。事俱者,於二二一切入入二禪。分事俱者,是此二句散句已竟。
분(分)을 생략한다는 것은 하나의 선(禪)으로 8일체입에서 정에 드는 것이고, 사(事)를 생략한다는 것은 하나)의 일체입에서 8정에 드는 것이며, 분과 사를 생략한다는 것은 소위 2정 및 일체입이다. 분과 함께한다는 것은 3일체입에서 22선에 드는 것이고, 사와 함께한다는 것은 22일체입에서 2선에 드는 것이며, 분과 사와 함께한다는 것[分事俱]은 이 2구를 말한다.[산구를 마친다.]
問。云何增長相?何脩?何相?何味?何處?何功德?云何取其相?
答:增長相者,滿一切處。猶如排囊滿中臭穢死屍,此謂胮脹。於胮脹相以正智知,此謂胮脹想。彼脩此想心住不亂,此謂脩。於胮脹想相隨觀爲相,厭胮脹想爲味,臭穢不淨作意爲處。
【문】무엇이 증장상(增長相)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답】증장상이란 일체처에 가득한 것이다. 냄새나고 더러운 오물이 속에 가득한 배낭(排囊)과 같은 시체를 방창(膖脹)이라 한다. 방창의 상(相)을 바른 지혜로 아는 것을 방창상(膖脹想)이라 한다. 이 상을 닦아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을 닦음이라 한다. 방창상에서 그 모습을 따라서 관하는 것을 상(相)으로 삼고, 방창상을 싫어하는 것을 맛으로 삼고, 냄새나고 더럽고 부정하다고 작의하는 것을 처로 삼는다.
何功德者,胮脹想有九功德:得念內身、得無常想、得死相、多厭患伏婬欲、斷色憍、斷無病憍、向善趣、向醍醐。
어떤 공덕이 있는가. 방창상에는 아홉 가지 공덕이 있다. 내신(內身)에 대한 염(念)을 얻고, 무상상(無常想)을 얻고, 사상(死相)을 얻고, 과환에 대한 혐오[厭患]가이 많아지고, 음욕을 조복하고, 색교(色憍)를 끊고, 무병교(無病憍)를 끊고, 선취로 향하게 하고, 제호(醍醐)로 향하게 한다.
云何取其相者,新坐禪人現取胮脹不淨想,以無二行,以念不動不愚癡、以諸根內入、以心不出外,以往彼處。是處不淨有諸死屍,住於彼處離於逆風,對不淨相不遠不近,或倚或坐。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신참 좌선인은 현재에서 방창(膖脹)의 부정상(不淨相)을 취한다. 무이(無二)의 행으로써, 동요하지 않고 어리석지 않는 염(念)으로써, 모든 근을 안으로 모음으로써, 마음이 외부로 나지지 않음으로써 그곳으로 가는데, 그곳은 갖가지 시체가 있는 부정한 곳이다. 그곳에 머물며 역풍을 벗어나 부정한 상을 마주하고,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기대거나 앉는다.
彼坐禪人,若倚若坐近不淨處,若石若土埵、或樹或杌或藤,爲作相作事思惟:此石不淨。此不淨相。此石,如是土埵等,已爲作相、已作事。以十行胮脹不淨相,從其自性修行當觀:以色、以男女形、以方、以處、以分別、以節、以穴、以坑、以平地,以平等觀於一切處。
그 좌선인은 기대거나 앉아 부정처 근처의 돌이나 흙더미나 나무나 그루터기나 덩굴에서 상(相)을 짓고 사(事)를 지어 ‘이 돌은 부정하다. 이것은 부정상이다’라고 사유한다. 이 돌과 같이 흙더미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상을 짓고 나고, 사를 짓고 나서는 10행으로 방창의 부정상을 그 자성부터 수행하고 마땅히 관해야 한다. 즉 색깔[色]ㆍ남녀의 형상[男女形]ㆍ방위[方]ㆍ장소[處]ㆍ마디[節]ㆍ구멍[穴]ㆍ구덩이[坑]ㆍ평지(平地)ㆍ평등(平等)ㆍ일체처(一切處)로써 관해야 한다.
以色者,若黑以觀黑,若不黑不白,以觀不黑不白,若白以觀白,若臭皮觀以臭皮。
색깔로 관한다는 것은 검으면 검다고 관하고, 검지도 않고 희지도 않으면 검지도 희지도 않다고 관하고, 희면 희다고 관하고, 냄새나는 피부면 냄새나는 피부라고 관하는 것이다.
以形者,若女形若男形,隨觀若少若長若老。隨觀者,若長以長,若短以短,若肥以肥,若小以小隨而觀之。
형상으로 관한다는 것은 여자의 형상인지 남자의 형상인지 관하고, 어린아이인지 성인인지 노인인지 따라서 관하는 것이다. 따라서 관한다는 것은 키가 크면 크다고, 키가 작으면 작다고, 뚱뚱하면 뚱뚱하다고, 왜소하면 왜소하다고 그것에 따라서 관하는 것이다.
以方者,於此方擲頭,於此方擲手,於此方以腳,於此方以背,於此方以腹,於此方我所坐,於此方不淨相。如是隨觀。
방위로 관한다는 것은 이 방향에 내던진 머리가 있고, 이 방향에 내던진 손이 있고, 이 방향에 다리가 있고, 이 방향에 등이 있고, 이 방향에 배가 있고, 이 방향에 내가 앉은 자리가 있고, 이 방향에 부정상이 있다고, 이와 같이 따라서 관하는 것이다.
以光明處,於此光明處是擲手處,於此光明是擲腳處,於此光明是擲頭處,於此光明是我坐處,於此光明是不淨相處。
밝은 장소[光明處]로 관한다는 것은 이 밝은 장소에서 여기가 바로 손[手]을 내던진 곳이고, 이 밝은 장소에서 여기가 바로 다리를 내던진 곳이고, 이 밝은 장소에서 여기가 바로 머리를 내던진 곳이고, 이 밝은 장소에서 여기가 바로 내가 앉은 곳이고, 이 밝은 장소에서 여기가 바로 부정상이 있는 자리라고 관하는 것이다.
以分別觀,從頭至足、從下至頭,髮皮爲邊,是一屎聚。以分別觀。
분별로 관한다는 것은 머리부터 발까지, 아래로부터 머리까지, 모발과 피부를 끝[邊]으로 삼고 “이것은 하나의 똥 무더기이다”라고 분별로 관하는 것이다.
觀以節者,於二手六節,於二腳六節,髖節、項節,此謂十四大節。
마디로 관한다는 것은 두 손에 있는 여섯 마디, 두 다리에 있는 여섯 마디, 관절(髖節)과 항절(項節), 이것을 열네 개의 큰 마디라 한다.
以空穴者,謂口或開或閉,隨觀眼或開或閉,隨觀手閒腳閒孔穴。
구멍[孔穴]으로 관한다는 것은 입을 벌렸는지 다물었는지 따라서 관하고,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 따라서 관하고, 손가락 사이 발가락 사이의 빈 공간을 관하는 것이다.
以坑以平等地者,不淨相隨其處所,或於空處或於地上,是處隨觀。復次我在空處,不淨相地上,或不淨相在下,我於地上隨觀。
구덩이[坑]로, 또 평등지(平等地)로 관한다는 것은 부정상이 있는 처소를 따라 공처(空處)에 있는지 땅 위에 있는지 그 처소를 따라서 관하는 것이다. 또 ‘나는 공처에 있고 부정상은 땅 위에 있다’, 혹은 ‘부정상이 땅 아래 있고 나는 땅 위에 있다’고 따라서 관한다.
以一切處從我,不取近遠若二尋三尋隨觀。
일체처로 관한다는 것은 나로부터 너무 멀거나 가까이 하지 않고, 2심(尋)이나 3심 거리에서 따라서 관하는 것이다.
彼坐禪人如是一切正隨觀見彼相,善哉善哉,如是受持,以善自安。彼坐禪人已善取相、已善受持、已善自安,一無二行,以念不動,心不愚癡,諸根內入,心不出外。去來道路若行若坐,觀彼不淨心常受持。
그 좌선인이 이와 같이 일체를 올바르게 따라서 관하여 그 상을 보았다면 훌륭하고도 훌륭하니, 이와 같이 수지하고, 선으로 스스로를 편안케 한다. 그 좌선인은 훌륭하게 상을 취한 뒤에, 훌륭하게 수지한 뒤에, 훌륭하게 스스로를 편안케 한 뒤에 둘이 없이 한결같이 행하고, 동요하지 않는 염으로 마음이 어리석지 않고, 모든 근을 안으로 잘 모으고, 마음이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하면서 길을 가고 오며, 걷건 앉건 그 부정을 보고 마음으로 항상 수지한다.
無二行者何義?爲得身寂寂令。
둘이 없는 행[無二行]이란 무슨 뜻인가. 몸으로 하여금 적적을 얻게 하는 것이다.
念不動者,以不愚癡,以諸根內入心不出外。去來道路者何義?爲得身寂寂。
염을 움직이지 않게 하고, 어리석지 않게 하고, 모든 근을 안으로 모으고, 마음을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하면서 길을 오고 간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몸으로 하여금 적적을 얻게 하는 것이다.
離逆風者何義?爲離臭氣。
역풍을 벗어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악취를 멀리한다는 것이다.
坐不取遠近者何義?若取遠不成除相,若取近不成其厭,不見其性,以不見其性,彼相不起,是故不取遠不取近。
너무 멀리 혹은 가까이 앉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약 너무 멀면 그 상을 없앨 수 없고 너무 가까우면 그 싫음이 생기지 않아 그 성품을 보지 못하고, 그 성품을 보지 못함으로써 그 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너무 멀거나 너무 가깝게 취하지 않는다.
