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자료

해탈도론 제6권-8. 행문품 ③

bunnehaital 2022. 9. 24. 21:17

해탈도론 제6

 

8. 행문품

 

云何虛空一切入何脩何相何味何處何功德云何取其相

虛空一切入有二種有虛空離色有虛空不離色虛空入處相所謂離色虛空井穴虛空相此謂不離色虛空彼脩此想心住不亂此謂脩於虛空想放意爲相不離虛空想爲味作意無二爲處

무엇이 허공일체입(虛空一切入)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허공일체입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색을 벗어난 허공과 색을 벗어나지 않는 허공이다. 허공입처의 상은 소위 색을 벗어난 허공이다. 우물의 구멍과 같은 허공상은 소위 색을 벗어나지 않는 허공이다. 그가 이 상()을 닦아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 이것을 닦음[]이라 한다. 허공상에 뜻을 두는 것을 상으로 삼고, 허공상을 떠나지 않는 것이 그 맛이며, 작의하는데 둘이 없는 것이 그 처이다.

 

何功德者不共二功德於虛空入障礙處所不能碍若牆壁山等身行無礙自在無畏

어떤 공덕이 있는가. 공유하지 않는 두 가지 공덕이 있다. 허공입에서 장애처는 능히 장애가 되지 않는다. 담장이나 벽이나 산 등이 있어도 신행(身行)이 걸림이 없고 자재로우며 두려움이 없다.

 

云何取其相者於虛空入取虛空相若作處若自然處舊坐禪人於自然處取相能於處處見或於孔穴或櫺窗閒或樹枝閒從彼常見隨樂不樂卽見彼分虛空相卽起不如新坐禪人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작처나 자연처의 허공입에서 허공상(虛空相)을 취한다. 구참 좌선인은 자연처에서 상을 취한다. 그는 능히 곳곳에서 보고, 구멍이나 창문 틈이나 혹은 나뭇가지 사이에서 그로부터 항상 보고, 즐겁건 즐겁지 않건 그것을 따라 즉시 피분을 본다. 그러면 허공상이 즉시 일어난다. 신참 좌선인은 그렇지 않다.

 

新坐禪人於作處取相不能於非作處彼坐禪人或於屋內或於屋外不障碍處作圓孔穴作虛空想以三行取相以等觀以方便以離亂於虛空一切入生四禪五禪餘如初廣說虛空一切入已竟

신참 좌선인은 작처에서 상을 취해야 하니, 작처가 아닌 곳에서는 불가능하다. 그 좌선인은 실내나 혹은 실외에서 장애가 없는 곳에 둥근 구멍을 만들어 허공상()을 짓고, 평등관ㆍ방편ㆍ이난의 세 가지 행으로써 상을 취하여 허공일체입에서 4선ㆍ5선을 일으킨다. 나머지는 앞에서 자세히 설한 것과 같다.[허공일체입을 마친다.]

 

云何識一切入

答曰識處定此謂識一切入餘如初廣說十一切入已竟

무엇이 식일체입(識一切入)인가?

식처정(識處定)을 식일체입이라 한다. 나머지는 앞에서 자세히 설한 것과 같다.[십일체입을 마친다.]

 

於是一切入云何散句

若一相得自在一切餘相隨其作意若於一處一切入於初禪得自在堪任餘一切入能起第二禪如是第二禪得自在能起第三禪第三禪得自在能起第四禪

이 일체입(一切入)에서 무엇이 산구(散句)인가?

만약 하나의 상()으로 자재를 얻으면, 모든 나머지 상도 그것에 따라 작의한다. 만약 1()의 일체입에서 초선에 자재를 얻으면 나머지 일체입도 감당하여 제2선을 일으킬 수 있다. 이와 같이 제2선에 자재를 얻으면 제3선을 일으킬 수 있고, 3선에 자재를 얻으면 제4선을 일으킬 수 있다.

 

於諸一切入云何最勝

四色一切入是爲最勝成解脫故得除入故曰一切入勝作光明故心得自在於八一切入及於八定以入十六行安詳而起隨所樂處其所樂定隨意無障次第上次第下次第上下令一一增長或俱令增長或中少或分少或事少或分事少或分俱或事俱或分事俱

모든 일체입에서 무엇이 가장 수승한가?

네 가지 색깔의 일체입이 가장 수승하니, 해탈을 이루고 수승처[除入]를 얻기 때문이다. 백일체입(白一切入)이 수승하며, 광명을 짓는 까닭에 마음에 자재를 얻는다. 8일체입 및 8정에서 16행으로 들어갔다가 느긋하게 일어남으로써 자신이 좋아하는 처()를 따라 자신이 좋아하는 정()이 뜻에 따라 장애가 없으며, 차례대로 올라가고 차례대로 내려오고 차례대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며 하나하나를 증장시킨다. 함께 증장시키기도 하고, 중간을 생략하기도 하고, ()을 생략하기도 하고, ()를 생략하기도 하고, 분과 사를 생략하기도 하고, 분과 함께하기도 하고, 사와 함께 하기도 하고, 분과 사와 함께하기도 한다.

 

隨其所樂處者或於村或於阿蘭若是其所樂處入於三昧如所樂者是其所樂禪入於禪定如其所樂時者隨意所樂時入於三昧或多時入正受

자신이 좋아하는 처를 따른다는 것은 혹은 마을에서 혹은 아란야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이런 곳에서 삼매에 드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이란 자신이 좋아하는 선()으로 선정에 드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때[]란 자신의 뜻에 따라 좋아하는 시간에 삼매에 드는 것이고, 혹은 많은 시간 정수(正受)에 드는 것이다.

 

次第上者於初禪入定次第乃至非非想處次第下者從初入非非想定次第乃至初禪次第上下者越於往還從初禪入第三禪從第三禪入第二禪從第二禪入第四禪如是乃至入非非想定

차례대로 올라간다는 것은 초선에서 정에 들어 차례대로 비비상처에 이르는 것이고, 차례대로 내려온다는 것은 처음에 비비상정에 들어 차례대로 초선에 이르는 것이며, 차례대로 올라갔다가 내려온다는 것은 한 단계를 뛰어넘었다가 돌아오는 것으로서 초선에서 제3선으로 들어갔다가 제3선에서 제2선으로 들어가고, 2선에서 제4선으로 들어갔다가 하면서 이와 같이 비비상정에 드는 것이다.

 

令一一增長者以次第入第四禪或上或下俱令增長者入第四禪從此虛空入第三禪如是二種入定

하나하나를 증장시킨다는 것은 차례대로 제4선에 들어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것이다. 함께 증장시킨다는 것은 제4선에 들어 이 허공으로부터 제3선에 드는 것으로, 이와 같이 두 종류의 정에 드는 것이다.

 

中少者已入初禪從此入非非想處從此入第二禪從此入無所有處如是現入正受能辨虛空處

중간을 생략한다는 것은 초선에 들고 나서는 이로부터 비비상처에 들고, 이로부터 제2선에 들고, 이로부터 무소유처에 들면서 이와 같이 현재에서 정수(正受)에 들어 능히 허공처를 분별하는 것이다.

 

分少者一禪於八一切入入定事少者於三一切入入於八定分事少者所謂二定及一切入分俱者於三一切入入二二禪事俱者於二二一切入入二禪分事俱者是此二句散句已竟

()을 생략한다는 것은 하나의 선()으로 8일체입에서 정에 드는 것이고, ()를 생략한다는 것은 하나)의 일체입에서 8정에 드는 것이며, 분과 사를 생략한다는 것은 소위 2정 및 일체입이다. 분과 함께한다는 것은 3일체입에서 22선에 드는 것이고, 사와 함께한다는 것은 22일체입에서 2선에 드는 것이며, 분과 사와 함께한다는 것[分事俱]은 이 2구를 말한다.[산구를 마친다.]

 

云何增長相何脩何相何味何處何功德云何取其相

增長相者滿一切處猶如排囊滿中臭穢死屍此謂胮脹於胮脹相以正智知此謂胮脹想彼脩此想心住不亂此謂脩於胮脹想相隨觀爲相厭胮脹想爲味臭穢不淨作意爲處

무엇이 증장상(增長相)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증장상이란 일체처에 가득한 것이다. 냄새나고 더러운 오물이 속에 가득한 배낭(排囊)과 같은 시체를 방창(膖脹)이라 한다. 방창의 상()을 바른 지혜로 아는 것을 방창상(膖脹想)이라 한다. 이 상을 닦아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을 닦음이라 한다. 방창상에서 그 모습을 따라서 관하는 것을 상()으로 삼고, 방창상을 싫어하는 것을 맛으로 삼고, 냄새나고 더럽고 부정하다고 작의하는 것을 처로 삼는다.

 

何功德者胮脹想有九功德得念內身得無常想得死相多厭患伏婬欲斷色憍斷無病憍向善趣向醍醐

어떤 공덕이 있는가. 방창상에는 아홉 가지 공덕이 있다. 내신(內身)에 대한 염()을 얻고, 무상상(無常想)을 얻고, 사상(死相)을 얻고, 과환에 대한 혐오[厭患]가이 많아지고, 음욕을 조복하고, 색교(色憍)를 끊고, 무병교(無病憍)를 끊고, 선취로 향하게 하고, 제호(醍醐)로 향하게 한다.

 

云何取其相者新坐禪人現取胮脹不淨想以無二行以念不動不愚癡以諸根內入以心不出外以往彼處是處不淨有諸死屍住於彼處離於逆風對不淨相不遠不近或倚或坐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신참 좌선인은 현재에서 방창(膖脹)의 부정상(不淨相)을 취한다. 무이(無二)의 행으로써, 동요하지 않고 어리석지 않는 염()으로써, 모든 근을 안으로 모음으로써, 마음이 외부로 나지지 않음으로써 그곳으로 가는데, 그곳은 갖가지 시체가 있는 부정한 곳이다. 그곳에 머물며 역풍을 벗어나 부정한 상을 마주하고,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기대거나 앉는다.