坐遍觀一切相者何義?爲不愚癡,名不愚癡。若坐禪人入寂寂,處見不淨相如在其前,心起驚怖。是故坐禪人,若死屍起逐,不起心思惟,如是已知念正智受持。已觀相遍,是其遍相。如是作意,是名不愚癡。
앉아서 일체상을 두루 관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어리석게 행동하지 않는 것을 어리석지 않은 것이라 한다. 만약 좌선인이 적적처로 들어가 부정상을 보고 그것이 자기 앞에 있게 되면 마음에 두려움과 공포가 일어난다. 따라서 좌선인은 “죽은 시체가 일어나 쫓아온다 해도 일어나지 않겠다”고 마음으로 사유한다. 이와 같이 알고 나서 기억하고, 바른 지혜로 수지하여 이미 관한 상이 변재한 것, 이것이 그 변상(遍相)이다. 이와 같이 작의하는 것을 어리석지 않음이라 한다.
問:取十種行相何義?
答:爲於心縛。
【문】10종 행상을 취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답】마음에 속박한다는 것이다.
觀去來道路者何義?爲起次第法。名次第法者,若坐禪人入寂寂處,有時心亂,以不常觀不起不淨相,是故坐禪人攝一切心,當觀去來道路、當觀於坐禪處、當觀遍相、當觀十種取相。彼坐禪人如是數數現觀,復更起相,如以眼見,此謂起次第法。
오고 가는 도로를 관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차제법을 일으키기는 것이다. 차제법이라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좌선인이 적적처에 들어가면 어떤 때는 마음이 심란하여 불상(不常)을 관함으로써 부정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까닭에 좌선인은 일체의 마음을 모아 마땅히 오고 가는 도로를 관해야 하고, 좌선처를 관해야 하고, 변상을 관해야 하고, 마땅히 열 가지 취상을 관해야 한다. 그 좌선인은 이와 같이 자주 현재에서 관하고 다시 또 상을 일으켜 눈으로 직접 보듯이 한다. 이것을 차제법을 일으킴이라 한다.
初坐禪人於此死屍成珍寶想,如是歡喜心得受持,心常脩行滅於諸蓋,禪分成起。彼坐禪人已離欲、已離不善法,有覺有觀寂寂所成,有喜樂入初禪定及胮脹相。
처음 좌선하는 사람은 이 시신에 진보상(珍寶想)을 일으켜 이와 같이 환희하고, 마음에 수지하며, 마음으로 항상 닦고, 모든 개(蓋)를 소멸한다. 그러면 선분(禪分)이 일어나게 된다. 그 좌선인은 이미 욕망을 떠나고 이미 불선법을 떠나 각이 있고, 관이 있으며, 적적으로 이루어진 희와 낙이 있어 초선정 및 방창상에 든다.
問:何故以不淨行起於初禪,非起餘禪?
答:此行未作觀故、此成縛處故,常隨覺觀。覺觀恒現其相得起,非離覺觀其心得安,是故初禪起非餘禪。
【문】어떤 까닭에 부정행(不淨行)으로써 초선을 일으키며, 다른 선은 일으키지 않는가?
【답】이 행은 아직 관을 생기게 하지 않는 까닭에, 또 이것은 속박처를 만드는 까닭에, 항상 각과 관을 따른다. 각과 관은 항상 나타나 그 상을 일으키며, 각과 관을 떠나서는 그 마음이 편안함을 얻지 못한다. 이러한 까닭에 초선은 생기지만 다른 선은 생기지 않는다.
復說:此不淨相色形等,以不一行思惟令起,於行思惟者,是覺觀事不能堪任離於覺觀爲思惟行,是故唯初禪起非餘禪。
또 설이 있다. 이 부정상의 색깔과 형상 등 하나가 아닌 행으로써 사유한다. 행사유(行思惟)를 일으킨다는 것은 각과 관의 작용이니, 각과 관을 떠나서 사유의 행을 능히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오직 초선만이 일어나고, 다른 선은 일어나지 않는다.
復說:此不淨相不可耐事,於不耐事不能擧心。於不淨處,心由喜樂故,除覺觀方便。以覺觀方便力,是時修行由如臭屎,是故唯初禪起非餘禪。
또 설이 있다. 이 부정상은 가히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이 견디기 어려운 일을 마음에 떠올릴 수 없을 때에는 부정처에서 마음이 희락을 말미암는 까닭에 각과 관의 방편을 제외한다. 각과 관의 방편의 힘에 의지할 때는 악취 나는 똥과 같다는 것을 말미암아 수행한다. 이러한 까닭에 오직 초선만이 일어나며, 다른 선은 일어나지 않는다.
問:於不耐事云何起喜樂?
答:不耐事非因,爲起喜樂。復次善斷蓋熱故、以脩心自在故,起喜樂行。餘如初廣說胮脹相已竟。
【문】견디기 어려운 일에서 어떻게 희락을 일으키는가?
【답】견디기 어려운 일은 희락을 일으키는 원인이 아니다. 또 개(蓋)의 열기를 잘 끊는 까닭에, 마음을 닦음으로써 자재한 까닭에 희락의 행을 일으킨다. 나머지는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방창상을 마친다.]
問:云何靑淤相?何脩?何相?何味?何處?何功德?云何取其相?
答:靑淤者,或死一宿,或二三宿,成靑淤相。如靑所染色隨生,此謂靑淤相。彼靑淤,是謂靑相。以正智知,此謂靑淤相,心住不亂此謂修,受持靑相爲相,厭爲味,作意不耐爲處,等胮脹相功德。脩其相者,如初廣說靑淤相已竟。
【문】무엇이 청어상(靑瘀相)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답】청어란 죽은 뒤 하룻밤을 지내거나, 2ㆍ3일을 지낸 뒤 청어상이 성립한다. 푸르게 물든 것과 같은 색이 따라서 생기는데 이것을 청어상이라 한다. 그 청어를 청상(靑相)이라 하고, 올바른 지혜로써 아는 것을 청어상이라 한다.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을 닦음이라 하고, 청상을 수지하는 것을 상으로 삼고, 그것을 싫어하는 것이 맛이며, 견뎌내지 못한다고 작의하는 것이 처이다. 공덕은 방창상과 같다. 그 상을 닦는 방법은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청어상을 마친다.]
問。云何潰爛相?何脩?何相?何味?何處?何功德?云何取相?
答:潰爛者,或死二三宿潰爛膿出,猶如灌酪,身成潰爛,此謂潰爛。於潰爛相以正智知,是謂潰爛相。心住不亂此謂脩,受持潰爛爲相,厭爲味,作意不耐爲處,等胮脹相功德。取相如初廣說潰爛相可知,潰爛相已竟。
【문】무엇이 궤란상(潰爛相)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답】궤란이란 혹은 죽어서 2ㆍ3일 지나면 허물어지고 문드러져 마치 우유죽을 붓은 것처럼 고름이 흘러나온다. 몸이 허물어지고 문드러지는 것을 궤란이라 한다. 이런 궤란의 상을 올바른 지혜로써 아는 것을 궤란상이라 한다.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을 닦음이라 한다. 궤란을 수지하는 것을 상으로 삼고, 그것을 싫어하는 것이 맛이며, 견뎌내지 못한다고 작의하는 것이 처이다. 공덕은 방창상과 같고, 그 상을 취하는 방법은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궤란상을 알아야 하며, 궤란상을 마친다.]
問:云何斬斫離散相?何脩?何相?何味?何處?何功德?云何取其相?
答:斬斫離散者,或以刀劍斬斫身體離散。復說所擲死屍,此謂斬斫離散。於斬斫離散是正智知,此謂斬斫離散想。心住不亂此謂脩,斬斫離散想爲相,厭爲味,作意不淨爲處,等胮脹相功德。
【문】무엇이 참작이산상(斬斫離散相)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답】참작이산(斬斫離散)이란 칼로 신체를 잘라 흩트리는 것이다. 또 내던져진 시신이라고도 한다. 이것을 참작이산이라 한다. 이 참작이산을 올바른 지혜로써 아는 것을 참작이산상(斬斫離散想)이라 하고,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을 닦음이라 한다. 참작이산상을 그 상으로 삼고, 그것을 싫어하는 것이 맛이며, 깨끗하지 못하다고 작의하는 것이 처이다. 공덕은 방창상과 같다.
問:云何取其相?
答:於兩耳二指作片片想、作斬斫離散想,如是取相。於一二上取其空相,餘如初廣說斬斫離散相已竟。
【문】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답】양쪽 귀에 두 손가락을 대어 편편상(片片想)을 만들고, 참작이산상을 만든다. 이와 같이 상을 취하고, 일이(一二) 상에서 그 공상(空相)을 취한다. 나머지는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참작이산상을 마친다.]
問:云何食噉想?何脩?何相?何味?何處?何功德?云何取其相?
答:食噉者,或烏鵲鴟梟雕鷲、猪狗狐狼虎豹食噉死屍,此謂食噉。於彼食噉是相。以正智知,此謂食噉想。心住不亂此謂脩,食噉想爲相,厭爲味,作意不淨爲處,等胮脹想功德。餘如初廣說食噉相已竟。
【문】무엇이 식담상(食噉想)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답】식담이란 까마귀ㆍ까치ㆍ올빼미ㆍ독수리ㆍ돼지ㆍ개ㆍ여우ㆍ늑대ㆍ호랑이ㆍ표범 등이 뜯어먹은 시신이다. 이것을 식담이라 한다. 그 식담에서 그 상을 올바른 지혜로써 아는 것, 이것을 식담상(食噉想)이라 한다.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을 닦음이라 하고, 식담상을 그 상으로 삼고, 그것을 싫어하는 것이 맛이며, 깨끗하지 못하다고 작의하는 것이 처이다. 공덕은 방창상과 같다. 나머지는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식담상을 마친다.]
問:云何棄擲想?何脩?何相?何味?何處?何功德?云何取其相?
答:棄擲者,於處處方散擲手足,此謂棄擲。於棄擲想,是正智知,此謂棄擲想。心住不亂此謂脩,受持棄擲想,爲想厭,爲味作意不淨爲處,胮脹想等功德。
【문】무엇이 기척상(棄擲想)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답】기척이란 곳곳에 그 수족이 흩어져 내던져진 것이다. 이것을 기척이라 한다. 기척상에서 올바른 지혜로써 아는 것, 이것을 기척상이라 한다.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 이것을 닦음이라 한다. 기척상을 수지하는 것을 그 상(想)으로 삼고, 그것을 싫어하는 것이 맛이며, 깨끗하지 못하다고 작의하는 것이 처이다. 공덕은 방창상과 같다.
云何取其相者,一切身分聚在一處,安諸分節相離二寸,安已作棄擲想取相,餘如初廣說棄擲想已竟。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모든 신체부위를 한 곳에 모아 각 부분을 맞춘 뒤 2촌정도 서로 떨어뜨려 놓은 다음에 기척상으로써 그 상을 취한다. 나머지는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기척상을 마친다.]
問:云何殺戮棄擲想?何脩?何相?何味?何處?何功德?云何取其相?
答:被殺棄擲者,或以刀杖、或以弓箭、於處處斬斫殺戮死屍,此謂殺戮棄擲。於殺戮棄擲,是想是正智知,此謂殺戮棄擲想。心住不亂此謂修,受持殺戮棄擲想爲相,厭爲味,作意不淨爲處,等胮脹功德。云何取其相者,如初廣說殺戮棄擲想已竟。
【문】무엇이 살륙기척상(殺戮棄擲想)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답】피살되어 버려진 것이란 칼이나 몽둥이, 혹은 화살로 곳곳을 자르고 토막 내어 죽인 시신을 말한다. 이것을 살륙기척이라 한다. 살육을 당해 버려진 이 상을 올바른 지혜로써 아는 것, 이것을 살륙기척상이라 한다.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 이것을 닦음이라 한다. 살륙기척상을 수지하는 것을 그 상으로 삼고, 그것을 싫어하는 것이 맛이며, 깨끗하지 못하다고 작의하는 것이 처이다. 공덕은 방창상과 같다.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는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살륙기척상을 마친다.]
問:云何血塗染想?何脩?何相?何味?何處何功德?云何取其相?
答:血塗染者,或斬截手足形分,出血塗身,此謂血塗染。於血塗染想,是正智知,此謂血塗染想。心住不亂此謂修,受持血塗染想爲相,厭爲味,作意不淨爲處,等胮脹想功德。云何取其相者,如初廣說血塗染相已竟。
【문】무엇이 혈도염상(血塗染想)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답】혈도염이란 수족이나 몸뚱이를 잘라 피가 흘러 온 몸에 범벅인 것, 이것을 혈도염이라 한다. 혈도염의 상(相)을 올바른 지혜로써 아는 것, 이것을 혈도염상이라 한다.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 이것을 닦음이라 한다. 혈도염상을 수지하는 것을 그 상으로 삼고, 그것을 싫어하는 것이 맛이며, 깨끗하지 못하다고 작의하는 것이 처이다. 공덕은 방창상과 같다.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는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혈도염상을 마친다.]
問:云何虫臭想?何脩?何相?何味?何處?何功德?云何取其相?
答:虫臭者,諸虫生滿其身,猶如白珠純是虫聚,此謂虫臭。於虫臭想,以正智知,此謂虫臭想。心住不亂此謂脩,受持虫臭想爲相,厭爲味,作意不淨爲處,等胮脹想功德。云何取其相者,如初廣說虫臭想已竟。
【문】무엇이 충취상(蟲臭想)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답】충취란 갖가지 벌레가 생겨 그 몸에 가득한 것이 마치 흰 구슬과 같고, 온전히 그것이 벌레무더기인 것이다. 이것을 충취라고 한다. 충취의 상을 올바른 지혜로 아는 것, 이것을 충취상이라 한다.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 이것을 닦음이라 한다. 충취상을 수지하는 것을 그 상으로 삼고, 그것을 싫어하는 것이 맛이며, 깨끗하지 못하다고 작의하는 것이 처이다. 공덕은 방창상과 같다.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는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충취상을 마친다.]
問:云何骨想?何脩?何相?何味?何處?何功德?云何取其相?
答:骨者,謂鉤鎖相連、或肉血筋脈所縛、或無血肉但有筋纏、或無肉血,此謂骨。於此骨想,以正智知,此謂骨想。心住不亂此謂脩,受持骨想爲相,厭爲味,作意不淨爲處,等胮脹想功德。云何取其相者,如初廣說骨想已竟。
【문】무엇이 골상(骨想)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답】골(骨)이란 갈고리와 쇠사슬이 서로 이어진 것처럼 살과 피와 힘줄과 혈맥이 서로 엉켜있거나, 피와 살은 없고 힘줄만 남아 엉켜있거나, 혹은 피와 살이 전혀 없는 것, 이것을 골이라 한다. 이 골상을 올바른 지혜로써 아는 것, 이것을 골상이라 한다.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 이것을 닦음이라 한다. 골상을 수지하는 것을 그 상으로 삼고, 그것을 싫어하는 것이 맛이며, 깨끗하지 못하다고 작의하는 것이 처이다. 공덕은 방창상과 같다.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는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골상을 마친다.]
問:於不淨處,云何散句?
答:初坐禪人有重煩惱,於不種類不應取相。不種類者,如男女身。若不淨業人,不淨相不應作意。何故?常觀事故不成厭。於畜生身,不起淨想。以一骨起起相自在,於骨取亦復如是。若不淨相以色起,由一切入當觀。若以空起以界當觀者,以不淨起以不淨當觀。
【문】부정처에서 무엇이 산구(散句)인가?
【답】처음 좌선하는 사람은 무거운 번뇌를 가지고 있으므로 종류가 아닌 것[不種類]에서 상을 취해서는 안 된다. 종류가 아닌 것이란 남녀의 몸과 같다. 만약 부정업을 지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부정상을 작의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항상 사(事)를 관하는 까닭에 싫어함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축생의 몸에서 깨끗한 상을 일으키지 않고, 하나의 골로써 상을 일으키며, 자재하게 그 골을 취하는 것 또한 그와 같다. 만약 부정상을 색(色)으로써 일으켰다면 일체입을 말미암아 마땅히 관해야 하고, 만약 공(空)으로써 일으켰다면 계(界)로써 마땅히 관해야 하며, 만약 부정으로써 일으켰다면 부정으로써 마땅히 관해야 한다.
問:何故十不淨不多不少?
答:身失有十種故。復由十人故成十想:欲人當修胮脹想,色愛欲人當修靑淤想,如淨欲人當修壞爛想,餘亦可知。復次不淨相不可得故、一切不淨想欲對治故。若欲行人是其所得,彼當取相,是故說一切不淨爲十種不淨想。
【문】어떠한 까닭에 열 가지 부정뿐이고, 더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가?
【답】몸을 잃는 데에 열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또 10인에 의하는 까닭에 10상(想)이 이루어진다. 욕인(欲人)은 마땅히 방창상을 닦아야 한다. 색애욕인(色愛欲人)은 마땅히 청어상을 닦아야 한다. 정욕인(淨欲人)은 마땅히 괴란상(壞爛想)을 닦아야 한다. 나머지 또한 알아야 한다. 또 부정상을 얻을 수 없는 까닭에, 일체 부정상은 욕을 대치하는 까닭에, 만약 욕을 행하는 자가 이것을 얻으려면 그는 마땅히 상을 취해야 한다. 이러한 까닭에 일체 부정을 설하여 10종 부정상이라 한다.
問:何故不令增長?
答:若人樂厭欲,令起自性身想。何故:若有自性身想,於想速得厭,彼分故。已令增長不淨想,是其身相得除。已除自身想,不速得厭,是故不應令增長。又說若得無欲,爲修大心成令增長。如阿毘曇說:處離欲等,初禪正受住胮脹,及起無量事。如大德摨狗父說偈:
【문】어떠한 까닭에 증장시키지 않는가?
【답】만약 사람이 욕을 싫어하는 것을 좋아하면, 자성신(自性身)의 상을 일으키게 된다. 왜냐하면, 만약 자성신의 상이 있으면 그 상에서 싫어하는 피분(彼分)을 속히 얻기 때문이다. 이미 부정상을 증장시켰다면 그 신상은 없어지게 된다. 이미 자신의 상을 없앴다면 속히 그 싫어함을 얻지는 못한다. 이러한 까닭에 증장시켜서는 안 된다. 또한 만약 무욕(無欲)을 얻으면 대심(大心)을 닦기 위하여 증장시키도록 한다. 아비담에서 “이욕(離欲) 등에 처하여 초선을 정수하고 방창에 머물며 나아가 무량사(無量事)를 일으킨다”라고 설한 것과 같고, 대덕 내구부(摨狗父)가 게송으로 설한 바와 같다.
比丘佛家財,於怖畏林處,旣已修骨想,普令滿此地;
我知彼比丘,速當斷欲染。十不淨已竟。
불가재(佛家財) 비구가 포외림(怖畏林)에 머물러
이미 골상을 닦아 두루 이 땅에 가득케 한다.
나는 그 비구가 욕염을 속히 끊으리라는 것을 안다.[10부정처를 마친다.]
問:云何念佛?何脩?何相?何味?何處?何功德?云何脩行?
答:佛者,世尊自然無師,於未聞法正覺正諦,能知一切得力自在,此謂爲佛。
【문】무엇이 염불(念佛)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수행하는가?
【답】불이란 세존으로서 자연히 스승 없이 일찍이 듣지 못한 법에서 올바른 진리[正諦]를 바로 깨닫고, 능히 일체를 알아 힘의 자재를 얻은 분이다. 이것을 불[부처님]이라 한다.
念佛世尊正遍知道菩提功德,念、隨念、念持、念不忘、念根、念力、正念,此謂念佛。
불ㆍ세존ㆍ정변지(正遍知)ㆍ도(道)ㆍ보리공덕을 염하는데 그 염이 수념(隨念)이고, 염을 수지하고, 염을 망각하지 않고, 근(根)을 염하고, 역(力)을 염하는 정념(正念), 이것을 염불이라 한다.