 

彼坐禪人若倚若坐近不淨處若石若土埵或樹或杌或藤爲作相作事思惟此石不淨此不淨相此石如是土埵等已爲作相已作事以十行胮脹不淨相從其自性修行當觀以色以男女形以方以處以分別以節以穴以坑以平地以平等觀於一切處

그 좌선인은 기대거나 앉아 부정처 근처의 돌이나 흙더미나 나무나 그루터기나 덩굴에서 상()을 짓고 사()를 지어 이 돌은 부정하다. 이것은 부정상이다라고 사유한다. 이 돌과 같이 흙더미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상을 짓고 나고, 사를 짓고 나서는 10행으로 방창의 부정상을 그 자성부터 수행하고 마땅히 관해야 한다. 즉 색깔[]ㆍ남녀의 형상[男女形]ㆍ방위[]ㆍ장소[]ㆍ마디[]ㆍ구멍[]ㆍ구덩이[]ㆍ평지(平地)ㆍ평등(平等)ㆍ일체처(一切處)로써 관해야 한다.

 

以色者若黑以觀黑若不黑不白以觀不黑不白若白以觀白若臭皮觀以臭皮

색깔로 관한다는 것은 검으면 검다고 관하고, 검지도 않고 희지도 않으면 검지도 희지도 않다고 관하고, 희면 희다고 관하고, 냄새나는 피부면 냄새나는 피부라고 관하는 것이다.

 

以形者若女形若男形隨觀若少若長若老隨觀者若長以長若短以短若肥以肥若小以小隨而觀之

형상으로 관한다는 것은 여자의 형상인지 남자의 형상인지 관하고, 어린아이인지 성인인지 노인인지 따라서 관하는 것이다. 따라서 관한다는 것은 키가 크면 크다고, 키가 작으면 작다고, 뚱뚱하면 뚱뚱하다고, 왜소하면 왜소하다고 그것에 따라서 관하는 것이다.

 

以方者於此方擲頭於此方擲手於此方以腳於此方以背於此方以腹於此方我所坐於此方不淨相如是隨觀

방위로 관한다는 것은 이 방향에 내던진 머리가 있고, 이 방향에 내던진 손이 있고, 이 방향에 다리가 있고, 이 방향에 등이 있고, 이 방향에 배가 있고, 이 방향에 내가 앉은 자리가 있고, 이 방향에 부정상이 있다고, 이와 같이 따라서 관하는 것이다.

 

以光明處於此光明處是擲手處於此光明是擲腳處於此光明是擲頭處於此光明是我坐處於此光明是不淨相處

밝은 장소[光明處]로 관한다는 것은 이 밝은 장소에서 여기가 바로 손[]을 내던진 곳이고, 이 밝은 장소에서 여기가 바로 다리를 내던진 곳이고, 이 밝은 장소에서 여기가 바로 머리를 내던진 곳이고, 이 밝은 장소에서 여기가 바로 내가 앉은 곳이고, 이 밝은 장소에서 여기가 바로 부정상이 있는 자리라고 관하는 것이다.

 

以分別觀從頭至足從下至頭髮皮爲邊是一屎聚以分別觀

분별로 관한다는 것은 머리부터 발까지, 아래로부터 머리까지, 모발과 피부를 끝[]으로 삼고 이것은 하나의 똥 무더기이다라고 분별로 관하는 것이다.

 

觀以節者於二手六節於二腳六節髖節項節此謂十四大節

마디로 관한다는 것은 두 손에 있는 여섯 마디, 두 다리에 있는 여섯 마디, 관절(髖節)과 항절(項節), 이것을 열네 개의 큰 마디라 한다.

 

以空穴者謂口或開或閉隨觀眼或開或閉隨觀手閒腳閒孔穴

구멍[孔穴]으로 관한다는 것은 입을 벌렸는지 다물었는지 따라서 관하고,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 따라서 관하고, 손가락 사이 발가락 사이의 빈 공간을 관하는 것이다.

 

以坑以平等地者不淨相隨其處所或於空處或於地上是處隨觀復次我在空處不淨相地上或不淨相在下我於地上隨觀

구덩이[], 또 평등지(平等地)로 관한다는 것은 부정상이 있는 처소를 따라 공처(空處)에 있는지 땅 위에 있는지 그 처소를 따라서 관하는 것이다. 나는 공처에 있고 부정상은 땅 위에 있다’, 혹은 부정상이 땅 아래 있고 나는 땅 위에 있다고 따라서 관한다.

 

以一切處從我不取近遠若二尋三尋隨觀

일체처로 관한다는 것은 나로부터 너무 멀거나 가까이 하지 않고, 2()이나 3심 거리에서 따라서 관하는 것이다.

 

彼坐禪人如是一切正隨觀見彼相善哉善哉如是受持以善自安彼坐禪人已善取相已善受持已善自安一無二行以念不動心不愚癡諸根內入心不出外去來道路若行若坐觀彼不淨心常受持

그 좌선인이 이와 같이 일체를 올바르게 따라서 관하여 그 상을 보았다면 훌륭하고도 훌륭하니, 이와 같이 수지하고, 선으로 스스로를 편안케 한다. 그 좌선인은 훌륭하게 상을 취한 뒤에, 훌륭하게 수지한 뒤에, 훌륭하게 스스로를 편안케 한 뒤에 둘이 없이 한결같이 행하고, 동요하지 않는 염으로 마음이 어리석지 않고, 모든 근을 안으로 잘 모으고, 마음이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하면서 길을 가고 오며, 걷건 앉건 그 부정을 보고 마음으로 항상 수지한다.

 

無二行者何義爲得身寂寂令

둘이 없는 행[無二行]이란 무슨 뜻인가. 몸으로 하여금 적적을 얻게 하는 것이다.

 

念不動者以不愚癡以諸根內入心不出外去來道路者何義爲得身寂寂

염을 움직이지 않게 하고, 어리석지 않게 하고, 모든 근을 안으로 모으고, 마음을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하면서 길을 오고 간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몸으로 하여금 적적을 얻게 하는 것이다.

 

離逆風者何義爲離臭氣

역풍을 벗어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악취를 멀리한다는 것이다.

 

坐不取遠近者何義若取遠不成除相若取近不成其厭不見其性以不見其性彼相不起是故不取遠不取近

너무 멀리 혹은 가까이 앉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약 너무 멀면 그 상을 없앨 수 없고 너무 가까우면 그 싫음이 생기지 않아 그 성품을 보지 못하고, 그 성품을 보지 못함으로써 그 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너무 멀거나 너무 가깝게 취하지 않는다.

 

坐遍觀一切相者何義爲不愚癡名不愚癡若坐禪人入寂寂處見不淨相如在其前心起驚怖是故坐禪人若死屍起逐不起心思惟如是已知念正智受持已觀相遍是其遍相如是作意是名不愚癡

앉아서 일체상을 두루 관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어리석게 행동하지 않는 것을 어리석지 않은 것이라 한다. 만약 좌선인이 적적처로 들어가 부정상을 보고 그것이 자기 앞에 있게 되면 마음에 두려움과 공포가 일어난다. 따라서 좌선인은 죽은 시체가 일어나 쫓아온다 해도 일어나지 않겠다고 마음으로 사유한다. 이와 같이 알고 나서 기억하고, 바른 지혜로 수지하여 이미 관한 상이 변재한 것, 이것이 그 변상(遍相)이다. 이와 같이 작의하는 것을 어리석지 않음이라 한다.

 

取十種行相何義

爲於心縛

10종 행상을 취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마음에 속박한다는 것이다.

 

觀去來道路者何義爲起次第法名次第法者若坐禪人入寂寂處有時心亂以不常觀不起不淨相是故坐禪人攝一切心當觀去來道路當觀於坐禪處當觀遍相當觀十種取相彼坐禪人如是數數現觀復更起相如以眼見此謂起次第法

오고 가는 도로를 관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차제법을 일으키기는 것이다. 차제법이라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좌선인이 적적처에 들어가면 어떤 때는 마음이 심란하여 불상(不常)을 관함으로써 부정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까닭에 좌선인은 일체의 마음을 모아 마땅히 오고 가는 도로를 관해야 하고, 좌선처를 관해야 하고, 변상을 관해야 하고, 마땅히 열 가지 취상을 관해야 한다. 그 좌선인은 이와 같이 자주 현재에서 관하고 다시 또 상을 일으켜 눈으로 직접 보듯이 한다. 이것을 차제법을 일으킴이라 한다.

 

初坐禪人於此死屍成珍寶想如是歡喜心得受持心常脩行滅於諸蓋禪分成起彼坐禪人已離欲已離不善法有覺有觀寂寂所成有喜樂入初禪定及胮脹相

처음 좌선하는 사람은 이 시신에 진보상(珍寶想)을 일으켜 이와 같이 환희하고, 마음에 수지하며, 마음으로 항상 닦고, 모든 개()를 소멸한다. 그러면 선분(禪分)이 일어나게 된다. 그 좌선인은 이미 욕망을 떠나고 이미 불선법을 떠나 각이 있고, 관이 있으며, 적적으로 이루어진 희와 낙이 있어 초선정 및 방창상에 든다.

 

何故以不淨行起於初禪非起餘禪

此行未作觀故此成縛處故常隨覺觀覺觀恒現其相得起非離覺觀其心得安是故初禪起非餘禪

어떤 까닭에 부정행(不淨行)으로써 초선을 일으키며, 다른 선은 일으키지 않는가?

이 행은 아직 관을 생기게 하지 않는 까닭에, 또 이것은 속박처를 만드는 까닭에, 항상 각과 관을 따른다. 각과 관은 항상 나타나 그 상을 일으키며, 각과 관을 떠나서는 그 마음이 편안함을 얻지 못한다. 이러한 까닭에 초선은 생기지만 다른 선은 생기지 않는다.

 

復說此不淨相色形等以不一行思惟令起於行思惟者是覺觀事不能堪任離於覺觀爲思惟行是故唯初禪起非餘禪

또 설이 있다. 이 부정상의 색깔과 형상 등 하나가 아닌 행으로써 사유한다. 행사유(行思惟)를 일으킨다는 것은 각과 관의 작용이니, 각과 관을 떠나서 사유의 행을 능히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오직 초선만이 일어나고, 다른 선은 일어나지 않는다.

 

復說此不淨相不可耐事於不耐事不能擧心於不淨處心由喜樂故除覺觀方便以覺觀方便力是時修行由如臭屎是故唯初禪起非餘禪

또 설이 있다. 이 부정상은 가히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이 견디기 어려운 일을 마음에 떠올릴 수 없을 때에는 부정처에서 마음이 희락을 말미암는 까닭에 각과 관의 방편을 제외한다. 각과 관의 방편의 힘에 의지할 때는 악취 나는 똥과 같다는 것을 말미암아 수행한다. 이러한 까닭에 오직 초선만이 일어나며, 다른 선은 일어나지 않는다.

 

於不耐事云何起喜樂

不耐事非因爲起喜樂復次善斷蓋熱故以脩心自在故起喜樂行餘如初廣說胮脹相已竟

견디기 어려운 일에서 어떻게 희락을 일으키는가?

견디기 어려운 일은 희락을 일으키는 원인이 아니다. 또 개()의 열기를 잘 끊는 까닭에, 마음을 닦음으로써 자재한 까닭에 희락의 행을 일으킨다. 나머지는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방창상을 마친다.]

 

云何靑淤相何脩何相何味何處何功德云何取其相

靑淤者或死一宿或二三宿成靑淤相如靑所染色隨生此謂靑淤相彼靑淤是謂靑相以正智知此謂靑淤相心住不亂此謂修受持靑相爲相厭爲味作意不耐爲處等胮脹相功德脩其相者如初廣說靑淤相已竟

무엇이 청어상(靑瘀相)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청어란 죽은 뒤 하룻밤을 지내거나, 23일을 지낸 뒤 청어상이 성립한다. 푸르게 물든 것과 같은 색이 따라서 생기는데 이것을 청어상이라 한다. 그 청어를 청상(靑相)이라 하고, 올바른 지혜로써 아는 것을 청어상이라 한다.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을 닦음이라 하고, 청상을 수지하는 것을 상으로 삼고, 그것을 싫어하는 것이 맛이며, 견뎌내지 못한다고 작의하는 것이 처이다. 공덕은 방창상과 같다. 그 상을 닦는 방법은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청어상을 마친다.]

 

云何潰爛相何脩何相何味何處何功德云何取相

潰爛者或死二三宿潰爛膿出猶如灌酪身成潰爛此謂潰爛於潰爛相以正智知是謂潰爛相心住不亂此謂脩受持潰爛爲相厭爲味作意不耐爲處等胮脹相功德取相如初廣說潰爛相可知潰爛相已竟

무엇이 궤란상(潰爛相)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궤란이란 혹은 죽어서 23일 지나면 허물어지고 문드러져 마치 우유죽을 붓은 것처럼 고름이 흘러나온다. 몸이 허물어지고 문드러지는 것을 궤란이라 한다. 이런 궤란의 상을 올바른 지혜로써 아는 것을 궤란상이라 한다.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을 닦음이라 한다. 궤란을 수지하는 것을 상으로 삼고, 그것을 싫어하는 것이 맛이며, 견뎌내지 못한다고 작의하는 것이 처이다. 공덕은 방창상과 같고, 그 상을 취하는 방법은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궤란상을 알아야 하며, 궤란상을 마친다.]

 

云何斬斫離散相何脩何相何味何處何功德云何取其相

斬斫離散者或以刀劍斬斫身體離散復說所擲死屍此謂斬斫離散於斬斫離散是正智知此謂斬斫離散想心住不亂此謂脩斬斫離散想爲相厭爲味作意不淨爲處等胮脹相功德

무엇이 참작이산상(斬斫離散相)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참작이산(斬斫離散)이란 칼로 신체를 잘라 흩트리는 것이다. 또 내던져진 시신이라고도 한다. 이것을 참작이산이라 한다. 이 참작이산을 올바른 지혜로써 아는 것을 참작이산상(斬斫離散想)이라 하고,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을 닦음이라 한다. 참작이산상을 그 상으로 삼고, 그것을 싫어하는 것이 맛이며, 깨끗하지 못하다고 작의하는 것이 처이다. 공덕은 방창상과 같다.

 

云何取其相

於兩耳二指作片片想作斬斫離散想如是取相於一二上取其空相餘如初廣說斬斫離散相已竟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양쪽 귀에 두 손가락을 대어 편편상(片片想)을 만들고, 참작이산상을 만든다. 이와 같이 상을 취하고, 일이(一二) 상에서 그 공상(空相)을 취한다. 나머지는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참작이산상을 마친다.]

 

云何食噉想何脩何相何味何處何功德云何取其相

食噉者或烏鵲鴟梟雕鷲猪狗狐狼虎豹食噉死屍此謂食噉於彼食噉是相以正智知此謂食噉想心住不亂此謂脩食噉想爲相厭爲味作意不淨爲處等胮脹想功德餘如初廣說食噉相已竟

무엇이 식담상(食噉想)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식담이란 까마귀ㆍ까치ㆍ올빼미ㆍ독수리ㆍ돼지ㆍ개ㆍ여우ㆍ늑대ㆍ호랑이ㆍ표범 등이 뜯어먹은 시신이다. 이것을 식담이라 한다. 그 식담에서 그 상을 올바른 지혜로써 아는 것, 이것을 식담상(食噉想)이라 한다.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을 닦음이라 하고, 식담상을 그 상으로 삼고, 그것을 싫어하는 것이 맛이며, 깨끗하지 못하다고 작의하는 것이 처이다. 공덕은 방창상과 같다. 나머지는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식담상을 마친다.]

 

云何棄擲想何脩何相何味何處何功德云何取其相

棄擲者於處處方散擲手足此謂棄擲於棄擲想是正智知此謂棄擲想心住不亂此謂脩受持棄擲想爲想厭爲味作意不淨爲處胮脹想等功德

무엇이 기척상(棄擲想)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기척이란 곳곳에 그 수족이 흩어져 내던져진 것이다. 이것을 기척이라 한다. 기척상에서 올바른 지혜로써 아는 것, 이것을 기척상이라 한다.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 이것을 닦음이라 한다. 기척상을 수지하는 것을 그 상()으로 삼고, 그것을 싫어하는 것이 맛이며, 깨끗하지 못하다고 작의하는 것이 처이다. 공덕은 방창상과 같다.

 

云何取其相者一切身分聚在一處安諸分節相離二寸安已作棄擲想取相餘如初廣說棄擲想已竟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모든 신체부위를 한 곳에 모아 각 부분을 맞춘 뒤 2촌정도 서로 떨어뜨려 놓은 다음에 기척상으로써 그 상을 취한다. 나머지는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기척상을 마친다.]

 

云何殺戮棄擲想何脩何相何味何處何功德云何取其相

被殺棄擲者或以刀杖或以弓箭於處處斬斫殺戮死屍此謂殺戮棄擲於殺戮棄擲是想是正智知此謂殺戮棄擲想心住不亂此謂修受持殺戮棄擲想爲相厭爲味作意不淨爲處等胮脹功德云何取其相者如初廣說殺戮棄擲想已竟

무엇이 살륙기척상(殺戮棄擲想)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피살되어 버려진 것이란 칼이나 몽둥이, 혹은 화살로 곳곳을 자르고 토막 내어 죽인 시신을 말한다. 이것을 살륙기척이라 한다. 살육을 당해 버려진 이 상을 올바른 지혜로써 아는 것, 이것을 살륙기척상이라 한다.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 이것을 닦음이라 한다. 살륙기척상을 수지하는 것을 그 상으로 삼고, 그것을 싫어하는 것이 맛이며, 깨끗하지 못하다고 작의하는 것이 처이다. 공덕은 방창상과 같다.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는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살륙기척상을 마친다.]

 

云何血塗染想何脩何相何味何處何功德云何取其相

血塗染者或斬截手足形分出血塗身此謂血塗染於血塗染想是正智知此謂血塗染想心住不亂此謂修受持血塗染想爲相厭爲味作意不淨爲處等胮脹想功德云何取其相者如初廣說血塗染相已竟

무엇이 혈도염상(血塗染想)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혈도염이란 수족이나 몸뚱이를 잘라 피가 흘러 온 몸에 범벅인 것, 이것을 혈도염이라 한다. 혈도염의 상()을 올바른 지혜로써 아는 것, 이것을 혈도염상이라 한다.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 이것을 닦음이라 한다. 혈도염상을 수지하는 것을 그 상으로 삼고, 그것을 싫어하는 것이 맛이며, 깨끗하지 못하다고 작의하는 것이 처이다. 공덕은 방창상과 같다.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는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혈도염상을 마친다.]

 

云何虫臭想何脩何相何味何處何功德云何取其相

虫臭者諸虫生滿其身猶如白珠純是虫聚此謂虫臭於虫臭想以正智知此謂虫臭想心住不亂此謂脩受持虫臭想爲相厭爲味作意不淨爲處等胮脹想功德云何取其相者如初廣說虫臭想已竟

무엇이 충취상(蟲臭想)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충취란 갖가지 벌레가 생겨 그 몸에 가득한 것이 마치 흰 구슬과 같고, 온전히 그것이 벌레무더기인 것이다. 이것을 충취라고 한다. 충취의 상을 올바른 지혜로 아는 것, 이것을 충취상이라 한다.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 이것을 닦음이라 한다. 충취상을 수지하는 것을 그 상으로 삼고, 그것을 싫어하는 것이 맛이며, 깨끗하지 못하다고 작의하는 것이 처이다. 공덕은 방창상과 같다.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는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충취상을 마친다.]

 

云何骨想何脩何相何味何處何功德云何取其相

骨者謂鉤鎖相連或肉血筋脈所縛或無血肉但有筋纏或無肉血此謂骨於此骨想以正智知此謂骨想心住不亂此謂脩受持骨想爲相厭爲味作意不淨爲處等胮脹想功德云何取其相者如初廣說骨想已竟

무엇이 골상(骨想)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

()이란 갈고리와 쇠사슬이 서로 이어진 것처럼 살과 피와 힘줄과 혈맥이 서로 엉켜있거나, 피와 살은 없고 힘줄만 남아 엉켜있거나, 혹은 피와 살이 전혀 없는 것, 이것을 골이라 한다. 이 골상을 올바른 지혜로써 아는 것, 이것을 골상이라 한다.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 이것을 닦음이라 한다. 골상을 수지하는 것을 그 상으로 삼고, 그것을 싫어하는 것이 맛이며, 깨끗하지 못하다고 작의하는 것이 처이다. 공덕은 방창상과 같다. 어떻게 그 상을 취하는가는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골상을 마친다.]

 

於不淨處云何散句

初坐禪人有重煩惱於不種類不應取相不種類者如男女身若不淨業人不淨相不應作意何故常觀事故不成厭於畜生身不起淨想以一骨起起相自在於骨取亦復如是若不淨相以色起由一切入當觀若以空起以界當觀者以不淨起以不淨當觀

부정처에서 무엇이 산구(散句)인가?