心住不亂此謂修,令起佛功德爲相,恭敬爲味,增長信爲處。若修行念佛,成得十八功德:信增長、念增長、慧增長、恭敬增長、功德增長、多歡喜、堪任苦行、離於怖畏、於受惡法得生慚愧、常與師共住、心樂佛地、行向善趣、最後醍醐。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 이것을 닦음이라 한다. 부처님의 공덕을 일으키게 하는 것을 상으로 삼고, 공경을 그 맛으로 삼고, 믿음을 증장시키는 것을 처로 한다. 만약 염불을 수행하면 18공덕을 얻게 되고, 신(信)이 증장하고, 염(念)이 증장하고, 혜(慧)가 증장하고, 공경이 증장하고, 공덕이 증장하며, 환희가 많아지고, 고행을 능히 감당하고, 두려움을 벗어나고, 악법을 받는 것에 대해 참괴(慚愧)를 일으키고, 항상 스승과 함께 머물고, 마음이 불지(佛地)의 행을 즐기고, 선취로 나아가 최후에 제호에 이른다.
如說脩多羅涅底里句。若人欲念佛、其可恭敬如佛像處。
『수다라열저리구(修多羅底里句)』에서 “만약 사람이 염불을 바란다면, 그 불상처(佛像處)에서와 같이 공경해야 할 것이다”라고 설하는 것과 같다.
云何脩行?初坐禪人,往寂寂處攝心不亂。以不亂心念如來,世尊、應供、正遍知、明行足、善逝、世閒解、無上士、調御丈夫、天人師、佛世尊。於是彼者到一切功德彼岸。
어떻게 수행하는가. 처음 좌선하는 사람은 적적처에 이르러 마음을 거두어 어지럽지 않게 하고, 어지럽지 않은 마음으로 여래ㆍ세존ㆍ응공ㆍ정변지ㆍ명행족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조어장부ㆍ천인사ㆍ불ㆍ세존을 염한다. 여기에서 그는 일체공덕의 피안에 도달한다.
世尊者,得世稱譽故名世尊、復得妙法故名世尊、復得供養故名世尊、得福具足故名世尊、道法之主故名世尊,以是因故得名世尊。
세존(世尊)이란 세간의 명예를 얻는 까닭에 세존이라 한다. 또 묘법을 얻는 까닭에 세존이라 한다. 또 공양을 얻는 까닭에 세존이라 한다. 또 복을 구족하게 얻는 까닭에 세존이라 한다. 도법(道法)의 주인인 까닭에 세존이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세존이란 이름을 얻는다.
以彼因故受供養,名阿羅漢。殺煩惱怨,名阿羅漢。折生死輪輻,名阿羅漢。
그런 이유 때문에 공양을 받으므로 아라한이라 하고, 번뇌라는 원수를 죽이는 까닭에 아라한이라 하고, 생사라고 하는 윤회의 바큇살을 꺾는 까닭에 아라한이라 한다.
正遍知者,以一切行正知一切諸法,名正遍覺。復殺無明,名正遍覺。以獨覺無上菩提,名正遍覺。
정변지(正遍知)란 일체 행으로써 일체 제법을 올바로 아는 까닭에 정변각이라 한다. 또 무명을 죽이는 까닭에 정변각이라 한다. 홀로 무상보리를 깨닫는 까닭에 정변각이라 한다.
明行足者,明者三明:宿命智明、衆生生死智明、漏盡智明。
명행족(明行足)에서 명이란 3명이니, 숙명지명(宿命智明)ㆍ중생생사지명(衆生生死智命)ㆍ누진지명(漏盡智明)이다.
世尊以宿命智明,斷殺過去無明;以衆生生死智明,斷殺未來無明;以漏盡智明,斷殺現在無明。已斷殺過去無明故,以一切行一切過去法,世尊應念卽現;已斷殺未來無明故,以一切行一切未來法,世尊應念卽現;已斷殺現在無明故,以一切行一切現在法,世尊應念卽現。
세존은 숙명지명으로써 과거무명을 끊어 없애고, 중생생사지명으로써 미래의 무명을 끊어 없애며, 누진지명으로써 현재의 무명을 끊어 없앤다. 이미 과거의 무명을 끊어 없앤 까닭에 일체 행으로써 일체 과거법이 세존이 마땅히 염하는 대로 곧 나타난다. 이미 미래의 무명을 끊어 없앤 까닭에 일체 행으로써 일체의 미래법이 세존이 마땅히 염하는 대로 곧 나타난다. 이미 현재의 무명을 끊어 없앤 까닭에 일체 행으로써 일체 현재법이 세존이 마땅히 염하는 대로 나타난다.
行者,戒定足具。戒者,謂一切善法處,故言明行。足者,謂一切神通處,故名明行足。具者,謂一切定。
행이란 계정(戒定)이 구족한 것이다. 계란 일체 선법의 처이다. 따라서 명행(明行)이라 한다. 족이란 일체 신통의 처인 까닭에 명행족이라 한다. 구(具)란 일체 정을 말한다.
於是世尊以一切智、以三明、以行得大慈悲,以作世閒饒益。明得自在,以知處故,以起論道,無人能勝。滅諸煩惱。
여기에서 세존은 일체지로써, 3명으로써, 행으로써, 대자비를 얻고, 세간을 요익케 함으로써 밝게 자재를 얻고, 처를 아는 까닭에 논도(論道)를 일으킴으로써 그를 이길만한 자가 없고 모든 번뇌를 소멸한다.
以淸淨正行,以明具足成世閒眼,現饒益不饒益故。以行具足成世閒依,作救怖畏。以明解脫,於第一義已得通達。以行成濟渡,作世閒義,於一切事自然無師,所行平等得無上寂寂。以明行足世尊成就,此謂明行具足。
청정한 정행(正行)으로써 명(明)을 구족하여 세간의 눈이 되고, 요익과 불요익을 밝히는 까닭에 이로써 행(行)을 구족하여 세간의 의지처가 된다. 두려움에서 구해내어 명으로써 해탈하고, 제일의에 대해 이미 통달을 얻어 행으로써 제도하며, 세간의 뜻을 이루어 일체의 사(事)에서 자연스럽고 스승이 없으며, 행하는 바가 평등하고, 무상의 적적을 얻고, 명행족으로써 세존이 성취된다. 이것을 명행구족이라 한다.
善逝者,到善路故,名曰善逝。不復更來到。於醍醐界,無爲涅槃,故名善逝。復說法不顚倒,故名善逝。復說法不僻,故名善逝。復說法無過患,故名善逝。復說法不多不少,故名善逝。
선서(善逝)란 선로(善路)에 이르는 까닭에 선서라 한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제호의 세계에서 무위열반하는 까닭에 선서라 한다. 또 설한 법에 전도됨이 없는 까닭에 선서라 한다. 또 설한 법이 치우치지 않는 까닭에 선서라 한다. 또 설한 법에 과환이 없는 까닭에 선서라 한다. 또 설한 법이 많지도 적지도 않는 까닭에 선서라 한다.
世閒解者,世閒有二種,謂衆生世閒、行世閒。
세간해(世間解)에서 세간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즉 중생세간(衆生世間)과 행세간(行世間)이다.
世尊以一切行,知衆生世閒,以知衆生種種欲樂。以根差別,以宿命、以天眼、以從去來、以和合、以成就、以種種可化、以種種堪不堪、以種種生、以種種趣、以種種地、以種種業、以種種煩惱、以種種果報、以種種善惡、以種種縛解,以如是等行,世尊悉知衆生世閒。
세존께서는 일체의 행으로써 중생세간을 안다. 중생의 갖가지 욕락을 앎으로써, 근의 차별로써, 숙명으로써, 천안으로써, 오고 감에 따라서, 화합으로써, 성취로써, 갖가지 교화해야 할 것으로써, 갖가지 견딤과 견디지 못함으로써, 갖가지 생으로써, 갖가지 취(趣)로써, 갖가지 지(地)로써, 갖가지 업으로써, 갖가지 번뇌로써, 갖가지 과보로써, 갖가지 선악으로써, 갖가지 얽힘[縛]과 풀림[解]으로써, 이와 같은 행으로써 세존은 중생세간을 남김없이 안다.
復說行世閒者,世尊亦知。以一切業,亦知諸行、以定相、以隨其自相因緣、善不善無記、以種種陰、以種種界、以種種入、以智明了、以無常苦無我、以生不生,如是等行,世尊悉知世閒諸行,此謂世閒解。
또 행세간을 설명하자면, 세존은 또한 일체업을 알고, 또한 모든 행을 안다. 정상(定相)으로써, 그 자상을 따르는 인연의 선ㆍ불선ㆍ무기로써, 갖가지 음(陰)으로써, 갖가지 계(界)로써, 갖가지 입(入)으로써, 지(智)의 명료함으로써, 무상ㆍ고ㆍ무아로써, 생ㆍ불생으로써, 이와 같은 행으로써 세존은 세간의 모든 행을 남김없이 안다. 이것을 세간해라고 한다.
無上者,世無有上,此謂無上。復次無人與等,復次最勝無比,餘不能過,故名無上。
무상(無上)이란 세상에 더 이상 위가 없는 것, 이것을 무상이라 한다. 또 그와 동등한 인간이 없고, 가장 수승해 견줄 자가 없고, 다른 누구도 그를 능가할 수 없는 까닭에 무상이라 한다.
調御丈夫者,有三種人,或聞法卽悟,或說因緣,或說宿命。世尊御八解脫道,調伏衆生故,名調御丈夫。
조어장부(調御丈夫)란 세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 혹은 법을 듣고 곧 깨닫고, 혹은 인연을 설하며, 혹은 숙명을 설하는 사람이다. 세존은 8해탈도를 잘 통어해 중생을 조복하는 까닭에 조어장부라 한다.
天人師者,世尊能度天人,從生老死怖畏園林,故名天人師。復次敎誡見思惟道,名天人師。
천인사(天人師)란 세존은 능히 하늘과 인간을 생ㆍ노ㆍ사의 포외원림(怖畏園林)으로부터 제도하는 까닭에 천인사라 한다. 또 견도(見道)와 사유도(思惟道)를 가르치는 까닭에 천인사라 한다.
如是以此門、以此行,當念如來。復次如本師說:以四種行修念世尊,本昔因緣、以起自身、以得勝法、以作世閒饒益。
이와 같이 이 문(門)과 이 행(行)으로써 마땅히 여래를 염해야 한다. 또 본사(本師)께서 설하신 바와 같이 네 가지 행으로써 세존에 대한 염을 닦아야 한다. 즉 과거 본래의 인연, 자신을 일으킴, 수승법을 얻음, 세간을 요익케 함이라는 네 가지 행으로써 세존을 염해야 한다.
從初所願乃至最後,生於此中閒久遠之時,二十阿僧祇劫。一百千億觀凡夫根,念根所初,慈哀世閒:我已得脫,當令彼脫。我已得調,當令彼調。我已得安,當令彼安。我已入涅槃,當令彼得入涅槃。施、戒、出、忍、諦、受持、慈、捨、精進、智慧,皆令滿足。
“최초의 소원으로부터 최후 생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의 아주 오랜 시간인 20아승지겁과 1백천억 세계에서 범부의 근을 관하고 근소(根所)를 염하고는 처음으로 세간을 자애(慈哀)하여 ‘나는 이미 해탈을 얻었다. 마땅히 그들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하리라. 나는 이미 조어를 얻었다. 마땅히 그들로 하여금 조어를 얻게 하리라. 나는 이미 편안함을 얻었다. 마땅히 그들로 하여금 편안함을 얻게 하리라. 나는 이미 열반에 들었다. 마땅히 그들로 하여금 열반에 들게 하리라. 시(施)ㆍ계(戒)ㆍ출(出)ㆍ인(忍)ㆍ제(諦)ㆍ수지(受持)ㆍ자(慈)ㆍ사(捨)ㆍ정진(精進)ㆍ혜(慧) 모두를 만족케 하리라’고 하셨다.”
爲得菩提。世尊爲菩薩時,說本生因緣。
보리를 얻게 하기 위해 세존이 보살이었을 때의 본생인연을 설하겠다.
作兔子身,常行布施,當念可護生;戒摩瞿頻陁生,當念出離生、忍辱生,當念忍普明生,當念實語、當念噁蹇生,當念受持。
토끼 새끼의 몸이 되어 항상 보시를 행했던 것을 염해야 하며, 가호(可護)의 생애에서 계(戒)를 염해야 하며, 마하구빈타(摩訶瞿頻陀)의 생애에서 마땅히 출리생(出離生)을 염해야 하며, 인욕(忍辱)의 생애에서 마땅히 인(忍)을 염해야 하며, 보명(普明)의 생애에서 마땅히 실어(實語)를 염해야 하며, 오건(噁蹇)의 생애에서 수지(受持)를 염해야 한다.
當念帝釋慈悲、當念毛豎捨、當念商主正眞、當念麋生、當念長壽生、逐父語當念六牙白象恭敬仙人、當念白馬生往羅剎國渡諸衆生、當念鹿生護彼壽命、捨自壽命當念猴生令得解脫所屬大苦。
제석(帝釋)의 자비를 염해야 하며, 모수(毛竪)의 사(捨)를 염해야 하며, 상주(商主)의 정진(正眞)을 염해야 하며, 사슴의 생애를 염해야 하며, 장수(長壽)의 생애에서 부왕의 말씀을 따랐던 것을 염해야 하며, 어금니가 여섯인 흰 코끼리로 태어나 선인(仙人)을 공경했던 것을 염해야 하며, 백마(白馬)로 태어나 나찰국(羅刹國)에 이르러 모든 중생을 제도했던 것을 염해야 하며, 사슴으로 태어나 다른 사슴들의 수명을 보호하려고 자신의 수명을 버렸던 것을 염해야 하며, 원숭이로 태어나 주어진 큰 고통에서 해탈시켰던 것을 염해야 한다.
復次當念猴生,見人落坑以慈心拔出,設樹根菓以爲供養。彼人樂肉以破我頭,以慈悲說法語其善道。如是以衆願門,當念世尊本生功德。
또 원숭이로 태어나 사람이 구덩이에 떨어진 것을 보고는 자비심으로 구출하고, 나무뿌리와 과일을 공양하고, 그 사람이 고기를 좋아해 자신의 머리를 깨뜨리려 하자 자비로 법을 설해 그 선도(善道)를 말했던 것을 염해야 한다. 이와 같이 중원문(衆願門)으로써 세존의 본생공덕을 염해야 한다.
云何當念世尊自拔身功德?世尊有如是等本生具足,爲年少時斷一切居止著、斷兒婦父母親友著,以捨難捨,獨住空閑無所有處。
세존께서 스스로 자신을 구출한 공덕을 염해야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세존은 이와 같은 본생의 구족을 갖추고 있어 어린 나이에 모든 거처에 대한 집착을 끊고, 처자ㆍ부모ㆍ친구에 대한 집착을 끊고, 버리기 어려운 것을 버리고, 홀로 텅 비고 한가로운 무소유처에 머무셨다.
欲求無爲泥洹寂滅,於摩伽陁國渡尼連禪河,坐菩提樹,降伏魔王及諸鬼兵,於初夜時自憶宿命,於中夜分脩得天眼,於後夜中知苦斷集,得證醍醐界。脩行八正道,分作證漏盡,得菩提覺。從於世閒拔出自身,住第一淸淨漏盡之地。如是以衆行門,當念世尊自拔身功德。
그리고 무위인 니원(泥洹)의 적멸을 구하고자 마가다국에서 니련선하를 건너 보리수에 앉아 마왕과 모든 귀신군대를 항복시키고는, 초야 때에는 스스로 숙명을 기억해 내고, 중야 때에는 천안을 얻었으며, 후야 때에는 고(苦)를 알고 집(集)을 끊어 제호의 세계를 증득하고, 8정도분(正道分)을 닦고 누진을 깨달아 보리각을 얻어 세간으로부터 자신을 구출하여 제일 청정한 누진의 땅에 머물렀다. 이와 같이 중행문(衆行門)으로써 세존께서 스스로 자신을 구출한 공덕을 염해야 한다.
云何當念世尊得勝法功德?如是世尊有解脫、心解脫,以如來十力、以十四佛智慧、以十八佛法,已與不一禪法成就,到自在彼岸當念。
세존께서 얻은 수승한 법의 공덕을 염해야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와 같이 세존에게는 해탈과 심해탈이 있어 여래의 10력으로써, 열네 가지 부처님의 지혜로써, 열여덟 가지 불법으로써, 이미 동일하지 않은[不一] 선법(禪法)을 성취하여 자재의 피안에 도달하셨다는 것을 염해야 한다.
云何世尊成就十力?如來知是處非處,如實而知:如來知過去未來現在善業因緣,以戒以因,若果報等,如實而知;如來知至一切處具足,如實而知;如來知不以一戒、種種戒世閒,如實而知;如來知衆生種種欲樂,如實而知;如來知衆生種種諸根,如實而知;如來知禪解脫定正受有煩惱無煩惱,如實而知;如來知宿命,如實而知;如來知衆生生死,如實而知;如來知漏盡,如實而知。以此十力,世尊成就。
세존께서 성취한 10력이란 무엇인가. 여래는 시처(是處)와 비처(非處)를 아는데 여실히 알며, 여래는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선업인연을 알며, 계(戒)와 인(因)으로써 과보 등을 여실히 알며, 여래는 일체처에 이르러 구족함을 아는데 여실히 알며, 여래는 하나의 계로써가 아니라 갖가지 계로써 세간을 아는데 여실히 알며, 여래는 중생의 갖가지 욕락을 아는데 여실히 알며, 여래는 중생의 갖가지 모든 근을 아는데 여실히 알며, 여래는 선해탈(禪解脫)ㆍ정정수(定正受)ㆍ유번뇌(有煩惱)ㆍ무번뇌(無煩惱)를 아는데 여실히 알며, 여래는 숙명을 아는데 여실히 알며, 여래는 중생의 생사를 아는데 여실히 알며, 여래는 누진을 아는데 여실히 안다. 세존은 이 10력을 성취하셨다.
云何世尊成就十四佛智慧?謂苦智、集智、滅智、道智、義辯智、法辯智、辭辯智、樂說辯智、諸根智,衆生欲樂煩惱使智、雙變智、大慈悲定智、一切智、不障碍智。以此十四智,世尊成就。
무엇이 세존께서 성취한 열네 가지 부처님의 지혜인가. 소위 고지(苦智)ㆍ집지(集智)ㆍ멸지(滅智)ㆍ도지(道智)ㆍ의변지(義辯智)ㆍ법변지(法辯智)ㆍ사변지(辭辯智)ㆍ요설변지(樂說辯智)ㆍ제근지(諸根智)ㆍ중생욕락번뇌사지(衆生欲樂煩惱使智)ㆍ쌍변지(雙變智)ㆍ대자비정지(大慈悲定智)ㆍ일체지(一切智)ㆍ부장애지(不障碍智)이다. 세존은 이 열네 가지 지혜를 성취하셨다.
云何世尊成就十八法?於過去佛智不障碍,未來佛智不障碍,現在佛智不障碍,隨於佛智遍起身業,隨於佛智遍起口業,隨於佛智遍起意業。以此六法世尊成就,欲無退、精進無退、念無退、定無退、慧無退、解脫無退。以此十二法,世尊成就,無可疑事、無誣師事、無不分明、無有急事、無隱覆處、無不觀捨。
무엇이 세존께서 성취한 18법인가. 과거에 부처님의 지혜는 장애가 없으며, 미래에 부처님의 지혜는 장애가 없으며, 현재에 부처님의 지혜는 장애가 없으며, 그 부처님의 지혜에 따라서 두루 신업을 일으키며, 그 부처님의 지혜에 따라서 두루 구업을 일으키며, 그 부처님 지혜에 따라서 두루 의업을 일으킨다. 세존께서는 이 6법을 성취하셨다. 욕무퇴(欲無退)ㆍ정진무퇴(精進無退)ㆍ염무퇴(念無退)ㆍ정무퇴(定無退)ㆍ혜무퇴(慧無退)ㆍ해탈무퇴(解脫無退), 이상의 12법을 세존은 성취하셨다. 의심받을 만한 일이 없고, 나쁜 스승의 일이 없고, 분명치 않은 것이 없고, 급하게 하는 일이 없고, 감추는 것이 없고, 관하지 않고 버리는 것이 없다.