처음 좌선하는 사람은 무거운 번뇌를 가지고 있으므로 종류가 아닌 것[不種類]에서 상을 취해서는 안 된다. 종류가 아닌 것이란 남녀의 몸과 같다. 만약 부정업을 지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부정상을 작의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항상 사()를 관하는 까닭에 싫어함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축생의 몸에서 깨끗한 상을 일으키지 않고, 하나의 골로써 상을 일으키며, 자재하게 그 골을 취하는 것 또한 그와 같다. 만약 부정상을 색()으로써 일으켰다면 일체입을 말미암아 마땅히 관해야 하고, 만약 공()으로써 일으켰다면 계()로써 마땅히 관해야 하며, 만약 부정으로써 일으켰다면 부정으로써 마땅히 관해야 한다.

 

何故十不淨不多不少

身失有十種故復由十人故成十想欲人當修胮脹想色愛欲人當修靑淤想如淨欲人當修壞爛想餘亦可知復次不淨相不可得故一切不淨想欲對治故若欲行人是其所得彼當取相是故說一切不淨爲十種不淨想

어떠한 까닭에 열 가지 부정뿐이고, 더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가?

몸을 잃는 데에 열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10인에 의하는 까닭에 10()이 이루어진다. 욕인(欲人)은 마땅히 방창상을 닦아야 한다. 색애욕인(色愛欲人)은 마땅히 청어상을 닦아야 한다. 정욕인(淨欲人)은 마땅히 괴란상(壞爛想)을 닦아야 한다. 나머지 또한 알아야 한다. 또 부정상을 얻을 수 없는 까닭에, 일체 부정상은 욕을 대치하는 까닭에, 만약 욕을 행하는 자가 이것을 얻으려면 그는 마땅히 상을 취해야 한다. 이러한 까닭에 일체 부정을 설하여 10종 부정상이라 한다.

 

何故不令增長

若人樂厭欲令起自性身想何故若有自性身想於想速得厭彼分故已令增長不淨想是其身相得除已除自身想不速得厭是故不應令增長又說若得無欲爲修大心成令增長如阿毘曇說處離欲等初禪正受住胮脹及起無量事如大德摨狗父說偈

어떠한 까닭에 증장시키지 않는가?

만약 사람이 욕을 싫어하는 것을 좋아하면, 자성신(自性身)의 상을 일으키게 된다. 왜냐하면, 만약 자성신의 상이 있으면 그 상에서 싫어하는 피분(彼分)을 속히 얻기 때문이다. 이미 부정상을 증장시켰다면 그 신상은 없어지게 된다. 이미 자신의 상을 없앴다면 속히 그 싫어함을 얻지는 못한다. 이러한 까닭에 증장시켜서는 안 된다. 또한 만약 무욕(無欲)을 얻으면 대심(大心)을 닦기 위하여 증장시키도록 한다. 아비담에서 이욕(離欲) 등에 처하여 초선을 정수하고 방창에 머물며 나아가 무량사(無量事)를 일으킨다라고 설한 것과 같고, 대덕 내구부(摨狗父)가 게송으로 설한 바와 같다.

 

比丘佛家財於怖畏林處旣已修骨想普令滿此地

我知彼比丘速當斷欲染十不淨已竟

불가재(佛家財) 비구가 포외림(怖畏林)에 머물러

이미 골상을 닦아 두루 이 땅에 가득케 한다.

나는 그 비구가 욕염을 속히 끊으리라는 것을 안다.[10부정처를 마친다.]

 

云何念佛何脩何相何味何處何功德云何脩行

佛者世尊自然無師於未聞法正覺正諦能知一切得力自在此謂爲佛

무엇이 염불(念佛)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수행하는가?

불이란 세존으로서 자연히 스승 없이 일찍이 듣지 못한 법에서 올바른 진리[正諦]를 바로 깨닫고, 능히 일체를 알아 힘의 자재를 얻은 분이다. 이것을 불[부처님]이라 한다.

 

念佛世尊正遍知道菩提功德隨念念持念不忘念根念力正念此謂念佛

불ㆍ세존ㆍ정변지(正遍知)ㆍ도()ㆍ보리공덕을 염하는데 그 염이 수념(隨念)이고, 염을 수지하고, 염을 망각하지 않고, ()을 염하고, ()을 염하는 정념(正念), 이것을 염불이라 한다.

 

心住不亂此謂修令起佛功德爲相恭敬爲味增長信爲處若修行念佛成得十八功德信增長念增長慧增長恭敬增長功德增長多歡喜堪任苦行離於怖畏於受惡法得生慚愧常與師共住心樂佛地行向善趣最後醍醐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 이것을 닦음이라 한다. 부처님의 공덕을 일으키게 하는 것을 상으로 삼고, 공경을 그 맛으로 삼고, 믿음을 증장시키는 것을 처로 한다. 만약 염불을 수행하면 18공덕을 얻게 되고, ()이 증장하고, ()이 증장하고, ()가 증장하고, 공경이 증장하고, 공덕이 증장하며, 환희가 많아지고, 고행을 능히 감당하고, 두려움을 벗어나고, 악법을 받는 것에 대해 참괴(慚愧)를 일으키고, 항상 스승과 함께 머물고, 마음이 불지(佛地)의 행을 즐기고, 선취로 나아가 최후에 제호에 이른다.

 

如說脩多羅涅底里句若人欲念佛其可恭敬如佛像處

수다라열저리구(修多羅底里句)에서 만약 사람이 염불을 바란다면, 그 불상처(佛像處)에서와 같이 공경해야 할 것이다라고 설하는 것과 같다.

 

云何脩行初坐禪人往寂寂處攝心不亂以不亂心念如來世尊應供正遍知明行足善逝世閒解無上士調御丈夫天人師佛世尊於是彼者到一切功德彼岸

어떻게 수행하는가. 처음 좌선하는 사람은 적적처에 이르러 마음을 거두어 어지럽지 않게 하고, 어지럽지 않은 마음으로 여래ㆍ세존ㆍ응공ㆍ정변지ㆍ명행족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조어장부ㆍ천인사ㆍ불ㆍ세존을 염한다. 여기에서 그는 일체공덕의 피안에 도달한다.

 

世尊者得世稱譽故名世尊復得妙法故名世尊復得供養故名世尊得福具足故名世尊道法之主故名世尊以是因故得名世尊

세존(世尊)이란 세간의 명예를 얻는 까닭에 세존이라 한다. 또 묘법을 얻는 까닭에 세존이라 한다. 또 공양을 얻는 까닭에 세존이라 한다. 또 복을 구족하게 얻는 까닭에 세존이라 한다. 도법(道法)의 주인인 까닭에 세존이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세존이란 이름을 얻는다.

 

以彼因故受供養名阿羅漢殺煩惱怨名阿羅漢折生死輪輻名阿羅漢

그런 이유 때문에 공양을 받으므로 아라한이라 하고, 번뇌라는 원수를 죽이는 까닭에 아라한이라 하고, 생사라고 하는 윤회의 바큇살을 꺾는 까닭에 아라한이라 한다.

 

正遍知者以一切行正知一切諸法名正遍覺復殺無明名正遍覺以獨覺無上菩提名正遍覺

정변지(正遍知)란 일체 행으로써 일체 제법을 올바로 아는 까닭에 정변각이라 한다. 또 무명을 죽이는 까닭에 정변각이라 한다. 홀로 무상보리를 깨닫는 까닭에 정변각이라 한다.

 

明行足者明者三明宿命智明衆生生死智明漏盡智明

명행족(明行足)에서 명이란 3명이니, 숙명지명(宿命智明)ㆍ중생생사지명(衆生生死智命)ㆍ누진지명(漏盡智明)이다.

 

世尊以宿命智明斷殺過去無明以衆生生死智明斷殺未來無明以漏盡智明斷殺現在無明已斷殺過去無明故以一切行一切過去法世尊應念卽現已斷殺未來無明故以一切行一切未來法世尊應念卽現已斷殺現在無明故以一切行一切現在法世尊應念卽現

세존은 숙명지명으로써 과거무명을 끊어 없애고, 중생생사지명으로써 미래의 무명을 끊어 없애며, 누진지명으로써 현재의 무명을 끊어 없앤다. 이미 과거의 무명을 끊어 없앤 까닭에 일체 행으로써 일체 과거법이 세존이 마땅히 염하는 대로 곧 나타난다. 이미 미래의 무명을 끊어 없앤 까닭에 일체 행으로써 일체의 미래법이 세존이 마땅히 염하는 대로 곧 나타난다. 이미 현재의 무명을 끊어 없앤 까닭에 일체 행으로써 일체 현재법이 세존이 마땅히 염하는 대로 나타난다.

 

行者戒定足具戒者謂一切善法處故言明行足者謂一切神通處故名明行足具者謂一切定

행이란 계정(戒定)이 구족한 것이다. 계란 일체 선법의 처이다. 따라서 명행(明行)이라 한다. 족이란 일체 신통의 처인 까닭에 명행족이라 한다. ()란 일체 정을 말한다.

 

於是世尊以一切智以三明以行得大慈悲以作世閒饒益明得自在以知處故以起論道無人能勝滅諸煩惱

여기에서 세존은 일체지로써, 3명으로써, 행으로써, 대자비를 얻고, 세간을 요익케 함으로써 밝게 자재를 얻고, 처를 아는 까닭에 논도(論道)를 일으킴으로써 그를 이길만한 자가 없고 모든 번뇌를 소멸한다.

 

以淸淨正行以明具足成世閒眼現饒益不饒益故以行具足成世閒依作救怖畏以明解脫於第一義已得通達以行成濟渡作世閒義於一切事自然無師所行平等得無上寂寂以明行足世尊成就此謂明行具足

청정한 정행(正行)으로써 명()을 구족하여 세간의 눈이 되고, 요익과 불요익을 밝히는 까닭에 이로써 행()을 구족하여 세간의 의지처가 된다. 두려움에서 구해내어 명으로써 해탈하고, 제일의에 대해 이미 통달을 얻어 행으로써 제도하며, 세간의 뜻을 이루어 일체의 사()에서 자연스럽고 스승이 없으며, 행하는 바가 평등하고, 무상의 적적을 얻고, 명행족으로써 세존이 성취된다. 이것을 명행구족이라 한다.

 

善逝者到善路故名曰善逝不復更來到於醍醐界無爲涅槃故名善逝復說法不顚倒故名善逝復說法不僻故名善逝復說法無過患故名善逝復說法不多不少故名善逝

선서(善逝)란 선로(善路)에 이르는 까닭에 선서라 한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제호의 세계에서 무위열반하는 까닭에 선서라 한다. 또 설한 법에 전도됨이 없는 까닭에 선서라 한다. 또 설한 법이 치우치지 않는 까닭에 선서라 한다. 또 설한 법에 과환이 없는 까닭에 선서라 한다. 또 설한 법이 많지도 적지도 않는 까닭에 선서라 한다.

 

世閒解者世閒有二種謂衆生世閒行世閒

세간해(世間解)에서 세간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즉 중생세간(衆生世間)과 행세간(行世間)이다.

 

世尊以一切行知衆生世閒以知衆生種種欲樂以根差別以宿命以天眼以從去來以和合以成就以種種可化以種種堪不堪以種種生以種種趣以種種地以種種業以種種煩惱以種種果報以種種善惡以種種縛解以如是等行世尊悉知衆生世閒

세존께서는 일체의 행으로써 중생세간을 안다. 중생의 갖가지 욕락을 앎으로써, 근의 차별로써, 숙명으로써, 천안으로써, 오고 감에 따라서, 화합으로써, 성취로써, 갖가지 교화해야 할 것으로써, 갖가지 견딤과 견디지 못함으로써, 갖가지 생으로써, 갖가지 취()로써, 갖가지 지()로써, 갖가지 업으로써, 갖가지 번뇌로써, 갖가지 과보로써, 갖가지 선악으로써, 갖가지 얽힘[]과 풀림[]으로써, 이와 같은 행으로써 세존은 중생세간을 남김없이 안다.

 

復說行世閒者世尊亦知以一切業亦知諸行以定相以隨其自相因緣善不善無記以種種陰以種種界以種種入以智明了以無常苦無我以生不生如是等行世尊悉知世閒諸行此謂世閒解

또 행세간을 설명하자면, 세존은 또한 일체업을 알고, 또한 모든 행을 안다. 정상(定相)으로써, 그 자상을 따르는 인연의 선ㆍ불선ㆍ무기로써, 갖가지 음()으로써, 갖가지 계()로써, 갖가지 입()으로써, ()의 명료함으로써, 무상ㆍ고ㆍ무아로써, 생ㆍ불생으로써, 이와 같은 행으로써 세존은 세간의 모든 행을 남김없이 안다. 이것을 세간해라고 한다.

 

無上者世無有上此謂無上復次無人與等復次最勝無比餘不能過故名無上

무상(無上)이란 세상에 더 이상 위가 없는 것, 이것을 무상이라 한다. 또 그와 동등한 인간이 없고, 가장 수승해 견줄 자가 없고, 다른 누구도 그를 능가할 수 없는 까닭에 무상이라 한다.

 

調御丈夫者有三種人或聞法卽悟或說因緣或說宿命世尊御八解脫道調伏衆生故名調御丈夫

조어장부(調御丈夫)란 세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 혹은 법을 듣고 곧 깨닫고, 혹은 인연을 설하며, 혹은 숙명을 설하는 사람이다. 세존은 8해탈도를 잘 통어해 중생을 조복하는 까닭에 조어장부라 한다.

 

天人師者世尊能度天人從生老死怖畏園林故名天人師復次敎誡見思惟道名天人師

천인사(天人師)란 세존은 능히 하늘과 인간을 생ㆍ노ㆍ사의 포외원림(怖畏園林)으로부터 제도하는 까닭에 천인사라 한다. 또 견도(見道)와 사유도(思惟道)를 가르치는 까닭에 천인사라 한다.

 

如是以此門以此行當念如來復次如本師說以四種行修念世尊本昔因緣以起自身以得勝法以作世閒饒益

이와 같이 이 문()과 이 행()으로써 마땅히 여래를 염해야 한다. 또 본사(本師)께서 설하신 바와 같이 네 가지 행으로써 세존에 대한 염을 닦아야 한다. 즉 과거 본래의 인연, 자신을 일으킴, 수승법을 얻음, 세간을 요익케 함이라는 네 가지 행으로써 세존을 염해야 한다.

 

從初所願乃至最後生於此中閒久遠之時二十阿僧祇劫一百千億觀凡夫根念根所初慈哀世閒我已得脫當令彼脫我已得調當令彼調我已得安當令彼安我已入涅槃當令彼得入涅槃受持精進智慧皆令滿足

최초의 소원으로부터 최후 생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의 아주 오랜 시간인 20아승지겁과 1백천억 세계에서 범부의 근을 관하고 근소(根所)를 염하고는 처음으로 세간을 자애(慈哀)하여 나는 이미 해탈을 얻었다. 마땅히 그들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하리라. 나는 이미 조어를 얻었다. 마땅히 그들로 하여금 조어를 얻게 하리라. 나는 이미 편안함을 얻었다. 마땅히 그들로 하여금 편안함을 얻게 하리라. 나는 이미 열반에 들었다. 마땅히 그들로 하여금 열반에 들게 하리라. ()ㆍ계()ㆍ출()ㆍ인()ㆍ제()ㆍ수지(受持)ㆍ자()ㆍ사()ㆍ정진(精進)ㆍ혜() 모두를 만족케 하리라고 하셨다.”

 

爲得菩提世尊爲菩薩時說本生因緣

보리를 얻게 하기 위해 세존이 보살이었을 때의 본생인연을 설하겠다.

 

作兔子身常行布施當念可護生戒摩瞿頻陁生當念出離生忍辱生當念忍普明生當念實語當念噁蹇生當念受持

토끼 새끼의 몸이 되어 항상 보시를 행했던 것을 염해야 하며, 가호(可護)의 생애에서 계()를 염해야 하며, 마하구빈타(摩訶瞿頻陀)의 생애에서 마땅히 출리생(出離生)을 염해야 하며, 인욕(忍辱)의 생애에서 마땅히 인()을 염해야 하며, 보명(普明)의 생애에서 마땅히 실어(實語)를 염해야 하며, 오건(噁蹇)의 생애에서 수지(受持)를 염해야 한다.

 

當念帝釋慈悲當念毛豎捨當念商主正眞當念麋生當念長壽生逐父語當念六牙白象恭敬仙人當念白馬生往羅剎國渡諸衆生當念鹿生護彼壽命捨自壽命當念猴生令得解脫所屬大苦

제석(帝釋)의 자비를 염해야 하며, 모수(毛竪)의 사()를 염해야 하며, 상주(商主)의 정진(正眞)을 염해야 하며, 사슴의 생애를 염해야 하며, 장수(長壽)의 생애에서 부왕의 말씀을 따랐던 것을 염해야 하며, 어금니가 여섯인 흰 코끼리로 태어나 선인(仙人)을 공경했던 것을 염해야 하며, 백마(白馬)로 태어나 나찰국(羅刹國)에 이르러 모든 중생을 제도했던 것을 염해야 하며, 사슴으로 태어나 다른 사슴들의 수명을 보호하려고 자신의 수명을 버렸던 것을 염해야 하며, 원숭이로 태어나 주어진 큰 고통에서 해탈시켰던 것을 염해야 한다.

 

復次當念猴生見人落坑以慈心拔出設樹根菓以爲供養彼人樂肉以破我頭以慈悲說法語其善道如是以衆願門當念世尊本生功德

또 원숭이로 태어나 사람이 구덩이에 떨어진 것을 보고는 자비심으로 구출하고, 나무뿌리와 과일을 공양하고, 그 사람이 고기를 좋아해 자신의 머리를 깨뜨리려 하자 자비로 법을 설해 그 선도(善道)를 말했던 것을 염해야 한다. 이와 같이 중원문(衆願門)으로써 세존의 본생공덕을 염해야 한다.

 

云何當念世尊自拔身功德世尊有如是等本生具足爲年少時斷一切居止著斷兒婦父母親友著以捨難捨獨住空閑無所有處

세존께서 스스로 자신을 구출한 공덕을 염해야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세존은 이와 같은 본생의 구족을 갖추고 있어 어린 나이에 모든 거처에 대한 집착을 끊고, 처자ㆍ부모ㆍ친구에 대한 집착을 끊고, 버리기 어려운 것을 버리고, 홀로 텅 비고 한가로운 무소유처에 머무셨다.

 

欲求無爲泥洹寂滅於摩伽陁國渡尼連禪河坐菩提樹降伏魔王及諸鬼兵於初夜時自憶宿命於中夜分脩得天眼於後夜中知苦斷集得證醍醐界脩行八正道分作證漏盡得菩提覺從於世閒拔出自身住第一淸淨漏盡之地如是以衆行門當念世尊自拔身功德

그리고 무위인 니원(泥洹)의 적멸을 구하고자 마가다국에서 니련선하를 건너 보리수에 앉아 마왕과 모든 귀신군대를 항복시키고는, 초야 때에는 스스로 숙명을 기억해 내고, 중야 때에는 천안을 얻었으며, 후야 때에는 고()를 알고 집()을 끊어 제호의 세계를 증득하고, 8정도분(正道分)을 닦고 누진을 깨달아 보리각을 얻어 세간으로부터 자신을 구출하여 제일 청정한 누진의 땅에 머물렀다. 이와 같이 중행문(衆行門)으로써 세존께서 스스로 자신을 구출한 공덕을 염해야 한다.

 

云何當念世尊得勝法功德如是世尊有解脫心解脫以如來十力以十四佛智慧以十八佛法已與不一禪法成就到自在彼岸當念

세존께서 얻은 수승한 법의 공덕을 염해야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와 같이 세존에게는 해탈과 심해탈이 있어 여래의 10력으로써, 열네 가지 부처님의 지혜로써, 열여덟 가지 불법으로써, 이미 동일하지 않은[不一] 선법(禪法)을 성취하여 자재의 피안에 도달하셨다는 것을 염해야 한다.