無可疑事者,無有威儀爲於狡獪。誣師事者,無急速威儀。無不分明者,以知無不觸。無急事者,無威儀以急事。無隱覆者,心行無有非不憶智。無不觀捨者,無有不知捨。以此十八佛法,世尊成就。
의심받을 만한 일이 없이 없다는 것은 위의에 있어서 교활해 보이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나쁜 스승의 일이 없다는 것은 급히 위의를 나타내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분명치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은 앎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급히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은 위의를 급하게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감추는 바가 없다는 것은 마음의 행위에 있어서 기억하지 못하는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관하지 않고 버리는 것이 없다는 것은 모르고 버리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세존은 이 열여덟 가지 부처님 법을 성취하셨다.
復次世尊以四無畏、以四念處、以四正勤、以四如意足、以五根、以五力、以六神通、以七菩提分、以八聖道分、以八除入、以八解脫、以九次第定以、十聖居止、以十漏盡力、以餘不一善法,世尊成就到自在彼岸。如是以此門,以此行,當念世尊得勝法功德。
또 세존은 4무외ㆍ4념처ㆍ4정근ㆍ4여의족ㆍ5근ㆍ5력ㆍ6신통ㆍ7보리분ㆍ8성도분ㆍ8제입ㆍ8해탈ㆍ9차제정ㆍ10성거지(聖居止)ㆍ10누진력으로써, 나머지 동일하지 않은 선법(善法)으로써, 세존은 자재의 피안에 도달하는 것을 성취하셨다. 이와 같이 이 문과 이 행으로써, 세존께서 얻은 수승한 법의 공덕을 염해야 한다.
云何當念世尊作饒益世閒功德?世尊成就一切行,到一切功德彼岸,爲慈悲衆生所轉法輪,世閒所不能轉。以密護無內外,開醍醐門。已作無量天人於沙門果,無量衆生得功德分,能令功德具足。
세존께서 세간을 요익케 한 공덕을 염해야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세존께서 모든 행을 성취하고 모든 공덕의 피안에 도달하여 자비로 중생을 위해 굴리신 법륜은 세간이 굴릴 수 없는 것이었다. 엄밀히 보호함으로써 내외가 없는 제호의 문을 열어 이미 한량없는 천인을 만드셨고, 사문과(沙門果)에서 한량없는 중생이 공덕분을 얻어 능히 공덕을 구족하게 하셨다.
以三種變,身變、說變、敎變,令世閒信。已伏邪見諸相呪師、已覆惡道、已開善趣、已往天上得解脫果、已安聲聞住聲聞法、已制諸戒、已說波羅提木叉、已得勝利養、得佛勝法、已得自在遍滿世閒,一切衆生恭敬尊重,乃至天人皆悉聞知。安住不動,慈悲世閒,饒益世閒所作,世尊已作。以此門此行,當念世尊已作世閒饒益功德。
세 가지 변 즉 신변(身變)ㆍ설변(說變)ㆍ교변(敎變)으로써 세간을 믿게 하여 사견의 주술사들을 이미 조복하고, 이미 악도를 덮고, 이미 선취를 열고, 이미 천상에 이르러 해탈과를 얻게 하고, 이미 성문을 안온케 하여 성문법에 머물게 하고, 이미 모든 계를 제정하고, 이미 바라제목차를 설하고, 이미 훌륭한 이양(利養)을 얻고 부처의 승법을 얻고, 이미 자재를 얻어 세간을 두루 채웠기에 일체중생이 공경하고 존중하였으며, 나아가 천인들도 모두 듣고 알았다. 부동에 안주하여 세간을 자비로 대하고, 세간을 요익케 하며 지어야 할 바를 세존은 이미 지으셨다. 이 문과 이 행으로써, 세존께서 이미 세간을 요익케 하신 공덕을 염해야 한다.
彼坐禪人以此門此行,已此功德現念如來,其心成信。以信自在、以念自在,心常不亂。若心不亂,滅蓋禪分起,內行禪成住。
그 좌선인은 이 문과 이 행과 이 공덕으로써 현재에서 여래를 염해 그 마음에 믿음을 성취하고, 믿음이 자재하고 염이 자재함으로써 마음이 항상 어지럽지 않게 된다. 만약 마음이 어지럽지 않으면 개(蓋)를 없애 선분(禪分)이 일어나게 되고, 내행선(內行禪)이 머물게 된다.
問:何故念佛起內行非安?
答:佛功德者,於第一義深智行處。第一義事於深智行處,心不得安,以細微故。復次當念不一功德。若坐禪人憶念不一功德,心種種緣作意共起,心成不安,是相爲一切外行行處。
【문】어떠한 까닭에 부처님을 염하면 안(安)이 아닌 내행(內行)이 일어나는가?
【답】부처님의 공덕이란 제일의(第一義)의 깊은 지혜의 행처이며, 제일의는 깊은 지혜의 행처에서 작용하며[事] 마음은 안을 얻지 못한다. 미세한 까닭이다. 또 마땅히 동일하지 않은 공덕을 염해야 한다. 만약 좌선인이 동일하지 않은 공덕을 억념하면, 마음이 갖가지 작의를 반연하여 함께 일어나 마음이 불안을 이루게 된다. 이 상(相)이 일체외행(一切外行)의 행처가 된다.
問:若念不一功德,心旣不一,外行禪不當成;若專一心,外行禪成住。
答:若念如來功德,及念佛成一心,是故無過。復說以念佛,四禪亦起念佛已竟。
【문】만약 동일하지 않은 공덕을 염하면 마음이 이미 동일하지 않기에 외행선(外行禪)은 마땅히 성립되지 않는다. 만약 마음을 오로지 하나로 하면 외행선이 성취되어 머물게 되는가?
【답】만약 여래의 공덕을 염하고 불을 염하면 일심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까닭에 과실이 없다. 또 설하기를, 불을 염함으로써 4선 또한 생겨난다.[염불을 마친다.]
問:云何念法?何脩?何相?何味?何處??云何脩行?
答:法者,謂泥洹及修行至泥洹。
【문】무엇이 염법(念法)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수행하는가?
【답】법이란 니원(泥洹) 및 열반에 이르는 수행이다.
云何泥洹?滅一切行,出離一切煩惱,滅愛、無染、寂滅,此謂泥洹。
무엇이 니원인가? 모든 행을 소멸하고, 모든 번뇌로부터 벗어나고, 애(愛)를 소멸해 물듦이 없고 적멸한 것을 니원이라 한다.
云何修行至泥洹?謂四念處、四正勤、四如意足、五根、五力、七覺分、八正道分,此謂修行至泥洹。
무엇이 니원에 이르는 수행인가. 소위 4념처ㆍ4정근ㆍ4여의족ㆍ5근ㆍ5력ㆍ7각분ㆍ8정도분, 이것을 열반에 이르는 수행이라 한다.
念法出離功德乘功德,念、隨念、正念,此謂念法。彼心住不亂此謂修,起功德法爲相,擇法爲味,解義爲處,念佛功德等。
법의 출리공덕(出離功德)과 승공덕(乘功德)을 염하는데, 그 염이 수념(隨念)ㆍ정념(正念)인 것을 염법이라 한다. 그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을 닦음이라 하고, 공덕의 법을 일으키는 것이 그 상이며, 법을 간택하는 것이 그 맛이며,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그 처이다. 공덕은 염불의 공덕과 같다.
云何修者,初坐禪人入寂寂坐,攝一切心。以不亂心念法者,善說世尊法,現證無時節、來見乘無時節、來見乘相應、智慧人現證可知。
어떻게 닦는가. 처음 좌선하는 사람은 적적에 들어가 앉아 모든 마음을 거두고, 어지럽지 않은 마음으로 “법이란 세존에 의해 훌륭히 설해진[善說] 법으로 현재 증득하기에 시절이 필요 없고, 와서 보면 올라타기에 시절이 필요 없다. 와서 보면 승(乘)과 상응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현재에서 증득해 알 수 있다”라고 염한다.
善說世尊法者,離兩邊故,名爲善說。不異故,名爲善說。不謬故、三種善故,名善說。滿淸淨故,名善說。令現泥洹及修行至泥洹,故名善說。
세존에 의해 훌륭히 설해진 법이란 양극단을 떠난 까닭에 선설(善說)이라 하고, 다르지 않은 까닭에 선설이라 하고, 오류가 없고 세 가지 착함인 까닭에 선설이라 하고, 청정이 가득한 까닭에 선설이라 하고, 니원을 나타내게 하고 니원에 이르는 수행인 까닭에 선설이라 한다.
現證者,次第得道果,故名現證。作證泥洹及道果,故爲現證。無時節者,不異時得果,故名現證。
현재 증득한다는 것은 차례대로 도과를 얻는 까닭에 현재 증득한다고 한다. 니원 및 도과를 깨닫는 까닭에 현재 증득하게 된다. 시절이 필요 없다는 것은 다른 시점에 과를 얻는 것이 아닌 까닭에 현재 증득한다고 한다.
來見者,汝來我處,見我善法性堪敎他,是名來見。
와서 보라는 “너는 내가 있는 곳으로 와 나의 선법을 보라”고 한 것이니, 그 성품이 남을 가르치는 것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와서 보라”고 한다.
乘相應者,若人受降伏,成入醍醐界,名爲乘相應。向沙門果,名乘相應。
승과 상응한다는 것은 만약 사람이 받아들여 항복하면 제호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이를 승과 상응하는 것이라 하고, 사문(沙門)의 과(果)로 향하는 것을 승과 상응하는 것이라 한다.