 

云何世尊成就十力如來知是處非處如實而知如來知過去未來現在善業因緣以戒以因若果報等如實而知如來知至一切處具足如實而知如來知不以一戒種種戒世閒如實而知如來知衆生種種欲樂如實而知如來知衆生種種諸根如實而知如來知禪解脫定正受有煩惱無煩惱如實而知如來知宿命如實而知如來知衆生生死如實而知如來知漏盡如實而知以此十力世尊成就

세존께서 성취한 10력이란 무엇인가. 여래는 시처(是處)와 비처(非處)를 아는데 여실히 알며, 여래는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선업인연을 알며, ()와 인()으로써 과보 등을 여실히 알며, 여래는 일체처에 이르러 구족함을 아는데 여실히 알며, 여래는 하나의 계로써가 아니라 갖가지 계로써 세간을 아는데 여실히 알며, 여래는 중생의 갖가지 욕락을 아는데 여실히 알며, 여래는 중생의 갖가지 모든 근을 아는데 여실히 알며, 여래는 선해탈(禪解脫)ㆍ정정수(定正受)ㆍ유번뇌(有煩惱)ㆍ무번뇌(無煩惱)를 아는데 여실히 알며, 여래는 숙명을 아는데 여실히 알며, 여래는 중생의 생사를 아는데 여실히 알며, 여래는 누진을 아는데 여실히 안다. 세존은 이 10력을 성취하셨다.

 

云何世尊成就十四佛智慧謂苦智集智滅智道智義辯智法辯智辭辯智樂說辯智諸根智衆生欲樂煩惱使智雙變智大慈悲定智一切智不障碍智以此十四智世尊成就

무엇이 세존께서 성취한 열네 가지 부처님의 지혜인가. 소위 고지(苦智)ㆍ집지(集智)ㆍ멸지(滅智)ㆍ도지(道智)ㆍ의변지(義辯智)ㆍ법변지(法辯智)ㆍ사변지(辭辯智)ㆍ요설변지(樂說辯智)ㆍ제근지(諸根智)ㆍ중생욕락번뇌사지(衆生欲樂煩惱使智)ㆍ쌍변지(雙變智)ㆍ대자비정지(大慈悲定智)ㆍ일체지(一切智)ㆍ부장애지(不障碍智)이다. 세존은 이 열네 가지 지혜를 성취하셨다.

 

云何世尊成就十八法於過去佛智不障碍未來佛智不障碍現在佛智不障碍隨於佛智遍起身業隨於佛智遍起口業隨於佛智遍起意業以此六法世尊成就欲無退精進無退念無退定無退慧無退解脫無退以此十二法世尊成就無可疑事無誣師事無不分明無有急事無隱覆處無不觀捨

무엇이 세존께서 성취한 18법인가. 과거에 부처님의 지혜는 장애가 없으며, 미래에 부처님의 지혜는 장애가 없으며, 현재에 부처님의 지혜는 장애가 없으며, 그 부처님의 지혜에 따라서 두루 신업을 일으키며, 그 부처님의 지혜에 따라서 두루 구업을 일으키며, 그 부처님 지혜에 따라서 두루 의업을 일으킨다. 세존께서는 이 6법을 성취하셨다. 욕무퇴(欲無退)ㆍ정진무퇴(精進無退)ㆍ염무퇴(念無退)ㆍ정무퇴(定無退)ㆍ혜무퇴(慧無退)ㆍ해탈무퇴(解脫無退), 이상의 12법을 세존은 성취하셨다. 의심받을 만한 일이 없고, 나쁜 스승의 일이 없고, 분명치 않은 것이 없고, 급하게 하는 일이 없고, 감추는 것이 없고, 관하지 않고 버리는 것이 없다.

 

無可疑事者無有威儀爲於狡獪誣師事者無急速威儀無不分明者以知無不觸無急事者無威儀以急事無隱覆者心行無有非不憶智無不觀捨者無有不知捨以此十八佛法世尊成就

의심받을 만한 일이 없이 없다는 것은 위의에 있어서 교활해 보이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나쁜 스승의 일이 없다는 것은 급히 위의를 나타내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분명치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은 앎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급히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은 위의를 급하게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감추는 바가 없다는 것은 마음의 행위에 있어서 기억하지 못하는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관하지 않고 버리는 것이 없다는 것은 모르고 버리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세존은 이 열여덟 가지 부처님 법을 성취하셨다.

 

復次世尊以四無畏以四念處以四正勤以四如意足以五根以五力以六神通以七菩提分以八聖道分以八除入以八解脫以九次第定以十聖居止以十漏盡力以餘不一善法世尊成就到自在彼岸如是以此門以此行當念世尊得勝法功德

또 세존은 4무외ㆍ4념처ㆍ4정근ㆍ4여의족ㆍ5근ㆍ5력ㆍ6신통ㆍ7보리분ㆍ8성도분ㆍ8제입ㆍ8해탈ㆍ9차제정ㆍ10성거지(聖居止)10누진력으로써, 나머지 동일하지 않은 선법(善法)으로써, 세존은 자재의 피안에 도달하는 것을 성취하셨다. 이와 같이 이 문과 이 행으로써, 세존께서 얻은 수승한 법의 공덕을 염해야 한다.

 

云何當念世尊作饒益世閒功德世尊成就一切行到一切功德彼岸爲慈悲衆生所轉法輪世閒所不能轉以密護無內外開醍醐門已作無量天人於沙門果無量衆生得功德分能令功德具足

세존께서 세간을 요익케 한 공덕을 염해야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세존께서 모든 행을 성취하고 모든 공덕의 피안에 도달하여 자비로 중생을 위해 굴리신 법륜은 세간이 굴릴 수 없는 것이었다. 엄밀히 보호함으로써 내외가 없는 제호의 문을 열어 이미 한량없는 천인을 만드셨고, 사문과(沙門果)에서 한량없는 중생이 공덕분을 얻어 능히 공덕을 구족하게 하셨다.

 

以三種變身變說變敎變令世閒信已伏邪見諸相呪師已覆惡道已開善趣已往天上得解脫果已安聲聞住聲聞法已制諸戒已說波羅提木叉已得勝利養得佛勝法已得自在遍滿世閒一切衆生恭敬尊重乃至天人皆悉聞知安住不動慈悲世閒饒益世閒所作世尊已作以此門此行當念世尊已作世閒饒益功德

세 가지 변 즉 신변(身變)ㆍ설변(說變)ㆍ교변(敎變)으로써 세간을 믿게 하여 사견의 주술사들을 이미 조복하고, 이미 악도를 덮고, 이미 선취를 열고, 이미 천상에 이르러 해탈과를 얻게 하고, 이미 성문을 안온케 하여 성문법에 머물게 하고, 이미 모든 계를 제정하고, 이미 바라제목차를 설하고, 이미 훌륭한 이양(利養)을 얻고 부처의 승법을 얻고, 이미 자재를 얻어 세간을 두루 채웠기에 일체중생이 공경하고 존중하였으며, 나아가 천인들도 모두 듣고 알았다. 부동에 안주하여 세간을 자비로 대하고, 세간을 요익케 하며 지어야 할 바를 세존은 이미 지으셨다. 이 문과 이 행으로써, 세존께서 이미 세간을 요익케 하신 공덕을 염해야 한다.

 

彼坐禪人以此門此行已此功德現念如來其心成信以信自在以念自在心常不亂若心不亂滅蓋禪分起內行禪成住

그 좌선인은 이 문과 이 행과 이 공덕으로써 현재에서 여래를 염해 그 마음에 믿음을 성취하고, 믿음이 자재하고 염이 자재함으로써 마음이 항상 어지럽지 않게 된다. 만약 마음이 어지럽지 않으면 개()를 없애 선분(禪分)이 일어나게 되고, 내행선(內行禪)이 머물게 된다.

 

何故念佛起內行非安

佛功德者於第一義深智行處第一義事於深智行處心不得安以細微故復次當念不一功德若坐禪人憶念不一功德心種種緣作意共起心成不安是相爲一切外行行處

어떠한 까닭에 부처님을 염하면 안()이 아닌 내행(內行)이 일어나는가?

부처님의 공덕이란 제일의(第一義)의 깊은 지혜의 행처이며, 제일의는 깊은 지혜의 행처에서 작용하며[] 마음은 안을 얻지 못한다. 미세한 까닭이다. 또 마땅히 동일하지 않은 공덕을 염해야 한다. 만약 좌선인이 동일하지 않은 공덕을 억념하면, 마음이 갖가지 작의를 반연하여 함께 일어나 마음이 불안을 이루게 된다. 이 상()이 일체외행(一切外行)의 행처가 된다.

 

若念不一功德心旣不一外行禪不當成若專一心外行禪成住

若念如來功德及念佛成一心是故無過復說以念佛四禪亦起念佛已竟

만약 동일하지 않은 공덕을 염하면 마음이 이미 동일하지 않기에 외행선(外行禪)은 마땅히 성립되지 않는다. 만약 마음을 오로지 하나로 하면 외행선이 성취되어 머물게 되는가?

만약 여래의 공덕을 염하고 불을 염하면 일심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까닭에 과실이 없다. 또 설하기를, 불을 염함으로써 4선 또한 생겨난다.[염불을 마친다.]

 

云何念法何脩何相何味何處??云何脩行

法者謂泥洹及修行至泥洹

무엇이 염법(念法)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수행하는가?

법이란 니원(泥洹) 및 열반에 이르는 수행이다.

 

云何泥洹滅一切行出離一切煩惱滅愛無染寂滅此謂泥洹

무엇이 니원인가? 모든 행을 소멸하고, 모든 번뇌로부터 벗어나고, ()를 소멸해 물듦이 없고 적멸한 것을 니원이라 한다.

 

云何修行至泥洹謂四念處四正勤四如意足五根五力七覺分八正道分此謂修行至泥洹

무엇이 니원에 이르는 수행인가. 소위 4념처ㆍ4정근ㆍ4여의족ㆍ5근ㆍ5력ㆍ7각분ㆍ8정도분, 이것을 열반에 이르는 수행이라 한다.

 

念法出離功德乘功德隨念正念此謂念法彼心住不亂此謂修起功德法爲相擇法爲味解義爲處念佛功德等

법의 출리공덕(出離功德)과 승공덕(乘功德)을 염하는데, 그 염이 수념(隨念)ㆍ정념(正念)인 것을 염법이라 한다. 그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을 닦음이라 하고, 공덕의 법을 일으키는 것이 그 상이며, 법을 간택하는 것이 그 맛이며,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그 처이다. 공덕은 염불의 공덕과 같다.

 

云何修者初坐禪人入寂寂坐攝一切心以不亂心念法者善說世尊法現證無時節來見乘無時節來見乘相應智慧人現證可知

어떻게 닦는가. 처음 좌선하는 사람은 적적에 들어가 앉아 모든 마음을 거두고, 어지럽지 않은 마음으로 법이란 세존에 의해 훌륭히 설해진[善說] 법으로 현재 증득하기에 시절이 필요 없고, 와서 보면 올라타기에 시절이 필요 없다. 와서 보면 승()과 상응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현재에서 증득해 알 수 있다라고 염한다.

 

善說世尊法者離兩邊故名爲善說不異故名爲善說不謬故三種善故名善說滿淸淨故名善說令現泥洹及修行至泥洹故名善說

세존에 의해 훌륭히 설해진 법이란 양극단을 떠난 까닭에 선설(善說)이라 하고, 다르지 않은 까닭에 선설이라 하고, 오류가 없고 세 가지 착함인 까닭에 선설이라 하고, 청정이 가득한 까닭에 선설이라 하고, 니원을 나타내게 하고 니원에 이르는 수행인 까닭에 선설이라 한다.

 

現證者次第得道果故名現證作證泥洹及道果故爲現證無時節者不異時得果故名現證

현재 증득한다는 것은 차례대로 도과를 얻는 까닭에 현재 증득한다고 한다. 니원 및 도과를 깨닫는 까닭에 현재 증득하게 된다. 시절이 필요 없다는 것은 다른 시점에 과를 얻는 것이 아닌 까닭에 현재 증득한다고 한다.

 

來見者汝來我處見我善法性堪敎他是名來見

와서 보라는 너는 내가 있는 곳으로 와 나의 선법을 보라고 한 것이니, 그 성품이 남을 가르치는 것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와서 보라고 한다.

 

乘相應者若人受降伏成入醍醐界名爲乘相應向沙門果名乘相應

승과 상응한다는 것은 만약 사람이 받아들여 항복하면 제호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이를 승과 상응하는 것이라 하고, 사문(沙門)의 과()로 향하는 것을 승과 상응하는 것이라 한다.

 

智慧人現證可知者若人受降伏不受他敎起於滅智無生智解脫智是名智慧現證

지혜로운 사람은 현재에서 증득해 알 수 있다는 것은 만약 사람이 받아들여 항복하고 다른 이의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멸지(滅智)ㆍ무생지(無生智)ㆍ해탈지(解脫智)를 일으키게 된다. 이것을 지혜로우면 현재에서 증득한다고 한다.

 

以餘行當念法者是眼是智是安樂是醍醐乘門是出離是方便是至滅是至醍醐無有墮落

나머지 행으로써 마땅히 법을 염한다고 하는 것은 이것은 눈이고, 이것은 지()이고, 이것은 안락이고, 이것은 제호로 들어가는 수레이고 문이며, 이것은 출리이고, 이것은 방편이고, 이것은 소멸에 이르는 것이며, 이것은 제호에 이르는 것으로서 타락함이 없는 것이다.

 

是醍醐無爲寂寂微妙非相師所行是妙智人所知濟渡彼岸是歸依處彼坐禪人以此門以此行以此功德現念於法其心成信由其信念心住不亂以不亂心滅於諸蓋禪分得起外行禪成住餘如初廣說念法已竟

이것은 제호로서 무위이고, 적적하고 미묘하며, 스승 흉내만 내는 자가 행하는 바가 아니다. 이것은 묘한 지혜를 가진 자가 아는 바이고, 피안으로 건너는 것이며, 이것은 귀의처이다. 그 좌선인은 이 문과 이 행과 이 공덕으로써 현재에서 그 법을 염해 그 마음에 믿음을 이루고, 그 믿음과 염에 의해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물게 되며, 어지럽지 않은 마음으로써 모든 개()를 없애 선분이 일어나게 되고, 외행선이 머물게 된다. 나머지는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염법을 마친다.]

 

云何念僧何相何味何處何功德云何爲脩

僧者聖人和合此謂爲僧現念僧脩行功德彼念隨念正念此謂念僧彼念住不亂此謂脩念起僧功德爲相心恭敬爲味歡喜和合功德爲處念佛功德等

무엇이 염승(念僧)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수행하는가?

승이란 성인의 화합이니, 이것을 승이라 한다. 승의 수행공덕을 현재 염하는데, 그 염이 수념(隨念)ㆍ정념(正念)인 것을 염승이라 한다. 그 염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을 닦음이라 한다. 염으로 일으킨 승의 공덕을 상으로 삼고, 마음으로 공경하는 것을 맛으로 삼고, 화합의 공덕을 기뻐하는 것이 처이며, 공덕은 염불의 공덕과 같다.

 

云何脩者初坐禪人入寂寂坐攝一切心不亂心念想善能脩行世尊沙門衆隨從軟善世尊沙門衆隨從如法世尊聖衆隨從和合世尊聖衆所謂四雙八輩世尊沙門衆堪可恭敬供養堪可合掌無上世閒福田

어떻게 수행하는가. 처음 좌선하는 사람은 적적에 들어가 앉아 일체의 마음을 거두고 어지럽지 않은 마음으로 훌륭히 능히 수행한다. 세존의 사문 대중은 부드럽고 선함[軟善]을 따르며, 세존의 사문 대중은 여법(如法)을 따르며, 세존의 성스러운 대중은 화합을 따른다. 세존의 성스러운 대중이란 소위 4() 8()이다. 세존의 사문 대중은 가히 공경을 받고 공양을 받을 만하고, 합장을 받을 만하고, 위없는 세간의 복전이다라고 염한다.

 

於是善修行世尊沙門衆者隨從善說法故名修行隨從爲自他饒益故名脩行隨從已至具足故名脩行隨從無怨具足故名脩行隨從離二邊中具足故名脩行隨從

여기서 훌륭히 수행하는 세존의 사문 대중은 훌륭한 설법을 따르는 까닭에 따라서 수행한다[修行隨從]”고 한다. 자타를 요익케 하는 까닭에 따라서 수행한다고 하고, 이미 구족에 이른 까닭에 따라서 수행한다고 하고, 원수 없음을 구족한 까닭에 따라서 수행한다고 하고, 양 극단을 떠난 중도를 구족한 까닭에 따라서 수행한다고 한다.

 

離幻諂故名軟善離身口邪曲惡故名軟善

허황된 아첨[幻諂]을 떠나는 까닭에 부드럽고 선하다 하며, ()ㆍ구()의 삿됨[]과 왜곡[]과 악()을 떠나는 까닭에 부드럽고 선하다고 한다.

 

隨從如者八正聖道彼隨從故名如隨從復次如者謂泥洹爲隨從得泥洹故如脩行世尊所說四聖諦隨從如智故名如修行

()를 따른다는 것은 8정성도(正聖道)를 따르는 까닭에 여를 따른다고 한다. 또 여란 니원을 말한다. 그것을 따름으로써 니원을 얻는 까닭에 여수행(如修行)이라 한다. 세존께서 설하신 4성제를 여실한 지혜로 따르는 까닭에 여수행이라 한다.

 

隨從和合者隨從沙門和合具足故名隨從和合若如是隨從作和合事成大果大功德如是隨從故名隨從和合

화합을 따른다는 것은 사문의 화합구족을 따르는 까닭에 화합을 따른다고 한다. 만약 이와 같이 화합하는 일을 따라서 지으면 큰 과와 큰 공덕을 이룬다. 이와 같이 따르는 까닭에 화합을 따른다고 한다.

 

四雙八輩者住須陁洹道及住其果故爲一雙住斯陁含道及住其果故爲一雙住阿那含道及住其果故爲一雙住阿羅漢道及住其果故爲一雙此謂四雙者彼住道及道果故名四雙八輩者四向四果此謂八輩

48배란 수다원도에 머무르고 그 과에 머무는 까닭에 1쌍이 된다. 사다함도에 머무르고 그 과에 머무는 까닭에 1쌍이 된다. 아나함도에 머무르고 그 과에 머무는 까닭에 1쌍이 된다. 아라한도에 머무르고 그 과에 머무르는 까닭에 1쌍이 된다. 이것을 4쌍이라 하는 것은 그 도 및 도과에 머무는 까닭에 4쌍이라 한다. 8배란 44과로서 이것을 8배라 한다.

 

沙門者從聞成就故名沙門

사문이란 견문[]을 따라서 성취하는 까닭에 사문이라 한다.

 

僧者聖和合衆可請可供養可施可恭敬無上世閒福田可請者堪受請名爲可請可供養者於衆施成大果堪受供養可施者若於衆施得大果報可恭敬者堪受恭敬事名可恭敬無上者最多功德故名無上世閒福田者是衆生功德處故名世閒福田

()이란 성스러운 화합 대중으로서 청할 만하고, 공양할 만하고, 보시할 만하고, 공경할 만한 위없는 세간의 복전이다. 청할 만하다는 것은 초청을 받을 만한 것을 청할 만하다고 한다. 공양할 만하다는 것은 대중에게 보시하면 큰 과보를 이루므로 공양을 받을 만한 것이다. 보시할 만하다는 것은 대중에게 보시하면 큰 과보를 얻는다는 것이다. 공경을 받을 만하다는 것은 공경하는 일을 받을 만한 것을 공경을 받을 만하다고 한다. 위가 없다는 것은 공덕이 가장 많은 까닭에 위가 없다고 한다. 세간의 복전이란 이것이 중생의 공덕처인 까닭에 세간의 복전이라 한다.

 

以餘行當念衆生如是勝衆眞實衆是名醍醐戒具足定具足慧具足解脫具足解脫知見具足

나머지 행으로써 마땅히 대중을 염해야 하니 이와 같이 수승한 대중이고, 진실한 대중이기에 이를 제호라고 하니, 계를 구족하고, 정을 구족하고, 혜를 구족하고, 해탈을 구족하고, 해탈지견을 구족하였다고 염해야 한다.

 

彼坐禪人以此門以此行以現念衆功德如是現念衆功德其心成信由於信念心成不亂以不亂心能滅諸蓋禪分得起外禪成住如初廣說念僧已竟

그 좌선인은 이 문과 이 행으로써, 현재에서 대중의 공덕을 염해야 한다. 이와 같이 현재에서 대중의 공덕을 염하면 그 마음이 믿음을 성취하고, 믿음과 염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어지럽지 않게 되고, 어지럽지 않은 마음으로 능히 모든 개()를 소멸하여 선분이 일어나게 되고 외선이 머물게 된다.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염승을 마친다.]

 

云何念戒何修何相何味何處何功德云何修行

以功德念淸淨戒彼念隨念正念此謂念戒念戒住不亂此謂修

무엇이 염계(念戒)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수행하는가?