智慧人現證可知者,若人受降伏不受他敎,起於滅智、無生智、解脫智,是名智慧現證。
지혜로운 사람은 현재에서 증득해 알 수 있다는 것은 만약 사람이 받아들여 항복하고 다른 이의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멸지(滅智)ㆍ무생지(無生智)ㆍ해탈지(解脫智)를 일으키게 된다. 이것을 지혜로우면 현재에서 증득한다고 한다.
以餘行當念法者,是眼、是智、是安樂、是醍醐乘門,是出離、是方便、是至滅、是至醍醐,無有墮落。
나머지 행으로써 마땅히 법을 염한다고 하는 것은 이것은 눈이고, 이것은 지(智)이고, 이것은 안락이고, 이것은 제호로 들어가는 수레이고 문이며, 이것은 출리이고, 이것은 방편이고, 이것은 소멸에 이르는 것이며, 이것은 제호에 이르는 것으로서 타락함이 없는 것이다.
是醍醐無爲寂寂微妙,非相師所行,是妙智人所知。濟渡彼岸,是歸依處。彼坐禪人以此門、以此行、以此功德,現念於法,其心成信。由其信念,心住不亂。以不亂心,滅於諸蓋,禪分得起,外行禪成住。餘如初廣說念法已竟。
이것은 제호로서 무위이고, 적적하고 미묘하며, 스승 흉내만 내는 자가 행하는 바가 아니다. 이것은 묘한 지혜를 가진 자가 아는 바이고, 피안으로 건너는 것이며, 이것은 귀의처이다. 그 좌선인은 이 문과 이 행과 이 공덕으로써 현재에서 그 법을 염해 그 마음에 믿음을 이루고, 그 믿음과 염에 의해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물게 되며, 어지럽지 않은 마음으로써 모든 개(蓋)를 없애 선분이 일어나게 되고, 외행선이 머물게 된다. 나머지는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염법을 마친다.]
問:云何念僧何相?何味?何處?何功德?云何爲脩?
答:僧者,聖人和合,此謂爲僧。現念僧脩行功德,彼念、隨念、正念,此謂念僧。彼念住不亂此謂脩,念起僧功德爲相,心恭敬爲味,歡喜和合功德爲處,念佛功德等。
【문】무엇이 염승(念僧)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수행하는가?
【답】승이란 성인의 화합이니, 이것을 승이라 한다. 승의 수행공덕을 현재 염하는데, 그 염이 수념(隨念)ㆍ정념(正念)인 것을 염승이라 한다. 그 염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을 닦음이라 한다. 염으로 일으킨 승의 공덕을 상으로 삼고, 마음으로 공경하는 것을 맛으로 삼고, 화합의 공덕을 기뻐하는 것이 처이며, 공덕은 염불의 공덕과 같다.
云何脩者,初坐禪人入寂寂坐,攝一切心,不亂心念想,善能脩行。世尊沙門衆隨從軟善,世尊沙門衆隨從如法,世尊聖衆隨從和合,世尊聖衆所謂四雙八輩,世尊沙門衆堪可恭敬供養、堪可合掌、無上世閒福田。
어떻게 수행하는가. 처음 좌선하는 사람은 적적에 들어가 앉아 일체의 마음을 거두고 어지럽지 않은 마음으로 “훌륭히 능히 수행한다. 세존의 사문 대중은 부드럽고 선함[軟善]을 따르며, 세존의 사문 대중은 여법(如法)을 따르며, 세존의 성스러운 대중은 화합을 따른다. 세존의 성스러운 대중이란 소위 4쌍(雙) 8배(輩)이다. 세존의 사문 대중은 가히 공경을 받고 공양을 받을 만하고, 합장을 받을 만하고, 위없는 세간의 복전이다”라고 염한다.
於是善修行世尊沙門衆者隨從善說法故,名修行隨從。爲自他饒益故,名脩行隨從。已至具足故,名脩行隨從。無怨具足故,名脩行隨從。離二邊中具足故,名脩行隨從。
여기서 훌륭히 수행하는 세존의 사문 대중은 훌륭한 설법을 따르는 까닭에 “따라서 수행한다[修行隨從]”고 한다. 자타를 요익케 하는 까닭에 따라서 수행한다고 하고, 이미 구족에 이른 까닭에 따라서 수행한다고 하고, 원수 없음을 구족한 까닭에 따라서 수행한다고 하고, 양 극단을 떠난 중도를 구족한 까닭에 따라서 수행한다고 한다.
離幻諂故,名軟善。離身口邪曲惡故,名軟善。
허황된 아첨[幻諂]을 떠나는 까닭에 부드럽고 선하다 하며, 신(身)ㆍ구(口)의 삿됨[邪]과 왜곡[曲]과 악(惡)을 떠나는 까닭에 부드럽고 선하다고 한다.
隨從如者,八正聖道。彼隨從故,名如隨從。復次如者謂泥洹,爲隨從得泥洹故如脩行。世尊所說四聖諦,隨從如智故,名如修行。
여(如)를 따른다는 것은 8정성도(正聖道)를 따르는 까닭에 여를 따른다고 한다. 또 여란 니원을 말한다. 그것을 따름으로써 니원을 얻는 까닭에 여수행(如修行)이라 한다. 세존께서 설하신 4성제를 여실한 지혜로 따르는 까닭에 여수행이라 한다.
隨從和合者,隨從沙門和合具足故,名隨從和合若。如是隨從作和合事成大果,大功德如是隨從,故名隨從和合。
화합을 따른다는 것은 사문의 화합구족을 따르는 까닭에 화합을 따른다고 한다. 만약 이와 같이 화합하는 일을 따라서 지으면 큰 과와 큰 공덕을 이룬다. 이와 같이 따르는 까닭에 화합을 따른다고 한다.
四雙八輩者,住須陁洹道及住其果故爲一雙,住斯陁含道及住其果故爲一雙,住阿那含道及住其果故爲一雙,住阿羅漢道及住其果故爲一雙。此謂四雙者,彼住道及道果,故名四雙。八輩者,四向四果,此謂八輩。
4쌍 8배란 수다원도에 머무르고 그 과에 머무는 까닭에 1쌍이 된다. 사다함도에 머무르고 그 과에 머무는 까닭에 1쌍이 된다. 아나함도에 머무르고 그 과에 머무는 까닭에 1쌍이 된다. 아라한도에 머무르고 그 과에 머무르는 까닭에 1쌍이 된다. 이것을 4쌍이라 하는 것은 그 도 및 도과에 머무는 까닭에 4쌍이라 한다. 8배란 4향 4과로서 이것을 8배라 한다.
沙門者,從聞成就,故名沙門。
사문이란 견문[聞]을 따라서 성취하는 까닭에 사문이라 한다.
僧者,聖和合衆,可請、可供養、可施、可恭敬,無上世閒福田。可請者,堪受請,名爲可請。可供養者,於衆施成大果,堪受供養。可施者,若於衆施,得大果報。可恭敬者,堪受恭敬事,名可恭敬。無上者,最多功德,故名無上。世閒福田者,是衆生功德處故,名世閒福田。
승(僧)이란 성스러운 화합 대중으로서 청할 만하고, 공양할 만하고, 보시할 만하고, 공경할 만한 위없는 세간의 복전이다. 청할 만하다는 것은 초청을 받을 만한 것을 청할 만하다고 한다. 공양할 만하다는 것은 대중에게 보시하면 큰 과보를 이루므로 공양을 받을 만한 것이다. 보시할 만하다는 것은 대중에게 보시하면 큰 과보를 얻는다는 것이다. 공경을 받을 만하다는 것은 공경하는 일을 받을 만한 것을 공경을 받을 만하다고 한다. 위가 없다는 것은 공덕이 가장 많은 까닭에 위가 없다고 한다. 세간의 복전이란 이것이 중생의 공덕처인 까닭에 세간의 복전이라 한다.
以餘行當念衆生,如是勝衆眞實衆是名醍醐,戒具足、定具足、慧具足、解脫具足、解脫知見具足。
나머지 행으로써 마땅히 대중을 염해야 하니 “이와 같이 수승한 대중이고, 진실한 대중이기에 이를 제호라고 하니, 계를 구족하고, 정을 구족하고, 혜를 구족하고, 해탈을 구족하고, 해탈지견을 구족하였다”고 염해야 한다.
彼坐禪人以此門以此行,以現念衆功德。如是現念衆功德,其心成信,由於信念心成不亂,以不亂心能滅諸蓋,禪分得起,外禪成住,如初廣說念僧已竟。
그 좌선인은 이 문과 이 행으로써, 현재에서 대중의 공덕을 염해야 한다. 이와 같이 현재에서 대중의 공덕을 염하면 그 마음이 믿음을 성취하고, 믿음과 염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어지럽지 않게 되고, 어지럽지 않은 마음으로 능히 모든 개(蓋)를 소멸하여 선분이 일어나게 되고 외선이 머물게 된다.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염승을 마친다.]
問:云何念戒?何修?何相?何味?何處?何功德?云何修行?
答:以功德念淸淨戒,彼念、隨念、正念,此謂念戒。念戒住不亂,此謂修。
【문】무엇이 염계(念戒)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수행하는가?
【답】공덕으로써 청정한 계를 염하는데, 그 염이 수념(隨念)과 정념(正念)인 것을 염계라 한다. 계를 염하여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을 닦음이라 한다.
令起戒功德爲相,見過患怖爲味,歡喜無過樂是處。若人修行念戒成,得十二功德成,尊重師、重法、重僧、重戒學、重供養、重不放逸於細微過患常見憂怖、護自身亦護他、從此世怖畏解脫、彼世怖畏解脫、多歡喜可愛。一切戒功德,是念戒功德。
계의 공덕을 일으키는 것이 상이며, 과환의 두려움을 보는 것이 맛이며, 과환이 없는 즐거움에 환희하는 것이 처이다. 만약 사람이 염계를 수행하면 12공덕을 얻게 된다. 즉 스승을 존중하고, 법을 존중하고, 승을 존중하고, 계학을 존중하고, 공양을 존중하고, 불방일을 존중하고, 미세한 과환에서도 항상 두려움을 보고, 자신을 보호하고, 또 남도 보호하고, 이 세상의 두려움으로부터 해탈하고, 저 세상의 두려움으로부터 해탈하고, 사랑할만한 일체 계의 공덕에 대한 환희가 많아진다. 이것이 염계의 공덕이다.