공덕으로써 청정한 계를 염하는데, 그 염이 수념(隨念)과 정념(正念)인 것을 염계라 한다. 계를 염하여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을 닦음이라 한다.

 

令起戒功德爲相見過患怖爲味歡喜無過樂是處若人修行念戒成得十二功德成尊重師重法重僧重戒學重供養重不放逸於細微過患常見憂怖護自身亦護他從此世怖畏解脫彼世怖畏解脫多歡喜可愛一切戒功德是念戒功德

계의 공덕을 일으키는 것이 상이며, 과환의 두려움을 보는 것이 맛이며, 과환이 없는 즐거움에 환희하는 것이 처이다. 만약 사람이 염계를 수행하면 12공덕을 얻게 된다. 즉 스승을 존중하고, 법을 존중하고, 승을 존중하고, 계학을 존중하고, 공양을 존중하고, 불방일을 존중하고, 미세한 과환에서도 항상 두려움을 보고, 자신을 보호하고, 또 남도 보호하고, 이 세상의 두려움으로부터 해탈하고, 저 세상의 두려움으로부터 해탈하고, 사랑할만한 일체 계의 공덕에 대한 환희가 많아진다. 이것이 염계의 공덕이다.

 

云何修行者初坐禪人入寂寂坐攝一切心不亂心念自身戒無偏無穿無點無垢無雜自在智慧所嘆無所觸令起定

어떻게 수행하는가. 처음 좌선하는 사람은 적적에 들어가 앉아 일체의 마음을 거두고, 어지럽지 않은 마음으로 자신의 계를 염한다. “치우침이 없고, 구멍 난 것도 없고, 얼룩이 없고, 때가 없고, 잡스러움이 없고, 자재하고, 지혜로운 자들이 찬탄하는 바이고, 접촉되는 것이 없고, ()을 일으키게 한다라고 염한다.

 

若無偏是無穿若無穿是不點如是一切可知復次若滿淸淨戒是善法住處故名不偏不穿作姓稱譽故名無點無垢以斷愛故名爲自在聖所樂故無有過患智慧所嘆離戒盜故故名無所觸成不退處故令起定

만약 치우침이 없으면 곧 구멍 난 것이 없으며, 만약 구멍 난 것이 없으면 곧 얼룩이 없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또 만약 청정한 계가 가득하면 이것은 선법의 주처인 까닭에 치우지지 않고 구멍 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칭찬받을 만한 성품을 짓는 까닭에 얼룩이 없고 때가 없다고 말한다. ()를 끊는 까닭에 자재하다고 한다. 성인이 즐기는 바인 까닭에 과환이 없고, 지혜로운 사람이 찬탄하는 바이다. 계도(戒盜)를 떠나는 까닭에 접촉되는 것이 없다고 한다. 불퇴처를 이루는 까닭에 정을 일어나게 한다.

 

以餘行當念戒名戒者是樂無過患是姓可貴以財物自在如先所說戒功德如是廣說可知

나머지 행으로써 마땅히 계를 염해야 한다. 계라고 하는 것은 과환이 없는 것을 즐기는 것이며, 귀한 종성(種姓)이며, 재물로써 자재한 것이다. 앞에서 설한 계의 공덕과 같이 이와 같이 자세히 설하니, 알아야 한다.

 

彼坐禪人以此門以此行以此功德現念戒由信念心不亂以不亂心滅於諸蓋禪分成起外行禪成住餘如初廣說念戒已竟

그 좌선인은 이 문과 이 행과 이 공덕으로써 현재에서 계를 염해 그 믿음과 염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어지럽지 않게 되고, 어지럽지 않은 마음으로써 모든 개()를 소멸하여 선분(禪分)이 일어나게 되고, 외행선이 머물게 된다. 나머지는 앞에서 설한 바와 같다.[염계를 마친다.]

 

云何念施何脩何相何味何處何功德云何爲脩

施者爲利他故樂饒益他爲他人得捨自財物此謂施

무엇이 염시(念施)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수행하는가?

시란 남을 이롭게 하기 위한 까닭에, 남을 요익케 하는 것을 즐기는 까닭에, 남이 얻게 하기 위해 자신의 재물을 버리는 것, 이것을 시라 한다.

 

以念施功德現念捨彼念隨念正念此謂念施彼念住不亂此謂修令起施功德爲相不蓄爲味不慳爲處若人修行念施成得十功德

보시의 공덕을 염함으로써 현재에서 사()를 염하는데, 그 염이 수념과 정념인 것, 이것을 염시라 한다. 그 염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 이것을 닦음이라 한다. 보시의 공덕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 상이며, 모아두지 않는 것을 맛으로 삼고, 인색하지 않는 것을 처로 삼는다. 만약 사람이 염시를 수행하면 열 가지 공덕을 성취해 얻는다.

 

如是施隨樂無慳無貪意爲多人念善取他意於衆不畏多歡喜慈悲心向善趣向醍醐

이와 같이 시는 낙을 따르고, 인색함이 없고, 탐하는 뜻이 없고, 많은 사람을 염두에 두고, 다른 사람의 뜻을 잘 취하고, 대중을 두려워하지 않고, 환희심이 많아지고, 자비심이 많아지고, 선취(善趣)로 향하고, 제호로 향한다.

 

云何修行者初坐禪人入寂寂坐攝一切心不亂心自念施以所捨物我有利我善得利世人爲慳垢所牽我住無慳垢心我常施與常樂行施常供給常分布

어떻게 수행하는가. 처음 좌선하는 사람은 적적에 들어가 앉아 일체 마음을 거두고, 어지럽지 않은 마음으로 이렇게 스스로 보시를 염한다. “버릴 물건으로 나는 이익을 얻었다. 나는 이익을 잘 얻었다. 세간 사람들은 인색함의 때에 이끌리지만 나는 인색함의 때가 없는 마음에 머문다. 나는 항상 보시하고, 항상 그 보시를 즐기며, 항상 공급하고, 항상 나누어 준다라고 염한다.

 

彼坐禪人以此門以此行以此故心常不亂以不亂心滅於諸蓋禪分成起外行禪成住餘如初廣說念施已竟

그 좌선인은 이 문과 이 행과 이 공덕으로써 현재에서 보시를 염해 그 마음이 믿음을 성취하고, 그 믿음과 염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항상 어지럽지 않게 되며, 어지럽지 않은 마음으로 모든 개()를 소멸하여 선분이 일어나게 되고, 외행선이 머물게 된다. 나머지는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

 

云何念天何脩何相何味何處何功德何脩

依生天功德念自身功德彼念隨念正念此謂念天彼念住不亂此謂脩令起自身功德天功德等爲相於功德愛敬爲味信功德果爲處

무엇이 염천(念天)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수행하는가?

하늘에 태어나는 공덕을 의지해 자신의 공덕을 염하는데 그 염이 수념과 정념인 것, 이것을 염천이라 한다. 그 염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을 닦음이라 한다. 자신의 공덕이나 천의 공덕 등을 일으키는 것이 그 상이며, 그 공덕을 애경(愛敬)하는 것이 맛이며, 공덕의 과를 믿는 것이 처이다.

 

若人脩行念天成得八功德如是彼人五法增長所謂信成天人所念愛敬於說功德果報大歡喜踊躍自重其身及天人所貴念戒念施以入其內向善趣向醍醐

만약 사람이 염천을 수행하면 여덟 가지 공덕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그 사람은 다섯 가지 법 즉 믿음[]ㆍ계율[]ㆍ견문[]ㆍ보시[]ㆍ지혜[]가 증장하고, 천인들이 염두에 두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자가 되고, 설해진 공덕의 과보에 크게 환희용약하고, 스스로 자신의 몸을 중히 여기고, 천인이 귀히 여기고, 염계와 염시로써 그 안으로 들어가고, 선취로 향하고, 제호로 향하게 된다.

 

云何脩行者初坐禪人入寂寂坐攝一切心以不亂心念天有四王天有三十三天有焰摩天有兜率天有化樂天有他化自在天有梵身天有天常生以信成就諸天從此生彼我復如是有信如是戒如是聞如是施如是慧成就彼諸天從此生彼我復如是有慧當念其身當念諸天

어떻게 수행하는가. 처음 좌선하는 사람은 적적에 들어가 앉아 일체 마음을 거두고, 어지럽지 않은 마음으로 이렇게 하늘을 염한다. “4왕천이 있고, 33천이 있고, 염마천이 있고, 도솔천이 있고, 화락천이 있고, 타화자재천이 있고, 범신천이 있고, 항상 태어나는 천인이 있다. 믿음[]을 성취함으로써 모든 천인들은 이곳으로부터 그곳에 태어나는데, 나 또한 이와 같은 믿음이 있다. 이와 같은 계율, 이와 같은 견문, 이와 같은 보시, 이와 같은 지혜[]를 성취하여 그 모든 천인들이 이곳으로부터 그곳에 태어나는데, 나 또한 이와 같은 (계율ㆍ견문ㆍ보시ㆍ)지혜가 있다고 염한다. 마땅히 그 몸을 염해야 하고, 마땅히 모든 천인의 믿음ㆍ계율ㆍ견문ㆍ보시ㆍ지혜를 염해야 한다.

 

彼坐禪人以此門以此行以功德現念天彼心成信以由信由念心成不亂以不亂心滅於諸蓋禪分成起外行禪成住

그 좌선인은 이 문과 이 행과 이 공덕으로써 현재에서 하늘을 염해 그 마음이 믿음을 성취하고, 그 믿음과 염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어지럽지 않게 되며, 어지럽지 않은 마음으로 모든 개()를 소멸해 선분이 일어나게 되고, 외행선이 머물게 된다.

 

何故念天功德不念人功德

諸天功德最妙生最妙地成妙處心於妙處脩行成妙是故念天功德不念人功德餘如初廣說

念天已竟

어떠한 까닭에 하늘의 공덕을 염하고, 사람[]의 공덕은 염하지 않는가?

모든 하늘의 공덕이 가장 묘하고, 가장 묘한 땅에 태어나면 묘처(妙處)의 마음이 되고, 묘처에서 수행하면 묘를 이룬다. 이러한 까닭에 하늘의 공덕을 염하고, 사람의 공덕은 염하지 않는다. 나머지는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염천을 마친다.]

 

解脫道論卷第六 甲辰歲高麗國分司大藏都監奉勅彫造