云何修行者,初坐禪人入寂寂坐,攝一切心,不亂心念,自身戒無偏、無穿、無點、無垢、無雜、自在智慧所嘆、無所觸令起定。
어떻게 수행하는가. 처음 좌선하는 사람은 적적에 들어가 앉아 일체의 마음을 거두고, 어지럽지 않은 마음으로 자신의 계를 염한다. “치우침이 없고, 구멍 난 것도 없고, 얼룩이 없고, 때가 없고, 잡스러움이 없고, 자재하고, 지혜로운 자들이 찬탄하는 바이고, 접촉되는 것이 없고, 정(定)을 일으키게 한다”라고 염한다.
若無偏是無穿。若無穿是不點,如是一切可知。復次若滿淸淨戒,是善法住處故,名不偏不穿。作姓稱譽故,名無點無垢。以斷愛故,名爲自在。聖所樂故,無有過患。智慧所嘆離戒盜故,故名無所觸。成不退處,故令起定。
만약 치우침이 없으면 곧 구멍 난 것이 없으며, 만약 구멍 난 것이 없으면 곧 얼룩이 없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또 만약 청정한 계가 가득하면 이것은 선법의 주처인 까닭에 치우지지 않고 구멍 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칭찬받을 만한 성품을 짓는 까닭에 얼룩이 없고 때가 없다고 말한다. 애(愛)를 끊는 까닭에 자재하다고 한다. 성인이 즐기는 바인 까닭에 과환이 없고, 지혜로운 사람이 찬탄하는 바이다. 계도(戒盜)를 떠나는 까닭에 접촉되는 것이 없다고 한다. 불퇴처를 이루는 까닭에 정을 일어나게 한다.
以餘行當念戒。名戒者,是樂無過患,是姓可貴,以財物自在。如先所說戒功德,如是廣說可知。
나머지 행으로써 마땅히 계를 염해야 한다. 계라고 하는 것은 과환이 없는 것을 즐기는 것이며, 귀한 종성(種姓)이며, 재물로써 자재한 것이다. 앞에서 설한 계의 공덕과 같이 이와 같이 자세히 설하니, 알아야 한다.
彼坐禪人以此門以此行以此功德,現念戒,由信念心不亂,以不亂心滅於諸蓋,禪分成起,外行禪成住。餘如初廣說念戒已竟。
그 좌선인은 이 문과 이 행과 이 공덕으로써 현재에서 계를 염해 그 믿음과 염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어지럽지 않게 되고, 어지럽지 않은 마음으로써 모든 개(蓋)를 소멸하여 선분(禪分)이 일어나게 되고, 외행선이 머물게 된다. 나머지는 앞에서 설한 바와 같다.[염계를 마친다.]
問:云何念施?何脩?何相?何味?何處?何功德?云何爲脩?
答:施者,爲利他故,樂饒益他。爲他人得,捨自財物,此謂施。
【문】무엇이 염시(念施)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수행하는가?
【답】시란 남을 이롭게 하기 위한 까닭에, 남을 요익케 하는 것을 즐기는 까닭에, 남이 얻게 하기 위해 자신의 재물을 버리는 것, 이것을 시라 한다.
以念施功德現念捨,彼念、隨念、正念,此謂念施。彼念住不亂,此謂修。令起施功德爲相,不蓄爲味,不慳爲處。若人修行念施,成得十功德。
보시의 공덕을 염함으로써 현재에서 사(捨)를 염하는데, 그 염이 수념과 정념인 것, 이것을 염시라 한다. 그 염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 이것을 닦음이라 한다. 보시의 공덕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 상이며, 모아두지 않는 것을 맛으로 삼고, 인색하지 않는 것을 처로 삼는다. 만약 사람이 염시를 수행하면 열 가지 공덕을 성취해 얻는다.
如是施隨樂無慳無貪意,爲多人念,善取他意,於衆不畏,多歡喜慈悲心,向善趣,向醍醐。
이와 같이 시는 낙을 따르고, 인색함이 없고, 탐하는 뜻이 없고, 많은 사람을 염두에 두고, 다른 사람의 뜻을 잘 취하고, 대중을 두려워하지 않고, 환희심이 많아지고, 자비심이 많아지고, 선취(善趣)로 향하고, 제호로 향한다.
云何修行者,初坐禪人入寂寂坐,攝一切心,不亂心自念施,以所捨物我有利、我善得利。世人爲慳垢所牽,我住無慳垢心,我常施與、常樂行施、常供給、常分布。
어떻게 수행하는가. 처음 좌선하는 사람은 적적에 들어가 앉아 일체 마음을 거두고, 어지럽지 않은 마음으로 이렇게 스스로 보시를 염한다. “버릴 물건으로 나는 이익을 얻었다. 나는 이익을 잘 얻었다. 세간 사람들은 인색함의 때에 이끌리지만 나는 인색함의 때가 없는 마음에 머문다. 나는 항상 보시하고, 항상 그 보시를 즐기며, 항상 공급하고, 항상 나누어 준다”라고 염한다.
彼坐禪人以此門以此行以此故,心常不亂。以不亂心,滅於諸蓋,禪分成起,外行禪成住。餘如初廣說念施已竟。
그 좌선인은 이 문과 이 행과 이 공덕으로써 현재에서 보시를 염해 그 마음이 믿음을 성취하고, 그 믿음과 염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항상 어지럽지 않게 되며, 어지럽지 않은 마음으로 모든 개(蓋)를 소멸하여 선분이 일어나게 되고, 외행선이 머물게 된다. 나머지는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
問:云何念天?何脩?何相?何味?何處?何功德?云?何脩?行?
答:依生天功德,念自身功德。彼念、隨念、正念,此謂念天。彼念住不亂,此謂脩。令起自身功德、天功德等爲相,於功德愛敬爲味,信功德果爲處。
【문】무엇이 염천(念天)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수행하는가?
【답】하늘에 태어나는 공덕을 의지해 자신의 공덕을 염하는데 그 염이 수념과 정념인 것, 이것을 염천이라 한다. 그 염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을 닦음이라 한다. 자신의 공덕이나 천의 공덕 등을 일으키는 것이 그 상이며, 그 공덕을 애경(愛敬)하는 것이 맛이며, 공덕의 과를 믿는 것이 처이다.
若人脩行念天,成得八功德。如是彼人五法增長,所謂信、戒、聞、施、慧,成天人所念愛敬。於說功德果報,大歡喜踊躍,自重其身,及天人所貴。念戒念施以入其內,向善趣、向醍醐。
만약 사람이 염천을 수행하면 여덟 가지 공덕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 사람은 다섯 가지 법 즉 믿음[信]ㆍ계율[戒]ㆍ견문[聞]ㆍ보시[施]ㆍ지혜[慧]가 증장하고, 천인들이 염두에 두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자가 되고, 설해진 공덕의 과보에 크게 환희용약하고, 스스로 자신의 몸을 중히 여기고, 천인이 귀히 여기고, 염계와 염시로써 그 안으로 들어가고, 선취로 향하고, 제호로 향하게 된다.
云何脩行者,初坐禪人入寂寂坐,攝一切心。以不亂心,念天有四王天、有三十三天、有焰摩天、有兜率天、有化樂天、有他化自在天,有梵身天、有天常生。以信成就,諸天從此生彼;我復如是有信。如是戒、如是聞、如是施、如是慧,成就彼諸天,從此生彼;我復如是有慧。當念其身、當念諸天,信、戒、聞、施、慧。
어떻게 수행하는가. 처음 좌선하는 사람은 적적에 들어가 앉아 일체 마음을 거두고, 어지럽지 않은 마음으로 이렇게 하늘을 염한다. “4왕천이 있고, 33천이 있고, 염마천이 있고, 도솔천이 있고, 화락천이 있고, 타화자재천이 있고, 범신천이 있고, 항상 태어나는 천인이 있다. 믿음[信]을 성취함으로써 모든 천인들은 이곳으로부터 그곳에 태어나는데, 나 또한 이와 같은 믿음이 있다. 이와 같은 계율, 이와 같은 견문, 이와 같은 보시, 이와 같은 지혜[慧]를 성취하여 그 모든 천인들이 이곳으로부터 그곳에 태어나는데, 나 또한 이와 같은 (계율ㆍ견문ㆍ보시ㆍ)지혜가 있다”고 염한다. 마땅히 그 몸을 염해야 하고, 마땅히 모든 천인의 믿음ㆍ계율ㆍ견문ㆍ보시ㆍ지혜를 염해야 한다.
彼坐禪人以此門以此行以功德現念天,彼心成信。以由信由念,心成不亂。以不亂心,滅於諸蓋,禪分成起,外行禪成住。
그 좌선인은 이 문과 이 행과 이 공덕으로써 현재에서 하늘을 염해 그 마음이 믿음을 성취하고, 그 믿음과 염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어지럽지 않게 되며, 어지럽지 않은 마음으로 모든 개(蓋)를 소멸해 선분이 일어나게 되고, 외행선이 머물게 된다.
問:何故念天功德,不念人功德?
答:諸天功德最妙、生最妙、地成妙處、心於妙處脩行成妙,是故念天功德,不念人功德。餘如初廣說。
念天已竟。
【문】어떠한 까닭에 하늘의 공덕을 염하고, 사람[人]의 공덕은 염하지 않는가?
【답】모든 하늘의 공덕이 가장 묘하고, 가장 묘한 땅에 태어나면 묘처(妙處)의 마음이 되고, 묘처에서 수행하면 묘를 이룬다. 이러한 까닭에 하늘의 공덕을 염하고, 사람의 공덕은 염하지 않는다. 나머지는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염천을 마친다.]
解脫道論卷第六 甲辰歲高麗國分司大藏都監奉勅彫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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